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슨의 미궁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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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증권회사에서 근무하다가 회사가 도산해 실업자가 된 뒤 전락한 후지키는 우연히 응모한 아르바이트를 통해 정신을 잃게된다. 그리고 그가 정신이 든 곳은 '화성' 이라는 설정의 오스트레일리아의 '벙글벙글' 국립공원으로 그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시작하게 되는데.... 

<주의 : 스포일러 있습니다> 

<검은집>, <유리망치> 딱 두편만 읽었지만 두편 모두 좋았었던, 상당한 타율을 보여주는 기시 유스케의 장편입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더군요.

성공한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재미입니다. 후지키가 알 수 없는 게임에 휘말린 뒤 4가지의 '선택지' 에서 '정보'를 선택한 뒤 게임의 단계별로 벌어지는 전개가 굉장히 흥미진진하거든요. 후지키가 자신의 정보와 아이템을 이용하여 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은 두뇌게임의 묘미도 느껴지고요. 또 뭐니뭐니해도 게다가 '식시귀'라고 불리우는 식인종과의 마지막 추격전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들기에 한숨에 읽어버릴 정도였어요. 재미만 따진다면 정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을 정도로 말이죠.
아울러 오래된 '게임북'이 큰 역할을 한다던가, '정보'를 통해 얻는 여러가지 단서들이 복선처럼 기능하는 등의 부분은 보다 작품을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단점도 커요. 가장 큰 단점이 바로 작품의 핵심이기도 한 '게임' 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처럼 '모종의 알 수 없는 단체나 집단에 의해 원치않은 게임에 참가하게 된 참가자들이 벌이는 게임과 학살극' 이라는 설정은 수많은 작품에서 사용된 뻔한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라 칭하고 있는데 어쨌건 작품이 차별화되기 위해서는 '게임'이 얼마나 설득력 있고 흥미진진하냐가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의 '게임'은 초반의 4가지 선택지 부분과 '정보'라는 선택지의 중요성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잘 짜여져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예를 들어 초반의 선택지를 선택하는 것에 있어 '호신용' 이라는 선택지의 중요성이 너무나 간과된 느낌이 큽니다. 이변이 없다면 키가 2m에 달한다는 세노오가 게임을 제압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테니까요. 하긴 플레이어 선택에 있어 세노오 같은 특출난 인물이 끼어 있다는 것 자체가 에러이기도 하죠. '게임'의 목적이나 단계별 과정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고요.
그리고 모두가 아이템을 공정하게 공유하는 식으로 흘러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도 의문이었어요. 그럴리는 없다는 아야의 주장도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식량' 이 공유되었더라면 별다른 이야기도 없이 끝나버렸을텐데 이래서야 스토리고 뭐고 있을리가 없잖아요?
마지막으로 '게임 마스터'와 '촬영자'라는 인물의 설정은 괜찮았지만 게임 수행과정에서 게임 마스터가 너무나 하는게 없다는 것 역시 어이가 없었습니다.

위에 언급한 요소 중 하나만 불거졌더라도 실패했을게 뻔한 게임. 만약 주인공 후지키의 추측대로 모종의 단체가 스토리가 있는 살육극을 스너프 비디오로 판매하기 위한 취지로 진행한 게임이었다면 더 정교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몇십억의 돈은 들었을텐데.... 이런 부분에서의 설득력이 너무 약했어요.
게임 설정의 부실함에 비하면 이러한 게임을 기획하고 실행한 주체가 밝혀지지 않고 나머지 설명들도 두루뭉실하게 넘기는 것은 단점으로 보이지도 않더군요. 하긴 어차피 이런류의 작품들 모두가 마찬가지기도 하니까.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게임' 부분만 좀 더 정교하고 설득력있게 짜 놓았더라면 '폐쇄형게임미스터리' 작품군 중에서도 단연 빛나는 존재가 되었을텐데 여러모로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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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3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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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전후 일본, 오쿠다마 깊은 곳에 위치한 히메카미 촌을 지배하는 히가미가는 '아오히메' 전승에서 비롯된 저주로 아들들이 일찍 죽어왔다. 아들 조주로와 딸 히메코 쌍둥이가 태어난 십삼년째 밤, 무사를 바라는 ‘십삼야 참배’ 의식이 진행되던 도중 히메코가 시체로 발견되고, 그로부터 10여년이 흘러 장성한 조주로가 아내를 맞기위한 혼담 모임을 여는 날 신부후보 마리코와 조주로가 목없는 사체로 발견된다.

