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 상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1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미야베 미유키 엮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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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세이초 선생  (이후 "선생" 생략) 의 계승자이자 애호가로도 유명한 추리소설가 미야베 미유키 여사 (이후 "여사" 생략) 가 직접 선정한 마쓰모토 세이초의 걸작 단편 컬렉션 상권입니다.

마쓰모토 세이초야 뭐 추리 애호가는 누구나 알만한 거장이죠. "일본 사회파"라는 쟝르의 창시자이기도 하고 말이죠. 제가 마쓰모토 세이초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점과 선" 이었고, 그 이후 하서 출판사 판본을 통해 "제로의 촛점", "모래그릇" 등을 차례로 읽었고 그 이후 비교적 후기작품인 "나비성"이나 "적색등" 같은 작품까지, 국내 출간된 장편은 거진 다 읽어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명성과 작업량에 비해 국내 출간된 작품이 수가 적고, 또 단편은 극히 드물어 아쉬움을 느끼던 차에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친절한 해설과 짤막한 감상, 그리고 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이 일정한 기준으로 선정되어 실려있는 풍부한 구성이라 읽고난 후에도 만족이 큰 단편집이었습니다. 거장의 방대하고 어마어마한 작품세계를 알짜배기만 쏙쏙 뽑아 읽는 기획인지라 나름 공부도 된 것 같아 좋더군요.

이 단편 컬렉션 상권은 전부해서 4개의 큰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주제별로 조금 자세히 이야기해 본다면,

일단 제 1장인 "거장의 출발점" 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초기작으로 추리소설은 아닌 순문학 작품 2편이 실려 있습니다. 특히 데뷰작이자 아쿠타카와 상 수상작이라는 "어느 <고쿠라 일기> 전"은 가슴이 먹먹해 지는 이야기 구성은 물론 문체나 자료 조사 등 모든 부분에서 역시나 대단함을 느끼게 한 작품이었습니다. 김성종 선생님의 "어느 창녀의 죽음" 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두번째 작품인 "공갈자" 역시 좋은 작품이고 재미있게 읽긴 했는데, 지금 읽기에는 좀 낡은 감이 있고 탈옥에 관련된 내용이 반전같이 등장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너무 생각대로 이야기가 흘러가버리기 때문에 별로 상상의 여지가 없어서 좀 아쉬웠습니다. 뭐... 어차피 주제에 맞게 초기작 중에서 선정한 것이니 제 기대와 다른 것은 어쩔 수 없었겠죠. 추리물이 아니기도 하니까요.

2번째 장인 "My Favorite"는 미야베 미유키가 마음에 들어한 추리소설 4편이 실려 있습니다. "사화파"의 창시자답게 본격 정통 추리물들은 아니지만 충분히 설득력있고 지금 읽어도 그럴 듯한 트릭과 설정들이 등장하는, 그야말로 거장의 아우라를 느끼기에 충분한 좋은 작품들이 실려 있네요.
제일 먼저 등장하는 작품은 굉장히 신선하고 독특할 뿐 아니라 지금 읽어도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일 년 반만 기다려"입니다. 이 작품은 미야베 미유키도 해설에서 절찬하고 있는데 확실히 찬사가 아깝지 않은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주로 1인칭으로 그려지는 전개도 독특했고 말이죠. 유사한 설정의 작품인 다카키 아키미쓰의 "살의"와 비교해 봐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다시 찾아봐야겠네요.
그리고 이어지는, 아주 단순한 단서에서 비롯되는 무서운 진상이라는 주제를 잘 표현한 "지방지를 구독하는 여자" 도 좋았습니다. 사실 저는 이 작품이 저는 "일 년 반만 기다려" 보다도 더 낫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말로 사소한 부분에서 불거지는 추리의 과정이 잘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설득력 역시 충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의 전체 단편을 통틀어 유일하게 "탐정" 역할이 등장하기 때문에 더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이런 고전적인 요소를 무척 좋아라 하니까요.
세번째 작품인 "이외지리"의 경우는 섬뜩한 맛이 일품인 단편인데, 이 작품의 경우는 에도 시절의 전설과 같은 이야기를 소재로 하였기에 미야베 미유키의 "혼죠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느낌도 살짝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추리적인 요소는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순전히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에도 취향이 반영된 선정이 아닐까 의심되기는 합니다...
4번째 작품인 역사추리물 "삭제의 복원" 의 경우에는 1장에 실려있던 "어느 <고쿠라 일기>전"과 연결되는 소재, 즉 일본의 문호라는 오가이의 숨겨진 이야기를 파헤치는 형식의 작품인데 역사추리물로의 완성도는 높지만, 오가이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흥미가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 아쉽더군요. 소재에 대한 흥미가 제로인지라... 만약 따로 출간되었더라면 구태여 찾아 읽지 않았을 것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오가이"라는 인물에 대해 흥미가 생긴 것 정도가 수확이네요.

