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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애 - Behind Time [재발매] - 1925-1955, A Memory Left At An Alley
한영애 노래 / 윈드밀미디어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때때로 '좋은 음악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하지만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이야 어떠한 답을 내 놓든 '개인적인' 것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에겐 베토벤의 ‘아우라’가 예술일 것이며, 또 어떤 사람에겐 핑클의 '뽕'끼가 예술일 터이니,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의 구분은 차라리 그것에 ‘내게’라는 두 글자를 붙여 개인의 취향에 맡겨 버리는 편이 낫다는 얘기다. 물론, 하나의 생산품으로서의 작품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바탕으로 그것의 가치를 특정 기준에 따라 판단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그러한 기준 또한 ‘아름다움’에 대한 규정만큼이나 다양할 터이니, 절대적인 기준을 세운 다는 것 또한 결국 불가능에 가까운 셈이다.
하지만, 무책임한 모호함을 감수하고, 좋은 작품이 되기 위한 조건을 ‘작품-사회-인간’ 사이에 주고받는 상호 작용을 중심에 놓고 마련해 본다면, ‘과거를 구원함으로써 현재를 이야기하고 현재를 이야기함으로써 미래를 구원하는 음악,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진정 밀접한 음악’이 그 조건들 중 주요한 하나가 될 수는 있지 않을까? 얼마 전 그러한 음악으로 가득한 음반 하나를 만났는데, 그것은 바로 한영애의 [Behind Time]이다. 이 앨범에 담긴 곱디고운 14개의 트랙에서 현재의 한영애는 과거와 소통하고 그것을 새로이 되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절규하고, 때로는 흐느끼고, 또 때로는 중얼거린다.
과거를 되살리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추억’으로 되살리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미래'로 되살리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든,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대체로 '상품'일 수 밖에 없지만, 상품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전자의 경우는 대체로 가진 자들의 배만 채우는 반면에, 후자의 경우는 그것이 생산되는 사회를 바꾸어 낸다.(물론 그 ‘바꾸어 냄’의 방식은 셀 수 없이 다양하다) 한영애의 이 앨범은 비교적 후자에 가까운데, 그녀는 13개의 어제의 파편을 오늘 날 다시-만듦으로서 분절되지 않은 '오늘'을 이야기 하고, 그럼으로써 다양한 내일의 가능성을 되살리고 있다.
지난날 민중이 겪었던 고통과 좌절은 오늘 날 민중이 겪는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 다르지 않음이 끊임없이 현재를 복제해내는 현대사회에서 인식 가능한 것이 되려면 ‘장인의 전투’가 필요하다. 특정 시대의 감수성을 보편적 삶의 진리로서의 애환으로 승화시키는 힘이 발휘되는 전투 말이다. 그 힘이 낳은 애환이 청자로 하여금 나른한 일상에 내재되어 있는 숙명적 아픔을 깨닫게 한다. 반세기 전에 유행한 이 음반의 오래된 많은 곡들이 오늘 날 TV를 가득 채운 수많은 '대중가요'보다도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청년의 마음에 더 와 닿는 이유다.
이 시대의 수많은 금순아(드라마에 나오는 상투적으로 굴절된 가족사에 매일 질질 짜는 그 금순이 말고 진짜 금순이), 부디 이 거친 타향살이에서 굳세어다오.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에, 비 오는 거리에서 외로운 거리에서, 언젠가 해방의 그날이 오면, 손잡고 울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추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