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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평점 :
나는 이 책이 무얼 말하는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캐비닛? 혹시 그 옛날 철제 캐비닛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 어이없게도 정답이다.
그 캐비닛에 무엇이 들었길래 이렇듯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걸까?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될 거라고.
작가의 유머센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하여간 이 작품의 '캐비닛'에는 유머와 더불어 '말도 안 돼'가 저절로 터져나올 사건들이 가득 들어 있다( 책 자체가 이미 캐비닛인 것이다). 손가락 끝에서 자라나는 나무, 고양이가 되고 싶어하는 남자, 유체이탈의 샴쌍둥이, 타임 스키퍼 등등 과학적 사실로는 전혀 입증되지 않은 사실들을 마치 진짜인 양, 사실인 양 소개하고 있다.
'사실 너네 지금 아무것도 모른 채 속고 있는 거야'라고 속삭이면서.
읽는 내내 나는 어이없어하는 화자처럼, 말도 안 돼를 연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캐비닛의 파일 속에 숨어 있는 우리네 눈물 한 자락을 발견한다면?
그렇다, 저자는 유머와 말도 안 되는 환상 속에서 서민들의 삶과 고난을 고스란히 담아놓았다. 그런 현실을 있는 대로 꼬아대면서.
어린 시절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며 토해내던 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 변한 모습을 깨닫고 회자하는 부분에는 '앗, 나의 모습'이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군데군데 숨어 있는 현실에 대한 분노게이지가 문장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아무도 분노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내 나이 열다섯에 그 넘치던 분노들은 도대체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어디로 갔을까."
그래서 그녀는 항상 혼자 다니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일하고, 혼자 퇴근한다. 그러니까 그녀는 이 도시에서 생존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사교행위를 전혀 하지 않는다. 그녀는 지나칠 정도로 과묵하고, 지나칠 정도로 웃음이 없고, 지나칠 정도로 겁이 많다. 그녀는 자신의 주위로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녀는 아무도 허락하지 않는다. 마치 그녀는 거대한 고슴도치 같다.
하지만 이 책은 너무나 많은 것을 담으려고 했다. 유머, 환상, 비판, 현실, 문제 등등.
그것은 결론에 이르렀을 때 절정에 치닫는다. 자신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캐비닛의 자료들 때문에 손가락까지 잘려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음, 뭐랄까 안타까웠다. 그 잔인함도 그러했지만, 현실의 날카로운 칼이 '너무도 비수 같았다'는 느낌?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을 텐데. 그리고 앞에서 보여준 에피소드들은 그러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치고는 군더더기가 심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도 나는, 김언수라는 저자가 자신의 방식대로 그 여러 메시지를 잘 버무렸다고 생각한다.
마지막까지 유머로 글을 장식한 저자의 메시지를 책 속 문장 속에서 잘 캐치하길 바라며.
덧 : 수상소감에서 저자가 남긴 한 구절이 가슴에 와닿는다.
작가에게 관용을 베푸는 독자는 이 세계에 단 한 명도 없다.
이 말 하나에서 그가 괴로워했을 시간이 보여 눈물이 났다(소위 말해 싱크로 +_+).
하지만 그의 그런 노력은 오히려 훌륭한 작품을 탄생하게 했으니,
앞으로도 그의 멋진 작품을 계속 기대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