작가 미쓰다 신조의 대표작으로 그야말로 정통 일본 본격 미스터리의 맥을 잇고 있는 작품입니다. 작가 이름과 탐정역의 캐릭터만 제외한다면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이 물씬 나거든요.

2차대전 직전부터 시작하여 한 시골지방을 지배하는 가문 안의 암투와 이해할 수 없는 증오, 그리고 그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저주와 그 저주와 관련하여 기이한 연쇄 살인사건이 10년을 주기로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기이한 콩가루집안 + 정체를 알 수 없는 저주 + 저주와 연관된 연쇄 살인사건이라는 3종 세트가 모두 모인 격이죠.

그리고 전개 방식도 특이해서 동네 주민이자 추리소설가이기도 한 히메노모리 묘겐이 잡지에 연재하는 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형식은 다르지만 얼마전 읽었던 <시체를 사는 남자>와도 좀 비슷하네요. 현대에 정통 본격물의 스타일을 부활시켰다는 점도 그러하고요.

그러나 정통 본격물로서는 기대에 못 미친 부분도 있습니다.
일단 첫번째 사건, 즉 십삼야 밤의 히메코 살인사건은 가장 중요했던 요키타카의 증언을 애매하게 처리한 것이 사건 해결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공정하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고 두번째 사건인 혼사 모임에서의 마리코 - 조주로 살인사건 역시 '마리코'의 얼굴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목격하고 보았는데 어떻게 쉽게 빠져나갈 수 있었는지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게 아쉬웠습니다. 한마디로 본격 추리물에서는 지양해야 할 '변장'을 극대화한 트릭이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어요.

아울러 너무 아오히메 전승과 연관시키려 '목없는 사체'에 집착한 듯한 느낌을 준 것도 별로 좋아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차라리 불을 지르던가 하는게 더 현실적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범인의 즉흥적인 발상이 앞뒤가 딱딱 맞아들어갈 정도로 치밀하게 진행되었다는 것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았거든요. 이러한 창작방식이 작가의 특기라고는 하는데 이래서야 너무 억지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물론 방대한 작품 곳곳에 단서를 녹여놓았다는 것, 심지어 잡지 연재물의 특성을 빌린 '막간' 이라는 부분에서 핵심적인 단서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괜찮았으며 마지막 진상이 밝혀지는 부분에서 계속해서 펼쳐지는 반전과 여운을 남기는 결말은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일본 정통 본격물을 좋아라 하기도 하고 형식도 독특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핵심 트릭만 조금 더 설득력이 있었으면 굉장한 작품이 되었을텐데 아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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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를 사는 남자
우타노 쇼고 지음, 김성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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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몽환>시리즈로 굴지의 명성을 얻었으나 더 이상 작품을 쓰지 못해 절필을 선언한 추리작가 호소미 다쓰토키는 잡지 <월간 신소설>에 연재된 작품 <백골귀>를 읽고 묘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백골귀>는 에도가와 란포를 주인공으로 하여 란포가 말려든 시라하마 삼단벽에서의 괴이한 자살사건을 친구 하기와라 사쿠타로와 함께 해결해 나가는 3부작 연재 소설.

<백골귀>의 작가 니시자키 가즈야는 호소미 다쓰토키와 만난 뒤 작품에 원전이 되는 사건에 대해 경찰출신인 외할아버지의 유품을 통해 알게되어 작품을 창작했다는 것을 털어놓고, 호소미 다쓰토키는 작품의 저작권을 자신에게 줄 것을 그에게 요청하는데...


