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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뒤틀릴 대로 뒤틀린 우리의 모습!
릴리 프랭키의 신작 『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는 6개의 단편집을 담고 있다. 하지만 제목에서 연상되는 '삶에 지친 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아니다. 사실 6개의 단편 중 하나가 이 제목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단편들은 모두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절대로 '없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미래' 모습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릴리 프랭키가 선사하는 뒤틀릴 대로 뒤틀린 우리 미래의 모습을, 혹은 누구나가 꿈꾸는 이상향(?)의 모습을 『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를 통해 접할 수 있다.
미래적인 설정으로 현대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꼬아주고 있는 「대마 농가의 신부」와 「사형」. 특히 「대마 농가의 신부」는 시골총각들의 결혼이 어렵게 되자, 외국에서 신부를 수입하고 있는 현 우리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작품이었다. 있을 수 없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릴리 프랭키, 하지만 그러한 설정이 오히려 현실을 비꼬는 데는 탁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안경 낀 사내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텔레비전 화면에 빠져들었다. 사형이 공개되는 것은 그 옛날 에도시대에도 있었던 일이다.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내보여 경종으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사형이 일상화된 시대에는 그것을 지켜보는 건 일종의 오락이었다. 인간이란 어떤 것에나 익숙해지고 차츰 마비되어가는 존재인 것이다. ─「사형」중에서
릴리 프랭키의 파격적인 상상력이 담긴 『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
우리의 이면과 미래에 대한 불안, 그러면서도 '긍정'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많은 바를 시사하고 있다. 깔깔 웃으면서도 그 안에 담긴 '가시'를 모두 찾을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마지막으로 뭔가 엄청난 것을 하나쯤 남길 수는 없는 걸까.
평범한 위선자를 위해. 무지한 차별주의자를 위해. 속인과 광인을 위해. 죽어도 좋을 많나 사람들, 온갖 죄인을 위해. 그러니까 이 도시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뭔가 어마어마하게 좋은 일을 남기고 떠나고 싶다. ─「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