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지니아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맞물리지 않는, 변질된 기억 속의 퍼즐 조각!
일본의 K도시. 그 도시에 아오사와 가 당주의 환갑, 할머님의 미수 등 삼대가 생일이 겹치는 경사가 있었다. 한 집안의 경사로 그 마을은 축제 분위기가 펼쳐진다. 이웃들과 친지들은 축하하기 위해 모이고, 또 그만큼 선물도 비례하여 들어온다.
그런데 일이 벌어진다. 선물로 들어왔던 음료수에 독이 들어 있었던 것. 상황은 일시에 급변하고, 경련을 일으키던 17명의 사람들은 죽음에 이른다. 희대의 사건이었던 이 일은 자신이 범인이라며 등장했던 한 남자가 자살하면서 흐지부지 되는데…….
그 사건 당시의 목격자 사이가 마키코. 대학생이 된 그녀는 자신이 겪었던 '희대의 사건'을 논문제출용으로 조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의 자세한 사실정황과 묘사로 책으로 출간되기에 이르고, 책은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 책의 제목은 『잊혀진 축제』.
논픽션? 난 그 말 싫어요.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고 주장해도, 사람이 쓴 것 중에 논픽션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저 눈에 보이는 픽션이 있을 뿐이죠. 눈에 보이는 것조차 거짓말을 해요. 귀에 들리는 것도, 손에 만져지는 것도. 존재하는 허구와 존재하지 않는 허구, 그 정도 차이라고 생각해요.
『유지니아』는 독살 살인사건을 다룬 『잊혀진 축제』를 중심으로 서술된다. 온다 리쿠가 주로 사용하는 시점 변경은 이 책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책을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지금 이야기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초긴장 상태로 몰아가기도 한다.
저자인 사이가 마키코, 당시 생존자였던 아오사와 히사코(눈이 불편한 소녀), 아오사와 가의 가정부, 마키코의 오빠들, 담당 형사, 『잊혀진 축제』의 담당 편집자, 자살한 용의자의 지인 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시점이 바뀐다(아쉬웠던 점은 각 사람들의 말투가 너무나 똑같아서 개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저자가 일부러 그랬을 수도 있지만).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 사람들이 기억하는 '독살 살인사건'의 기억이 제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같은 장면을 보았지만, 환경, 사람, 배경지식 등으로 진실이 왜곡되어 머릿속에 각인된다는 것. 『유지니아』는 그러한 사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저마다 사실이라고 생각하면서 말하지만,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을 본 그대로 이야기한다는 건 쉽지 않아요. 아니, 불가능합니다. 선입견이 작용한다든지, 잘못 봤다든지, 잘못 기억한다든지 하기 때문에, 같은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다 조금씩 다릅니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지식이나 받은 교육, 성격에 따라 보는 방식도 달라지잖습니까?
『유지니아』는 처음부터 시종일관 ××를 범인으로 몰고 가지만, 그렇다고 그가 확실하게 범인이라고 못박지 않는다. 마치 "당신이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과연 그가 범인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작품 내내 등장하는 백일홍마저 나를 속이고 있다는 착각까지 불러일으킬 지경이다.
작품을 읽는 내내 느꼈던, 무더운 더위와 타는 듯한 목마름. 하지만 책을 다 덮고 나서도 그 갈증은 당분간 가시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