이 작품은 작품 내부에 <백골귀>라는 소설이 포함되어 전개되는, 이른바 액자소설의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에도가와 란포 풍의 30년대 분위기 물씬 나는 <백골귀>가 잡지에 한번 연재되는 분량 (총 3회) 사이사이에 현 시점 (1990년)에서 그 소설을 접한 추리소설 작가 호소미 다쓰토키의 이야기가 겹쳐져서 하나의 완성된 결말을 이루는 구조죠. <백골귀>의 비중이 굉장히 큰 편이라 액자소설이라고 하기는 좀 어려울 수도 있는데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오히려 여러가지 면에서 전형적인 액자소설을 깬 작품이기도 합니다.

<백골귀>는 앞선 줄거리에서 이야기했듯이 30년대를 무대로 에도가와 란포와 란포의 친구로 알려진 시인 하기와라 사쿠타로가 등장해서 시라하마의 '삼단벽' 에서 발생한 자살사건에 관련된 진상을 추적하는 이야기입니다. 탐정역을 하기와라 사쿠타로가 소화하고 있으며 란포는 일본 추리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심약한 조력자'역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일단 30년대 란포의 작품과 유사한 분위기로 끌고나가려 노력한 티가 물씬 납니다. 시대적인 배경을 잘 살리기도 했지만 대단치 않아 보이는 요소들을 '괴이'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묘사들이 특히 그러하죠. 소제목들을 란포 작품에서 빌려오는 등 작품 내부에서 란포의 작품을 여러모로 인용하는 것도 인상적이고 말이죠.
그러나 단순한 분위기와 캐릭터 차용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추리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도 준수한 편입니다.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열쇠가 되는 증거가 앞부분에 공정하게 단서로 제공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복선이 깔려있으며 이러한 장치에 의한 반전도 괜찮으니까요.

그러나 왜 살해했는지에 대한 동기가 단순한 분노라는 조금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점, 반전에 이르는 과정 중 중요한 요소가 '쌍둥이'형제'라는 설정에서 기인하는 뻔한 것이었다는 등의 몇가지 단점 때문에 <백골귀>만 놓고 보면 평균 이상의 점수를 주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때문에 액자소설의 형식을 빌려 삽입된 현재의 호소미 다쓰토키의 이야기가 필요한 것이죠. <백골귀>라는 작품과 현재의 호소미 다쓰토키에 얽힌 이야기의 결말, 진짜 반전까지 들어간 최종 결말이 삽입됨으로써 작품의 재미와 수준이 함께 올라가거든요. 앞서 이야기한 '동기'와 '뻔한 설정'의 한계를 결국 극복하지는 못하나 우타노 쇼고라는 작가의 특기이기도 한 충분히 설득력있으면서도 독자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뒤통수를 치는 듯한 느낌이 아주 좋았습니다.

한마디로 액자소설의 새로운 형식을 보여준 것이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30년대 분위기의 작품들도 아주 좋아하기에 이 작품으로만 끝내지말고 에도가와 란포가 등장하는 작품을 계속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기기도 하네요.

덧붙이자면, 역자도 해설에 첨부하였지만 다 읽고나서도 제목이 왜 <시체를 사는 남자> 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시체는 <백골귀>라는 작품을 은유하는 것인지, 아니면 역자의 애너그램 풀이처럼 제목에 과거를 그리워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지 아리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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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에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6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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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가미 슌페이는 챈들러의 필립 말로우에 심취하여 탐정이 된 33살의 독신남이다. 위험한 범죄수사를 마다하지 않는 터프한 사립탐정을 꿈꾸지만 업무의 80%가 동물관련 업무. 지루한 삶을 타개하기 위해 비서를 뽑았지만 80세는 되어 보이는 할머니 아야가 자신이 채용되었다 우기며 모가미의 탐정 업무에 끼어든다...