3번째 장인 "노래가 들린다, 그림이 보인다" 는 제목 그대로 노래와 그림에 대한 추리 단편 두편이 실려있습니다. 노래와 그림을 소재로 추리소설을 만드는 것에 대한 일종의 모범 답안 같은 작품들이랄까요?
"수사권외의 조건"은 과거의 히트곡을 테마로 한 단편으로, 누구나 아는 히트곡이지만 시간은 좀 흐른, 그래서 그 노래가 인상에 깊이 남는 상황을 잘 짚어낸 작품이었습니다. 90년대 후반에 서태지의 "난 알아요"를 듀엣으로 흥얼거리는 상황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확실히 엄청 튈것 같기는 합니다.^^
두번째 단편인 "진위의 숲"은 길이가 제법 긴, 단편보다는 중편에 가까운 작품으로 그림 위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결말이 좀 시시하고 추리물이라고 하기에는 추리적 요소가 부족한, 범죄-사기물이긴 하지만, 마쓰모토 세이초라는 작가의 새로운 면을 접한 것 같아 굉장히 신선하기도 했고 워낙에 소재가 독특해서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갤러리 페이크"의 한 에피소드를 읽는 기분이었달까요? 그러고보니 이 작품의 주인공도 엘리트지만 현재 일본 미술계에서 왕따가 되어버렸다는 측면에서 후지타 레이지와 왠지 겹쳐보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인 제 4장 "‘일본의 검은 안개’는 걷혔는가" 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많은 논픽션 시리즈 작품들 중에서 쇼와사 발굴이라는 주제의 2.26 사건 (군부 쿠데타 미수 사건) 관련 글, 그리고 전후 일본의 이른바 "추방"과 "레드퍼지 (좌익 세력 말살) 를 다룬 글, 이렇게 두편의 논픽션을 골라서 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별 재미가 없어서 대충 읽어버렸네요.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애시당초 별 관심 없는 분야였거든요. "추방과 레드퍼지" 편은 해방 직후 우리나라 상황과 오버랩되는 재미는 좀 있었지만 뭐 그뿐이었습니다. 다양한 쟝르에 손을 댄 "거장" 의 대표작을 엄선했다는 작품집 취지 탓에 당연히 포함된 것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논픽션 대신 추리단편을 더 실어주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 같아요. 마쓰모토 세이초의 히트 논픽션인 "일본의 검은 안개" 라는 시리즈 물 제목에서 "검은 안개"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다.. 정도만 새롭게 다가온 정도입니다.

덧붙여, 4개의 주제가 모두 끝난 뒷부분에는 마쓰모토 세이초와 같이 일했던 편집자 3인의 짤막한 추억담이 실려있습니다. 일종의 부록같은 느낌인데 거장이 편집자에게 시키는 "자료조사" 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것이 인상적이더군요. 앞서 말했던 "고증"과 "자료조사" 가 중요한 이야기들의 방대하고 치밀한 조사 내용을 볼 때. 편집자들의 노고가 느껴져 절로 고개가 숙여질 뿐입니다. 지금이야 인터넷 등으로 업무가 좀 편해졌을 것 같은데 60~70년대의 자료조사는 정말 발로 뛰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을테니... 편집자들의 고생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또 이렇게 편집자를 부려먹을(?) 수 있는 "거장"의 "당당한 작업 태도" 는 부러울 따름이고요. 쩝.

