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 The Gorgon's Look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0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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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 있습니다! - 

살아 있는 몸에 직접 석고를 발라 본뜬 조각을 만드는 라이프캐스팅의 대가로 일본의 시걸이라고 불리우는 조각가 가와시마 이사쿠는 은거한지 10년 만에 친딸 에치카를 모델로 한 석고상을 선보인다. 그러나 작품 완성 직후 이사쿠는 지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난다.

그런데 유작인 석고상의 머리 부분이 깨끗하게 잘려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는 조각상의 모델인 에치카에 대한 살인 예고장으로 받아들여진다. 가와시마 이사쿠의 동생 아쓰시와 친분이 있는 노리즈키 린타로는 우연하게 사건에 대한 의뢰를 받아 조사에 나서게 되는데...


간만에 읽은 추리소설이네요. 일본 신본격작가 노리즈키 린타로의 대표작이기도 한 작품으로 시리즈 캐릭터인 명탐정 노리즈키 린타로가 등장하는 장편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서 거의 2주일에 걸쳐 읽게 되었네요. 재미없는 작품은 아닌데 540여페이지나 되는 분량동안 꾸준히 독자를 몰입시키는 맛은 좀 적었어요.

이유로는 좀 지루했던 탓이 제일 큽니다. 등장인물과 배경설정 소개에만 거의100여페이지를 할애할 뿐 아니라 주요 사건은 가와시마 에치카 살인사건 하나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사건이 200페이지가 넘어서야 겨우 등장하기 때문에 드라마가 적고 본 이야기까지 걸리는 과정이 긴 편이거든요. 물론 석고상 머리 도난 사건도 있지만 이것은 이미 앞부분에 노리즈키 린타로에 의해 범인이 밝혀질 뿐더러 살인사건과 연관된 맥락에서 설명되기에 하나의 사건으로 보는게 맞겠죠.

또한 본격물치고는 허술한 부분이 많이 눈에 뜨이기도 합니다. 일단 범행 자체가 너무 허술해요... 에치카의 시체를 그냥 은닉하는 것이 상식선에서 올바른 일이었을텐데 목을 잘라가며 살인예고로 위장한다는 설정은 설득력이 너무나 떨어지죠.
그리고 사건과 관련된 주요 등장인물이라고는 도모토 슌, 우사미 쇼진, 가가미 부부, 가와시마 아쓰시 등 4~5명에 불과하기에 수사와 추리의 과정 역시 뻔할 뿐더러, 용의자가 좁혀지는 탓에 동기와는 별개로 막판에는 범인을 어느정도 추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었어요. 가가미(거울) 를 통한 암시도 있지만 (솔직히 유치했지만) 전개나 분위기가 어차피 도모토 슌과 우사미 쇼진은 범인이 아니라는 쪽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소거법만 가지고도 대충 답이 나오거든요.
무엇보다도 대단한 트릭보다는 꾸준한 경찰의 수사와 증언들의 조합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전개만 놓고 본다면 본격물이라기 보다는 수사물에 가깝지 않나 여겨지기까지 했습니다.

아울러 모녀가 아무리 닮아도 그렇지 소설에서처럼 꼭 닮을 수 있는지도 좀 말이 안되는것 같고 트릭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 가가미가 성폭행으로 임신을 시키는 것이 과연 한방에 가능했을지? 도 의문이었어요. 임신시키는데 실패했더라면 될때까지 강간했을거라는 이야긴지.... 나원참....
그 외에도 가장 중요했던 증언 중 하나를 단순히 산부인과 의사의 착각 (초산일 것이다) 이라고 넘어간다던가, 애시당초 가와시마가 아내의 불륜을 너무 성급히 믿게 된 것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등 뭔가 대충대충 넘어가는 부분이 많은 것도 옥의 티였습니다.

