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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러 갑니다
가쿠타 미쓰요 지음, 송현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나의 마음속에 자리한 이면, 또다른 자아를 만난다!
착한 척 자신을 포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은 어떠할까. 그것은 본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답이 나올 것이다. 사실은 어떤 사람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다는 마음을 누구든 가져본 적이 있을 테니까.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사람의 심리를 다룬 작품으로 그간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만을 그려온 가쿠타 미쓰요의 작품으로 총 7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각각의 단편은 모두 자신과 관계된 어떤 인물에게 살의에 가까운 증오를 간직한 이야기다.
「죽이러 갑니다」
우연찮게 들린 '나는 사람을 죽이러 가'라는 말. 그 말이 구리코의 가슴에 와닿았다. 나도 그런 사람이 있을까, 죽이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을 떠올리다 자신의 초등학교의 추억에 빠져든다. 나를 괴롭히던 선생님, 그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스위트 칠리소스」
평범하게 자라나, 평범하게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한 한 여성의 이야기. 자신의 삶에 어느 순간 회의가 들기 시작한 미도리는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왜 이 남자와 살아가고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어렸을 적 누구나 꿈꾸었을 자신의 환상이 무너져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탓일까.
개인적으로는 다른 작품에 비해 독특함이 조금 덜하다.
「잘 자, 나쁜 꿈 꾸지 말고」
요즘 들어 악몽이 끊이지 않는다. 남자 한번 잘못 만나, 그저 헤어지자고 했을 뿐인데 그 녀석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헤어지고 난 뒤, 자신을 이상한 여자아이로 소문을 내는 그 녀석의 유치한 행동에 나는 그만 살의를 느낀다. 하루빨리 이 악몽에서 벗어났으면. 하지만 안다, 나보다 그 녀석이 훨씬 불쌍하다는 걸.
「아름다운 딸」
어렸을 적 여자라면 누구나 꿈꾸었을 "나는 딸을 낳으면 머리 예쁘게 묶어주고, 딸이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도록 가꾸며 살아야지"라는 결심. 하지만 그것 역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자신에게 속된 표현을 해가며 무시하는 딸아이와 마주했다는 사실, 그 사실은 공포에 가깝다. 게다가 그 아이가 내 배에서 나왔다는 비극은 충분히 '살의'를 느끼게 한다.
「하늘을 도는 관람차」
함께 행복하게 살아왔던 나의 남편. 그 자식이 같은 회사 부하직원과 바람이 났다. 게다가 3년 동안이나. 그 무너지는 가슴. 하지만 나는 그 자식과 계속 같이 살아가는 것으로 복수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일도 그만두게 하고 집에서 살림하라고 명했다. 마음은 어떨지 모르지만 고분고분하게 말도 잘 듣는다. 하지만 내 망가진 자존심은 어찌할 것인가.
이 작품은 남편인 시게하루의 관점으로 쓰여 있지만, 아내의 마음이 많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맑은 날 개를 태우고」
결혼을 약속한 한 여성이, 낳기로 한 아이를 지워버리고 나를 내쫓았다. '루리'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는데. 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다른 남자와 살고, 개를 데려다 '루리'라는 이름을 지었다! 저 개를 죽여다 복수하고 말겠어. 하지만 개가 무슨 죄랴.
「우리의 도망」
어렸을 때 난 친하게 지냈던 아이가 나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하는 바람에 무서웠던 적이 있다. 이 아이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도 멀어지고 세상 살기가 참 녹록치 않구나, 라는 걸 깨닫기도 했으니. 하지만 그 아이가 바랐던 일들이 현실로 이뤄진다면, 그것은 공포다.
이 7가지 단편을 읽고 난 뒤, 나는 뭔가 개운하면서도 씁쓸함을 느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미약한 '살의'를 글로 접한 후의 느낌은 어쩌면 씁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착한 척, 배려하는 척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의 내면을 보았다는 사실이 여느 공포소설과 다름 없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네들의 솔직함을 접했을 때 오히려 안심하기도 했다. 그리고 진짜로 복수하고 싶은 상대를 진짜로 죽일 수 없다는 안타까움마저 소설이 아닌 진짜 이야기 같았다고나 할까.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느끼고 있는 바로 당신, 이 책을 펼치기 바란다. 아닌 사람 없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