결론적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기획과 구성은 물론 선정된 작품 거의 대부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죠. 친절한 해설과 미야베 미유키의 짤막한 감상도 무척 좋았기에 이어질 다음 권들도 기대가 아주 큽니다. 책의 디자인도 그럴듯 했고 말이죠. 3권이 연달아 꽂혀 있는 책장의 모습을 빨리 보고 싶네요^^ 개인적 베스트는 "지방지를 구독하는 여자" 를 뽑겠습니다.

PS : 마쓰모토 세이초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표작들의 다양한 영상화가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구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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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장조의 살인
몰리 토고브 지음, 이순영 옮김 / 살림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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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위대한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팩션입니다. 슈만의 일생에서의 역사속 사실인 1854년 2월 라인강 투신 사건과 그 후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실존하는 일화를 토대로 왜 위대한 작곡가 슈만이 정신병원에 수용되어야만 했는가? 와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일단 읽는 재미는 쏠쏠했습니다. 자세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디테일한 묘사는 팩션이라는 쟝르명에 충분히 값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당대 유명 음악인들이 차례로 등장하는 것은 왠지 모르게 친숙하게 느껴지기까지 했고요. 또한 나름의 복잡한 과거사와 자신만의 철학을 지닌 음악 애호가 탐정인 주인공 프라이스 경위의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비교하자면 "애덤 댈그리쉬" 경부 같은 캐릭터가 아닐까 싶더군요. 예술적인 감수성이나 젠틀맨적인 이미지, 그리고 공직자로서의 자세 같은 부분에서 유사함을 느꼈습니다. 독신이라는 것도 그러하고요. (물론 프라이스 경위는 여자친구? 가 있긴 합니다만)

그러나 추리적으로 크게 특기할 부분은 없습니다. 책의 홍보도 "미스터리 팩션"이라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될 만큼 추리적인 부분은 많이많이 부족하거든요. 이 작품속에서 트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슈만에게만 들리는 A음" 밖에는 없는데 그나마도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트릭대로라면 당대 유명 음악인들이 거쳐가던 슈만의 집에서 과연 그러한 장치적 트릭을 남모르게 지속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라는 의문이 생기거든요. 게다가 현실적으로 이 트릭을 "지속가능한"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도 설득력이 부족했고요. 작가는 이 트릭을 슈만의 "절대음감" 에 딱 맞는 트릭이라고 주장하고는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좀 아니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음악평론가 아델만 살인사건의 경우는 추리소설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로 단서와 정보의 제공이 공정하지 않기에 더더욱 실망스러웠고요. 동기와 수법에 대한 설명은 충분한 편이지만 그 외에는 트릭도, 단서도 없습니다... 공연히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기 위한 얽히고 섥힌 인간관계만 있을 뿐이죠. 덕분에 우리의 프라이스 경위만 좌충우돌 고생하고 애꿎은 독자만 지루하게 페이지를 넘기게 만듭니다.

