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도치의 회고록
알랭 마방쿠 지음, 이세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인간을 향한 가시도치의 통쾌한 비틀기!
 

이 책을 접하게 된 계기는 단 하나다. 개인적으로 '고슴도치'에 대한 애착이 심하게 강하기에 제목을 보자마자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펼쳐든 순간, 그러한 단순한 생각을 후회하게 만들 만큼 강렬한 충격을 주었다.

쉼표 없이 내달리는 문장체, 독자에게 내던지듯 '바오바브나무'에게 쏟아내는 가시도치의 입담 등 이 책의 매력은 한줄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아프리카의 환상을 눈앞에서 보여주는 매력 외에도, 인간세상에서 인간의 '해로운 분신'으로 살아가는 가시도치의 모습은 원초적인 시점에서 인간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잘 끄집어냈다. 고상한 척하지만 뒤쪽에서 온갖 술수를 부리는 인간들이 사실은 지저분하고 더러운 '짐승'보다 사실은 가시도치의 오줌만도 못할 테니까.

이 세상에는 항상 자기보다 불우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그런 걸 일일이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을 테니까, 이 세상의 창조주를 원망하는 동물들을 조사해서 집계를 내느니, 수십만 개의 내 가시를 헤아리는 게 더 쉬울걸
 

이 책은 아프리카계 프랑스인인 '알랭 마방쿠'의 최신작이다. 그래봤자 우리나라에 소개된 건 『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와 함께 단 두 작품이다. 게다가 동시에 출간됐으니, 그간 이 작품을 접할 기회는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정말 아쉬웠다. 이런 작가를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작품 가득 마방쿠만의 독특한 색깔들로 넘쳐났으니 말이다. 한 비평가는 이런 말까지 했다. 
 

"이 소설 때문에 지금까지 이런 작가를 몰라봤다는 양심의 가책이 더욱 커졌다" -베르나르 피보(프랑스 출판 평론가)
 

이 작품의 연장선에 있는『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를 먼저 접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나를 만나러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달려와준 가시도치 '느굼바'에게 감사를 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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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좋아했던 것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2
미야모토 테루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좋아했던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렇지 않으면 그 시절의 내가 너무 가여우니까

 

가끔씩 예전의 내 모습을 떠올릴 때가 있다.
한여름에 타오르는 불꽃처럼 미친 듯이 사랑에 빠져들었던 내 모습을.
지금 돌이켜보면 굉장히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일 투성이지만, '나는 그런 적이 없다'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 시절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고, 아니면 그 시절의 내가 너무 가엾지 않냐고.
타오르는 열정에 몸을 맡겼던 시절, 어쩔 땐 그때가 조금은 그립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그 시절의 내가.
 

『우리가 좋아했던 것』에는 그러한 마음이 구구절절 담겨 있다. 네 명의 남녀가 모여 함께 살아가기 시작하던 그때. 요시라는 남자는 정말 로또 같은 행운으로 한 아파트에 당첨된다. 하지만 혼자 살아가기에는 지나치게 컸던 아파트. 우연에 우연을 거쳐 당나귀, 아이코, 요코와 함께 살아가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빠져들었던 그들. 이상하리만치 남을 위해 살아가던 그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그들에게는 각자의 길이 있었다.
지금 서로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그들이라 해도, 그 마음이 어찌될지는 한치 앞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난 너를 좋아했었다' 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사실이 중요한 것이니까.


"우리는 지금 타인을 위해 살고 있어.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아이코가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돼." 


몇 년이 지나 그들은 각자의 길을 찾았지만, 그 시절의 행복, 미소, 슬픔 그리고 추억은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 우리는 정말 좋아했으니까. 그게 중요해.


"우린 병에 걸렸어. 상대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주려는 병에 걸렸어. 아이코도 같은 병에 걸렸어. 인간에게 과연 무엇이 행복한 건지는 긴 안목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아이코가 꿈을 이루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 생각해보면, 우리는 뭔가에 씌었어. 우리, 남의 행복을 위해 힘을 보태는 걸 좋아해. 우리라는 존재가 이미 그렇게 만들어졌으니 어쩔 도리가 없어. 이건 전생의 업 같은 거지. 그렇지만 남의 행복을 시기하고 남의 성공에 침을 뱉는 업을 지고 태어나지 않은 것을 정말로 행복하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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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러 갑니다
가쿠타 미쓰요 지음, 송현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나의 마음속에 자리한 이면, 또다른 자아를 만난다!