그래도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부분도 눈에 뜨입니다. 조지 시걸의 라이프 캐스팅 기법 등 조각분야에서 소재를 차용하여 작품의 핵심 트릭을 구현한 솜씨가 특히 그러한데, 예술과 추리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순수한 픽션이기는 하지만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거든요. 모녀상 연작에 담긴 의미와 데드 마스크를 통한 구현 같은 설정은 정말 탁월했어요.
추리적으로도 16년전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복잡한 관계속에서 빚어지는 인과관계만큼은 설득력있게 잘 짜여져 있고요. 아울러 엘러리 퀸 스타일을 표방한 만큼 독자에게 단서를 제대로 제공해 준다는 것 역시 본격물 애호가로서 반가운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좋았던 점 보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측면이 더 크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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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망치 - 2005년 일본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 블랙 캣(Black Cat) 10
기시 유스케 지음, 육은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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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회사의 사장 에비라가 12층 빌딩 사무실에서 타살된 시체로 발견된다. 고층빌딩 최상층, 이중강화유리로 된 유리창, 적외선 센서와 고성능 감시카메라, 그리고 비밀번호 없이는 올라갈 수 없는 엘리베이터, 이중.삼중의 철문, 복도에서 지키고 있는 세 명의 비서... 옥상으로부터도, 창문으로부터도, 천장이나 배기구로부터도, 계단으로부터도, 또한 복도로부터도 침입할 수 없는 완벽한 밀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유일한 출입문쪽 사무실에서 자고 있었던 전무가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되고, 전무의 변호를 맡은 준코는 사건 해결을 위해 수수께끼의 보안 전문 컨설던트 에노모토 케이에게 사건 해결을 의뢰한다...


오랫만에 읽는 듯한 일본 본격 장편소설로 정통 본격 추리물답게 추리적으로 아주 풍성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 작품이었습니다. 고전적인 작품과는 달리 21세기답게 감시카메라와 각종 보안장치로 무장된 하이테크 밀실이라는 설정과 가장 중요한 요소인 "어떻게 살인 현장에 감시 카메라에 들키지 않고 잠입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다양한 가설 - 루피나스 V라는 로봇의 존재를 이용한 로봇 이용 원격 조작 살인, 원숭이를 이용한 살인, 3인의 여비서의 변장을 통한 시간 벌기, 타임랩스 비디오의 촬영 주기를 이용한 순간이동 등 - 을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 좋았어요. 가설들 모두가 다른 작품이라면 핵심 트릭으로 사용되어도 괜찮을 정도로 수준이 높기도 하고요.
또한 이러한 추리적 완성도를 뒷받침하는 굉장히 상세한 자료조사와 자료들, 예를 들자면 감시카메라의 종류라던가 다양한 공학적 설명 등이 잘 녹아들어가 있고, 가설들을 위한 소설적 장치와 복선들도 탄탄하기 때문에 설득력을 배가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품이 1부, 2부로 나뉘어져 1부는 에노모토와 준코 컴비를 축으로 한 다양한 가설과 추리의 향연이라면 2부에서는 실제 범인 시점으로 진행하며 도서추리물같은 느낌도 전해 주는 특이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것도 매력적인 부분이었어요. 흡사 다른 소설 두권을 읽는 기분이 들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러나 가설들에 비한다면 실제 범행에 있어서 작위성이 짙게 느껴지는 것에 있어서는 아쉬움도 큽니다. 범인이 왜 살인까지 저질러야 했는지에 대한 부분의 설명도 부족하고, 완전범죄를 만들기 위한 스케일이 너무 커서 현실성이 떨어지거든요. 범행 역시 많은 부분 운에 기대고 있다는 것도 확실한 단점으로 보이고요.
물론 기시 유스케다운 심리묘사와 설정, 공들은 자료 조사 덕분에 이러한 단점도 어느정도 상쇄되기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적인 수준의 범행은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가설 중 하나를 실제 트릭으로 삼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았을때 평균 이상의 재미를 전해주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시니컬한 능력자이자 반쯤은 범죄자인 정체불명의 인물 에노모토 케이가 아주 괜찮았고 제목 그대로 "유리망치"가 트릭이라는 것 역시 의외성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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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치 체포록 - 에도의 명탐정 한시치의 기이한 사건기록부
오카모토 기도 지음, 추지나 옮김 / 책세상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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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역으로 오카핏키 한시치가 등장하는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단편 연작 추리소설로 미야베 미유키의 "혼죠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와 같은 류의, 즉 짓테를 들고 "오라를 받아라~!"하는 이른바 "에도 체포록"이라는 괴담 더하기 역사 추리물이라는 쟝르의 시조이자 원조격인 작품이죠. 유명세에 비한다면 번역이 뒤늦은 감도 들긴 하는데, 어쨌건 진작부터 관심있던 작품이라 출간되자마자 잽싸게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무려 4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두께에 총 12편의 중단편이 실려있는 볼륨이 일단 독자를 압도하는데, 내용이 재미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네요.