게다가 결말도 사실 썩 개운치 않은 편입니다. 진범이 누구인가? 에 대한 모호함은 그렇다 치더라도, 진정한 악당은 그대로 남겨진채 결국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거든요. 결말이 참으로! 정말로! 시시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네요. 예정대로 슈만은 정신병원으로 가고, 다른 사람들은 다 제 갈길을 가는 것으로 끝나버리니 이거 참... 어차피 애시당초 이야기의 소재 자체가 별로 드라마틱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겠지만 힘이 쫙 빠지는 기분이 들 정도였어요. 역사속 인물들에 대한 가공의 결말을 만들 수 없었던 작가의 고충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렇게 끝낼 것이었다면 역사를 소설로 끌어들이지 말고 차라리 역사속 인물들은 들러리로 등장하는 완전한 허구의 이야기를 창작하던가, 아니면 보다 대담한 결말 - 프라이스 경위와 클라라 슈만의 작당으로 병원으로 끌려간 슈만은 사실은 다른 사람이었다!(조율사라던가,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라던가 뭐 그런 식으로요) 라는 전개 - 로 마무리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결론내리자면, 제목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와 작품 초-중반의 분위기 덕분에 정통 팩션으로서의 기대를 한껏 갖게 만들지만 결국 제가 기대했던대로의 작품이 아니라 실망스러웠습니다. 별점은 2점으로, 천재 음악가에 대한 색다른 해석을 즐기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선택이겠지만 저같은 추리 애호가에게는 좀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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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벳의 악마
존 딕슨 카 지음, 유소영 옮김, 장경현 감수 / 고려원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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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추리클럽'의 운영자로 유명한 장경현님이 감수하셔서 이른바 "장경현의 MOM(Magnum Opus Mystery)" 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고려원북스의 걸작 미스터리 시리즈 두번째 작품으로 -첫번째 작품은 역시 딕슨 카의 "구부러진 경첩" 이었죠-  이 레이블은 유명 추리애호가의 감수답게 국내 미출간된 거장의 작품을 선정하여 출간하는 것이 굉장히 마음에 드는 시리즈입니다. 이 작품 역시 딕슨 카의 대표작이긴 하지만 국내에 출간된 적이 없어 저같이 영어가 딸리는 추리 애호가들의 맘을 아프게 했는데 이번 출간으로 오랜 갈증을 해소한 것 같아 무척이나 감사합니다.

그런데 작품은 제 생각과는 전혀 다른 판타지 물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그동안 역사 추리소설로 알고 있었는데, 정작 작품은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과거로 타임슬립한다는 이야기였으니 정말이지 상상 밖의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이러한 판타지 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사실 썩 좋아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좀 유치하다는 느낌까지 받았으니까요.

일단은 그동안 유사한 시공 이동 판타지를 너무 많이 접한 탓에 이 작품이 발표당시에 발휘했을 만한 새롭고 신선한 맛을 느끼기 힘들었다는 이유가 크겠죠. 아울러 시공 이동 판타지에서 가장 중요한 "타임 패러독스의 딜레마" - 역사를 이미 알고 있지만 그것을 바꿀 경우 현재가 영향을 받아 결국 과거로 이동한 자신마저 영향을 받게 된다는 - 역시 편법 형식으로 두루뭉실하게 넘어가고 있어서 실망스러웠고 말이죠. 더군다나 내용이 부실하고 황당한 부분도 많아서, 원래는 58세인 주인공의 행동이 나이에 걸맞지 않는 초딩스러운 행태를 많이 보이는 점이라던가 팜므파탈로 설정한, 그야말로 악마의 하수인이라 할 수 있는 여인의 존재와 정체 역시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도 감점 요소였습니다.

또한 역사 추리물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추리와 역사의 부분이 분리되어 있어서 난감하더군요. 역사 추리물이라면 실제 벌어졌던 사건에 대한 진지한 후대의 추리적 고찰이 반영되는 작품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 작품은 단지 2세기 전을 무대로 한 독살 사건일 뿐이며, 사실 시대적 배경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 트릭이기도 해서 역사 추리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싶을 정도였어요.

그러나 ...위에 장황하게 쓴 것 처럼 단점만 가득한 작품은 아닙니다. 조금 유치하긴 했지만 명성에 값하는 재미도 충분한 작품이기도 하죠. 일단 헨리 2세 치하의, 이른바 토리당 - 휘그당의 대립을 소재로 쓴 역사 이야기 부분은 제대로 된 활극의 재미가 넘칩니다. 주인공 니콜라스 펜튼이 "벨벳의 악마"라 불릴 정도의 영국 제일의 검사이자 과격한 인물이라는 것 덕분에 "검의 대가" 나 "스카라무슈" 만큼이나 검술 액션이 가득하거든요. 검술의 기술, 칼의 고증 등 역사학자이기도 했던 딕슨 카의 디테일도 제대로고요. 이러한 디테일은 실제 2세기전의 영어로 대사를 표현하는 등 이 작품에서 신경쓴 부분이 굉장히 많은 것 같은데 한글로 번역되면서 맛이 떨어지는 것 같아 조금 안타깝긴 하네요.