<벽장속의 치요>로 접했던 오기와라 히로시의 장편입니다. 이전에 한 일본 잡지에서 오기와라 히로시의 장편에 대한 평이 좋았던 것이 기억나 구해 읽게 되었네요.

이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모가미 슌페이의 하드보일드를 추구하는 얼치기 삶과 아야 할머니와의 티격태격, 동물 찾기가 펼쳐지는 전반부와 모가미의 친구이기도 한 가츠유키의 장인을 살해한 개를 찾고 그 진상을 밝혀내는 후반부로 말이죠. 전반부가 '하드보일드를 추구하지만 어설픈 주인공', '80세는 되어보임직한 정체불명의 파트너 아야 할머니와의 티격태격' 이라는 요소로 유머스러운 부분이 강하다면 후반부에서는 '탐정 업무에서의 디테일과 추리적인 요소' 를 강하게 느끼게 해 줍니다.

일단 모가미 슌페이와 아야 할머니를 중심으로 한 유머 요소는 정말 확실합니다. 시종일관 읽으면서 웃음이 떠나지 않을 정도로요. 개인적으로는 필립 말로우를 동경하여 사립탐정이 되었지만 실상은 집나간 동물 찾기 전문이라는 모가미 슌페이라는 주인공이 마음에 들더군요. 뭔가 어설프지만 노력하는 모습도 좋았고 근본적으로 착하고 성실한 인물이거든요. 슈퍼 히어로를 추구하지만 실상은 찌질이에 불과한 킥 애스를 연상시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단지 유머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서 후반부의 살인사건에서 이어지는 하드한 추리 영역도 상당히 괜찮은 편입니다. 동기도 확실하고 트릭과 밝혀지는 진상도 이치에 합당한 편이라 마음에 들었으며 유머러스한 분위기에서 하드보일드 분위기를 끌어내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 엿보이는것도 좋았거든요. 달려줄때 화끈하게 달려주는 편이라 일본식 하드보일드에서 많이 봄직한 액션도 충분하고 (주로 모가미 슌페이의 도주가 중심이지만...) 친구들간의 우정과 함께 사건의 진상이 마지막에 밝혀지는 반전이 존재한다는 것 등이 그러했습니다. 특히 깜짝쇼 수준의 반전은 하드보일드 작품에서 많이 보아왔던 것인데 이 작품에서의 반전은 굉장히 현실적이면서도 놀랍다는 것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물론 추리적으로 억지스러운 점이 있고 진범과 진상을 알게 되는 것이 순전한 우연에 불과했다는 약점이 있기는 합니다. 모가미 슌페이에 비해서 아야 할머니의 캐릭터가 매력적이지 못했으며 마지막에 위기를 탈출하는 순간에서의 매듭풀기 등 작위적인 요소가 많았다는 것도 할머니의 비중에 비하면 아쉬운 부분이었고요. 아울러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건 많은데 정리나 수습이 깔끔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듯 싶다는 느낌도 조금 들었어요.

그래도 전체적으로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사건이 해결되고 할머니의 정체가 밝혀지는 결말은 살짝 감동적이기도 했고 말이죠. 작가의 초기작으로 보이는데 (데뷰는 1998년, 이 작품은 1999년작) 정돈되지는 않았지만 힘이 넘치는 모습이 좋았달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모가미 슌페이가 마음에 들어 조사해 보았더니 역시나 2007년에 <서니사이드 에그>라는 후속작이 출간되었더군요. 후속작도 국내에 빨리 소개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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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8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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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편집자로 일하던 아이자와 마코토는 실직 후 하츠키시에 바다를 찾아왔다가 익사체를 발견한다. 어쩔 수 없이 하츠키시에 머물게 된 마코토는 호기심에 방문한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주인 베니코의 간단한 테스트를 통과한 뒤 그녀의 취업제의를 받아들인다.
한편 그녀가 발견한 익사체는 하츠키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마에다 가문의 히데하루로 밝혀져 장례 준비가 진행되고, 그 와중에 마에다 가문의 현 주인 마치코마저도 어제일리어에서 살해되는데...