 
착한 척 자신을 포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은 어떠할까. 그것은 본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답이 나올 것이다. 사실은 어떤 사람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다는 마음을 누구든 가져본 적이 있을 테니까.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사람의 심리를 다룬 작품으로 그간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만을 그려온 가쿠타 미쓰요의 작품으로 총 7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각각의 단편은 모두 자신과 관계된 어떤 인물에게 살의에 가까운 증오를 간직한 이야기다.


「죽이러 갑니다」
우연찮게 들린 '나는 사람을 죽이러 가'라는 말. 그 말이 구리코의 가슴에 와닿았다. 나도 그런 사람이 있을까, 죽이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을 떠올리다 자신의 초등학교의 추억에 빠져든다. 나를 괴롭히던 선생님, 그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스위트 칠리소스」
평범하게 자라나, 평범하게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한 한 여성의 이야기. 자신의 삶에 어느 순간 회의가 들기 시작한 미도리는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왜 이 남자와 살아가고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어렸을 적 누구나 꿈꾸었을 자신의 환상이 무너져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탓일까.
개인적으로는 다른 작품에 비해 독특함이 조금 덜하다.  

「잘 자, 나쁜 꿈 꾸지 말고」
요즘 들어 악몽이 끊이지 않는다. 남자 한번 잘못 만나, 그저 헤어지자고 했을 뿐인데 그 녀석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헤어지고 난 뒤, 자신을 이상한 여자아이로 소문을 내는 그 녀석의 유치한 행동에 나는 그만 살의를 느낀다. 하루빨리 이 악몽에서 벗어났으면. 하지만 안다, 나보다 그 녀석이 훨씬 불쌍하다는 걸.

「아름다운 딸」
 어렸을 적 여자라면 누구나 꿈꾸었을 "나는 딸을 낳으면 머리 예쁘게 묶어주고, 딸이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도록 가꾸며 살아야지"라는 결심. 하지만 그것 역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자신에게 속된 표현을 해가며 무시하는 딸아이와 마주했다는 사실, 그 사실은 공포에 가깝다. 게다가 그 아이가 내 배에서 나왔다는 비극은 충분히 '살의'를 느끼게 한다. 

「하늘을 도는 관람차」
함께 행복하게 살아왔던 나의 남편. 그 자식이 같은 회사 부하직원과 바람이 났다. 게다가 3년 동안이나. 그 무너지는 가슴. 하지만 나는 그 자식과 계속 같이 살아가는 것으로 복수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일도 그만두게 하고 집에서 살림하라고 명했다. 마음은 어떨지 모르지만 고분고분하게 말도 잘 듣는다. 하지만 내 망가진 자존심은 어찌할 것인가.
이 작품은 남편인 시게하루의 관점으로 쓰여 있지만, 아내의 마음이 많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맑은 날 개를 태우고」
결혼을 약속한 한 여성이, 낳기로 한 아이를 지워버리고 나를 내쫓았다. '루리'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는데. 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다른 남자와 살고, 개를 데려다 '루리'라는 이름을 지었다! 저 개를 죽여다 복수하고 말겠어. 하지만 개가 무슨 죄랴.

「우리의 도망」
어렸을 때 난 친하게 지냈던 아이가 나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하는 바람에 무서웠던 적이 있다. 이 아이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도 멀어지고 세상 살기가 참 녹록치 않구나, 라는 걸 깨닫기도 했으니. 하지만 그 아이가 바랐던 일들이 현실로 이뤄진다면, 그것은 공포다.

  
 이 7가지 단편을 읽고 난 뒤, 나는 뭔가 개운하면서도 씁쓸함을 느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미약한 '살의'를 글로 접한 후의 느낌은 어쩌면 씁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착한 척, 배려하는 척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의 내면을 보았다는 사실이 여느 공포소설과 다름 없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네들의 솔직함을 접했을 때 오히려 안심하기도 했다. 그리고 진짜로 복수하고 싶은 상대를 진짜로 죽일 수 없다는 안타까움마저 소설이 아닌 진짜 이야기 같았다고나 할까.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느끼고 있는 바로 당신, 이 책을 펼치기 바란다. 아닌 사람 없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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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
모리 히로시 지음, 안소현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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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금 특이한 아이? 많이 특이한 식당은 있다!
 

나는 모리 히로시의 한국어판 책은 이 책으로 처음 접했다. 그러니까 즉 처음 접한다는 이야기되겠다. 사실 '다작'하는 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많은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뭐랄까. 역시 '모리 히로시'였구나, 라는 감탄(?)을 하게 된다는 것? 