그리고 추리적인 부분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비소 독살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제가 그동안 보아왔던 그 어떤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의표를 찌르는, 예상밖의 트릭을 구사하고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비워놓겠는데 "그야말로 악마가 영혼을 거래할 때 맺는 계약은 절대 손해보지 않는다" 가 잘 드러나고 있으며, 이 계약 내용을 복선으로 공정하게 단서를 제공하고 있기도 해서 나름 본격물의 풍모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 대단한 점이라 할 수 있겠죠. 딕슨 카는 역시나 딕슨 카 였달까요. 역사 추리물은 아니지만, 시공 이동 판타지 물에서도 공정함을 잃지 않는 대가의 노련함이 엿보여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구부러진 경첩" 보다는 확실히 의표를 찌르는 맛이 넘치는 의외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정통 추리 애호가라면 호불호가 엇갈릴 수는 있는데 재미와 아이디어, 독창성 측면에서 충분히 점수를 줄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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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장조의 살인
몰리 토고브 지음, 이순영 옮김 / 살림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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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팩션입니다. 슈만의 일생에서의 역사속 사실인 1854년 2월 라인강 투신 사건과 그 후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실존하는 일화를 토대로 왜 위대한 작곡가 슈만이 정신병원에 수용되어야만 했는가? 와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일단 읽는 재미는 쏠쏠했습니다. 자세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디테일한 묘사는 팩션이라는 쟝르명에 충분히 값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당대 유명 음악인들이 차례로 등장하는 것은 왠지 모르게 친숙하게 느껴지기까지 했고요. 또한 나름의 복잡한 과거사와 자신만의 철학을 지닌 음악 애호가 탐정인 주인공 프라이스 경위의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비교하자면 "애덤 댈그리쉬" 경부 같은 캐릭터가 아닐까 싶더군요. 예술적인 감수성이나 젠틀맨적인 이미지, 그리고 공직자로서의 자세 같은 부분에서 유사함을 느꼈습니다. 독신이라는 것도 그러하고요. (물론 프라이스 경위는 여자친구? 가 있긴 합니다만)

그러나 추리적으로 크게 특기할 부분은 없습니다. 책의 홍보도 "미스터리 팩션"이라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될 만큼 추리적인 부분은 많이많이 부족하거든요. 이 작품속에서 트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슈만에게만 들리는 A음" 밖에는 없는데 그나마도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트릭대로라면 당대 유명 음악인들이 거쳐가던 슈만의 집에서 과연 그러한 장치적 트릭을 남모르게 지속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라는 의문이 생기거든요. 게다가 현실적으로 이 트릭을 "지속가능한"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도 설득력이 부족했고요. 작가는 이 트릭을 슈만의 "절대음감" 에 딱 맞는 트릭이라고 주장하고는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좀 아니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음악평론가 아델만 살인사건의 경우는 추리소설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로 단서와 정보의 제공이 공정하지 않기에 더더욱 실망스러웠고요. 동기와 수법에 대한 설명은 충분한 편이지만 그 외에는 트릭도, 단서도 없습니다... 공연히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기 위한 얽히고 섥힌 인간관계만 있을 뿐이죠. 덕분에 우리의 프라이스 경위만 좌충우돌 고생하고 애꿎은 독자만 지루하게 페이지를 넘기게 만듭니다.

