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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없는 땅 2
후나도 요이치 지음, 한희선 옮김 / 시작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의 국경지대, 말라버린 유전에서 희토류가 발견되고 땅주인인 알프레도 엘리손도는 일본인들에게 거액을 받고 땅을 넘기기로 한다. 문제는 유전지역에 살고 있는 400여명에 이르는 콜롬비아 난민들. 그들을 한번에 쓸어버리려는 알프레도에게 강도질을 통해 확보한 2천만불을 유전에 숨겨놓은 단바 하루히코와 가지 시로 일당이 맞서게 되는데...
1988년 발표된 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제4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제7회 일본모험소설협회대상을 수상한 후나토 요이치의 작품. 니시무라 쥬코, 이쿠시마 지로, 오오야부 하루히코의 작품과 동일한 유전자의 일본식 마초 액션 하드보일드 스릴러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았었는지 모르겠네요. 상상을 뛰어넘는 마초적인 설정, 지나친 성적 / 폭력적인 묘사, 개연성 없는 작위적인 전개, 결국 허무한 결말이라는 쟝르 고유의 단점이 도드라지던데 말이죠.
물론 땀 냄새 가득한 남자 이야기일뿐더러 안티 히어로가 주인공인 만큼 마초적인 설정이야 이해할 수 있으며 성적 / 폭력적 묘사는 마초 액션에서야 떼 놓을 수 없으니 그러려니 합니다. 이 점은 <신주쿠 상어>라던가 <불야성> 역시 마찬가지니까요.
그러나 개연성 없고 우연에 가득 차 있을 뿐 더러 작위적이기까지 한 전개는 용납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시작부터 죽음의 9잡거방으로 이송된 단바가 "운 좋게" 흉기를 구해 숨기고 "운 좋게" 그레고리오가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살아남고 "운 좋게" 총기를 빼앗아 소장을 덮쳐 죽인다는 식으로 전개되는 식이라 황당한데 단바가 막달레나 마리아를 보자마자 "바리빠"라고 불리는 "신의 전사"로 거듭난다는 장면은 정말이지 이게 뭔가 싶었어요. 사랑에 빠졌다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처지의 민중에게 감화된 것도 아니고, 당최 이유를 알 수 없더란 말이죠.
또 아무리 부패한 국가라도 일개 목장주인 알프레도가 가족, 관할 지역 경찰서장, 경비대장 등을 모조리 척살하고 사병집단을 고용하여 학살을 일으키려 하는데 무사히 넘어갈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도 이상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엘리손도의 땅에 무허가로 공화국을 세우겠다는 등 해괴한 논리를 들먹이며 더 나은 곳으로의 이주도 거절하는 난민들이야 말로 죽어도 싼놈들 아닌가 싶어서 뭐가 정의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지진이 덮쳐 한 방에 끝내는 결말이야말로 작위적인 설정의 끝판대장이자 허무! 그 자체였습니다. 하필 모든 전투가 끝나고 상황이 종료된 직후 지진이 딱 맞춰 시작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될 뿐더러 900페이지에 이르는 대장편의 결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허술하고 허무했어요.
그나마 베네수엘라를 무대로 한 디테일한 묘사는 발군이며 "혁명"에 대한 고찰이 덧붙여져 있다는 점은 괜찮았습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불야성>과 유사한 부분이 많이 보이는데 일본 마초 액션 하드보일드 스릴러의 단점을 모두 보여줄 뿐 아니라 이국적이면서 디테일한 배경 묘사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이 그러하죠. 하지만 <불야성>은 전개만큼은 꽤 정교했는데 이 작품은 어이없는 전개로 일관할 뿐으로 수준차이는 현격하다 생각됩니다. 맛없는 빵 위에 토핑 몇개 얹는다고 빵 맛이 달라지지는 않잖아요? 토핑은 고급스럽지만 걷어내고 남는 알맹이가 부실하니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읽는 맛은 제법 있는 편으로 아주 평가절하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기는 하나 제게는 단점이 더 도드라진 작품이었습니다. 88년 당시에는 먹혔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읽기에는 부족한 점만 눈에 많이 뜨이네요. 꼭 찾아 읽어야 할 작품은 아니라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