친하게 알고 지내던 한 지인이 사라졌다. 사라지기 직전에 나에게 한 특이한 '식당'을 소개해주었다. 혹시나 해서 그 식당을 찾게 되었다. 하지만 그 식당은 정해진 장소에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손님에 따라 그날그날 다르게 열린다. 그리고 처음 만나는 여자와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 어떻게 보면 굉장히 어색해질 수도 있는 자리이지만, 시끄럽게 즐겁지도 않으면서 즐겁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현실의 자리에서 벗어난다는 것에서는 매력적인 식사이다.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하는 나도 차츰 이 식당에 빠져드는 걸 느끼게 되었다. 전에 사라졌던 지인이 왜 이 식당을 찾게 되었는지도 이해될 만큼.

매번 찾을 때마다 오늘은 어디서 먹게 될까, 오늘 만나는 사람은 누구일까, 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털어놓는, 아니 털어놓지 않아도 그들이 생각하는 바가 사실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사람이라는 점이 나를 안심하게 한다.  

이 책은 약간의 반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집중해서 머리를 짜내지 않아도 금방 '아~ 이렇게 되겠구나'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게다가 책을 집중하면서 읽기 어려웠다는 것이 솔직한 나의 평.
게다가, 책 내용에 비해 너무 포장을 잘했다. 일러스트도 그렇고, 아마 내가 모리 히로시라면, 정말 잘 만들어주어 고맙단 얘기를 할 정도.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속았다'라는 기분이 든다. 주인공인 '나'가 생각하는 그리고 고독해하는 그 부분을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딴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근본적으로 나의 문제? 하여간 기대하지 않았던 대로 역시 그런 '모리 히로시'였구나, 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조금은 씁쓸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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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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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사건의 진실, 그 끝에 내가 있었다!

 
자기 방어로 사람을 죽여버린 미나미 준이치, 교도관이라는 이유로 사형을 집행해야만 했던 난고 쇼지. 그들은 교도소에서 첫만남을 가졌다. 죄수이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난고는 진정한 갱생의 길은 '사형'이라는 허울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의 죄에 참회의 눈빛을 띠던 준이치가 사회에서 어엿한 한 명의 인간이 되게끔 도와주고 싶었다. 
 

난고 쇼지 : 그러던 어느날 한 독지가에게서 사형에 처할 위기의 사형수 '사카키바라 료'의 무고를 증명해달라는 청탁을 받는다. 그것도 커다란 액수의 금액을 제시하며. 그때 떠오른 것이 바로 준이치였다. 그를 구제해야겠다는 숭고한 생각으로 준이치를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일을 그와 함께해야 한다는 어떠한 의무감을 느꼈다.  

미나미 준이치 :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한 사람을 죽였다. 정당방위라는 것이 인정되어 2년의 수감을 끝내고 가석방되었다. 하지만 나를 맞이한 것은 피해자 합의금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부모님과, 주위의 뜨거운 시선을 견딜 수 없어 고등학교를 자퇴해버린 동생이었다.
그래도 자식이라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맞아준 부모님을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정당방위이긴 하지만 아들을 잃게 만든 유가족에게도 사죄해야겠다고.
그러던 시기에 안면이 있던 교도관에게 한 제의를 받았다. 억울하게 사형당할지도 모르는 죄수를 위해 일해볼 생각이 없냐고. 게다가 보수도 상당했다. 그 돈이라면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부모님의 어깨를 조금은 펴드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난고와 미나미 탐정단(?).
사카키바라 료가 무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을 생각해 그가 무죄라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함께 증거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을 괴롭히는 건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는 세상의 따가운 눈이 아니었다. '사람을 죽였다는' 죄의식의 괴로움이었다. 스스로 13계단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그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일에 뛰어든 것이다. 계기야 어쨌든 무고하게 사람이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것은 굉장히 불행한 일이니까. 
 

"당신의 평생에 걸친 죄, 전능하신 하느님을 거역한 것을 회개합니까?"
"네."
"나는 너의 죄를 사하노라."
그 신의 말씀을 듣고 난고는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죄를 신은 용서했으나 인간은 용서하지 않는다.  

 
결말로 다가갈수록 숨막히게 잦아드는 반전으로 책장 넘기기가 두려웠지만, 범인은 사실 가까이에 있는 법. 예측에 예측을 넘어선 전개에 피가 말리기도 했다. 
인간의 '사형제도'에 근본적으로, 또 심층적으로 파고든 이 작품을 보고 인간이 인간을 심판한다는 것이 어떠하다는 것인지, 정의란 얼마나 이중적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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