게다가 결말도 사실 썩 개운치 않은 편입니다. 진범이 누구인가? 에 대한 모호함은 그렇다 치더라도, 진정한 악당은 그대로 남겨진채 결국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거든요. 결말이 참으로! 정말로! 시시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네요. 예정대로 슈만은 정신병원으로 가고, 다른 사람들은 다 제 갈길을 가는 것으로 끝나버리니 이거 참... 어차피 애시당초 이야기의 소재 자체가 별로 드라마틱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겠지만 힘이 다 빠져버릴것 같았습니다. 역사속 인물들에 대한 가공의 결말을 만들 수 없었던 작가의 고충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렇게 끝낼 것이었다면 역사를 소설로 끌어들이지 말고 차라리 역사속 인물들은 들러리로 등장하는 완전한 허구의 이야기를 창작하던가, 아니면 보다 대담한 결말 - 프라이스 경위와 클라라 슈만의 작당으로 병원으로 끌려간 슈만은 사실은 다른 사람이었다!(조율사라던가,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라던가 뭐 그런 식으로요) 라는 전개 - 로 마무리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결론내리자면, 제목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와 작품 초-중반의 분위기 덕분에 정통 팩션으로서의 기대를 한껏 갖게 만들지만 결국 제가 기대했던대로의 작품이 아니라 실망스러웠습니다. 별점은 2점으로, 천재 음악가에 대한 색다른 해석을 즐기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선택이겠지만 저같은 추리 애호가에게는 좀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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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퍼 - Cyph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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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따분한 현실...도피처가 필요하다.
새로운 자극의 선택 ‘디지콥’의 산업 스파이!!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실직 회계사인 모건 설리번은 불행한 삶의 탈출구를 찾던 중 다국적 하이테크 기업 디지콥의 산업 스파이가 된다. 첫 임무 수행을 위해 위조 아이디를 부여받은 모건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다양한 무역회의에 스파이로 파견되면서 본격적인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5,700초 동안의 기억이 지배하는 또 다른 세계!

경력이 쌓여 갈수록 자신감마저 생겨난 모건은 정체불명의 아름다운 여인 리타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디지콥’에서 하는 스파이 활동들은 세뇌용 약을 통해 자아를 잃게 만드는 계략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준다. 자아를 잃은 진짜 스파이의 대량 생산이라는 이 거대 음모의 희생양이 된 것.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모건은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다. 늘 괴롭히던 두통은 극에 달해 현실과 꿈의 경계마저 모호해진다. 이 악몽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죽음의 위협을 느낀 모건에게 리타는 썬웨이 사의 스파이가 되면 구해 준다고 약속한다. 이중스파이가 된 모건! 이제 생존은 그의 행동과 마음에 달려있다, 모건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 음모에 말려들게 된 것일까? 서서히 전혀 새로운 모습의 또 다른 진실의 실체가 드러나고...


줄거리대로 "세뇌"라는 설정을 기본축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큐브라는 걸출한 저예산 스릴러를 만든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영화입니다. 뭐 큐브 2는 별로였지만 이 영화는 평도 좋고 큐브에 얽매이지 않은 무언가 새로운 것이 있을것 같아 호기심반, 기대반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기대를 무자비하게 배신하더군요. 기존의 수많은 영화들에서 본듯한 설정과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왠지 이야기가 앞뒤가 안 맞는것 처럼 삐걱거립니다.

더군다나 기대했던 마지막의 반전은 억지스럽습니다. 일단 재미측면에서 어느정도 예상 가능한 반전이어서 시시했을 뿐더러, 그 당위성이 의심스럽거든요. 도대체 주인공이 왜! 그랬는가에 대한 답을 속 시원하게 주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그래도 세뇌 과정과 거대한 배후조직 (대기업)에서 벌이는 산업스파이에 대한 묘사는 제법 괜찮았습니다. 디테일하기도 하지만 모처럼 꽉 짜여진 연출력을 보여주던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루시 리우를 빼면 별로 아는 얼굴은 없지만, 남자 주인공 모건 역의 제레미 노덤은 연기력과 분위기가 제법 괜찮더군요. 은근한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루시 리우는 요새 영화 참 많이 나오는군요. 이 영화에서도 여주인공을 맡았는데 저는 도무지 감정이입이 안되더라고요. 뭔가 강하면서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나야 하는데..

결론적으로 선전만큼 재밌지 않았던 그냥 저냥한 스릴러라 생각됩니다. 반전의 묘미나 꽉 짜여진 구성에서 발생하는 서스펜스를 원하신다면 비추입니다. 큐브를 기대하신다면 분명! 실망하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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