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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좋아했던 것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2
미야모토 테루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좋아했던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렇지 않으면 그 시절의 내가 너무 가여우니까
가끔씩 예전의 내 모습을 떠올릴 때가 있다.
한여름에 타오르는 불꽃처럼 미친 듯이 사랑에 빠져들었던 내 모습을.
지금 돌이켜보면 굉장히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일 투성이지만, '나는 그런 적이 없다'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 시절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고, 아니면 그 시절의 내가 너무 가엾지 않냐고.
타오르는 열정에 몸을 맡겼던 시절, 어쩔 땐 그때가 조금은 그립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그 시절의 내가.
『우리가 좋아했던 것』에는 그러한 마음이 구구절절 담겨 있다. 네 명의 남녀가 모여 함께 살아가기 시작하던 그때. 요시라는 남자는 정말 로또 같은 행운으로 한 아파트에 당첨된다. 하지만 혼자 살아가기에는 지나치게 컸던 아파트. 우연에 우연을 거쳐 당나귀, 아이코, 요코와 함께 살아가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빠져들었던 그들. 이상하리만치 남을 위해 살아가던 그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그들에게는 각자의 길이 있었다.
지금 서로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그들이라 해도, 그 마음이 어찌될지는 한치 앞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난 너를 좋아했었다' 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사실이 중요한 것이니까.
"우리는 지금 타인을 위해 살고 있어.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아이코가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돼."
몇 년이 지나 그들은 각자의 길을 찾았지만, 그 시절의 행복, 미소, 슬픔 그리고 추억은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 우리는 정말 좋아했으니까. 그게 중요해.
"우린 병에 걸렸어. 상대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주려는 병에 걸렸어. 아이코도 같은 병에 걸렸어. 인간에게 과연 무엇이 행복한 건지는 긴 안목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아이코가 꿈을 이루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 생각해보면, 우리는 뭔가에 씌었어. 우리, 남의 행복을 위해 힘을 보태는 걸 좋아해. 우리라는 존재가 이미 그렇게 만들어졌으니 어쩔 도리가 없어. 이건 전생의 업 같은 거지. 그렇지만 남의 행복을 시기하고 남의 성공에 침을 뱉는 업을 지고 태어나지 않은 것을 정말로 행복하게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