소도시 하자키를 무대로 한 와카타케 나나미의 코지 미스터리 두번째 작품.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라 주저없이 선택했는데 읽고나서야 시리즈 두번째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 정말 재미있네요! 작가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가 가득한 것에 더해서 추리적인 부분도 상당한 수준이라 굉장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추리적인 부분이 작품의 분위기에서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잘 짜여져 있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그다지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자가 수사와 추리의 과정에 공정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며 범인과 동기가 이치에 합당한 등 본격 추리적인 요소에 충실하거든요.
거기에 더하여 아이자와 마코토가 초반에 겪는 호텔 화재 사건이라던가 마코토와 치아키의 전화통화라던가 베니코 여사의 옛날 이야기 같은 사소한 단서들이 모두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식으로 대화나 사건이 결국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내도록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거나 복잡한 느낌 없이 추리소설로의 재미를 가득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품 전체에 넘쳐나는 작가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 역시 독특한 맛을 넘어선 즐거움을 가져다 줍니다. 시끌벅적하면서도 황당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지만 적절히 수위와 템포를 조절하며 작품과 어울리도록 녹이는 부분에서는 작가의 내공이 더욱 깊어지고 원숙해졌구나 싶더라고요. 마코토가 처음 어제일리어를 방문한 뒤 베니코 여사와 펼치는 '고딕 로맨스 퀴즈' 등 고딕 로맨스 소설에 얽힌 다양한 떡밥들은 매니아를 자극하는 맛이 있어 좋았고요.

하지만 주요 사건의 깔끔한 해결에 비해 다른 사건들은 정리가 좀 부족해 보였던 것은 아쉽네요. 일단 마치코 - 구도가 얽힌 하쓰호 살해 / 유기 사건이 그렇습니다. 구도가 하쓰호를 죽인 이유도 그다지 명쾌하지 않고 시체 유기에 대한 진상은 솔직히 억지스러웠거든요. 또 이 때문에 마치코 역시 유언장 폐기를 위해서라면 차라리 불을 지르는게 나았을 것이라는 가정이 성립하죠. 유언장도 없앨 수 있고 생사가 불분명한 하쓰호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 수 있어 재산 상속에 문제가 없으니 1석2조니까요. 어차피 자신이 죽이지 않았으니 그다지 꺼릴 것이 없잖아요? 구도가 종범임을 주장한다고 해도 마치코의 영향력이라면 별 탈 없었을텐데 말이죠.
게다가 마지막으로 구도가 마코토를 습격하면서까지 사체를 처리하려 했던 것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어차피 사건은 종결되었는데 무리수로밖에는 생각되지 않거든요. 이 부분은 그냥 고마지 반장의 추리로 밝히는게 더 나았을 것 같았습니다.

덧붙이자면 히데하루의 출생에 관련된 이야기와 히데하루가 복수를 결심한 이후의 행동들 역시 좀 뜬금없었어요. 복수의 방법도 어설펐지만 마이와 시노부가 얽히는 과정이 순전한 우연에 불과하다는 것은 앞선 정교했던 장치들에 비교한다면 너무 쉽게, 대충 간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거든요.

이상하게 적다보니 단점 부분이 더 상세한데 오해는 마시길. 장점이 더 월등한 재미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마지막 구도의 행동 등 약간 납득하기 어려운 과정이 존재하기 때문에 감점은 했지만 그래도 별점은 3.5점! 편한 마음으로 누구나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니만큼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좋겠네요. 저도 빨리 1권을 구해 읽어야겠습니다.

PS : '코지 미스터리'를 표방한 작품 치고는 너무 강력사건이 등장하며 전형적인 일본의 콩가루집안 재산싸움이 펼쳐지는 것은 의외인데 이런 작품도 코지 미스터리로 칠 수 있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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