특징이라면 "유령"이 굉장히 많이 등장하는 괴담같은 이야기가 많다는 점이겠죠. 이유는 아무래도 쓰여진 시기가 1917년인 탓이 크겠지만, 단지 괴담으로 끝나지않고 작가가 후기에서 스스로 셜록 홈즈의 영향을 인정했듯이 사소한 단서에서 진상을 밝혀내는 맛이 뛰어난 편이라 추리물로서도 기대에 충분히 값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에도 말기를 사진을 보듯 세밀하게 표현해 낸 묘사가 더해졌기에 미야메 미유키 여사의 말대로 시대물에 있어서는 "성전" 이라 칭해도 부족하지 않는, 뛰어난 역사 추리물로 보아도 무리는 없을테죠.

전체적으로 평균 이상의 재미는 보장하지만 인상적이었던 작품만 살짝 언급해보자면,
괴담같은 분위기가 돋보이는 <석등롱>을 먼저 들고 싶네요. 이유를 알 수 없는 양가집 아가씨의 실종 후 그녀의 유령이 등장하여 살인까지 저지른다는 이야기로 사소한 단서에서 범인을 추리해나는 한시치의 활약이 돋보였습니다. 비약이 심하기는 하지만 추리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괴담과 추리물이 결합되어 있는 이 시리즈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역사 드라마에 가까운 <수상한 궁녀>는 셜록 홈즈 시리즈인 "너도밤나무 저택"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사건의 진상이 굉장히 작위적이고 진부하긴 했으나 한시치가 궁녀의 손가락을 관찰하고 또다른 사건의 내막을 꿰뚫어보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에도가와의 보라잉어>는 고기를 잡는 것이 금지되었었다는 당대의 설정도 재미나지만 모순된 증언들을 비롯해서 영문을 알 수 없게 복잡해진 사건을 하나로 정리하는 전개가 굉장히 마음에 들더군요. 사건이 여러개 중첩되는 것이 많은 이 시리즈의 특징을 잘 나타낸 작품이기도 하고요.

완벽한 추리물로 보기에는 약간 거리가 있는 과도기적 성격의 작품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지금 읽기에는 낡은 느낌이 들며 당대 정서와 분위기를 이해하기 힘든 등 단점도 있긴 하지만 제게는 재미와 함께 역사 추리물이라는 쟝르에 대해 다시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 좋은 작품이었다 생각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만 가치는 그 이상이기에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특히나 추리소설 애호가와 괴담 애호가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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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창 노블우드 클럽 6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 / 로크미디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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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청년 제임스 앤스웰은 예비 장인 에이버리 흄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흄이 권한 술을 먹고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정신이 든 그의 앞에 화살에 찔린 시체가 된 에이버리 흄이 놓여있었다! 그런데 그 방은 방문과 창문이 모두 닫혀진 완벽한 밀실상태.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는 그를 구하기 위해 헨리 메리베일경이 변호를 맡아 법정에서의 사투가 시작된다.

드디어 나왔다! 오랜 시간 기다린 존 딕슨 카의 대표작이 드디어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되었네요. 소식을 듣자마자 구입해서 하루만에 읽어버린, 그야말로 기다린 보람이 느껴진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일단 밀실트릭의 대가다운 솜씨가 독자를 사로잡더군요. 두터운 문에 빗장이 질러지고 창문마저도 빗장쳐진, 틈 하나 없는 완벽한 밀실 (검찰측 말대로 "봉인된 방"이라는 표현이 걸맞을 정도죠) 에서의 살인이라는 설정도 흥미롭지만 트릭도 추리소설사에 길이남을 명트릭이 아닐까 싶을정도로 잘 짜여져 있었습니다. 트릭도 트릭이지만 그에 따르는 여러가지 단서 역시 굉장히 합리적이었고요.
또한 법정드라마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의외였는데 이것이 대박이라서, 사건이 재판 과정을 통해서 증인들의 증언과 단서로 재구성되어 전개됨에 따라 고전 추리물의 최대 미덕이라 할 수 있는 완벽한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다른 추리소설에서는 독자가 머리속으로, 또는 손으로 그려야 하는 사건 시간표 같은 것도 전부 표로 제공해 주니 이보다 더 친절할 수는 없겠죠. 아울러 작가의 시리즈 탐정 캐릭터이기도 한 헨리 메리베일경의 왕실 고문 변호사로서의 활약을 보는 것도 즐거웠고요.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트릭이 영미권 독자들에게 친숙한 것이라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건의 동기가 취약하다는 것, 그리고 헨리 메리베일경이 극중에서 언급하듯 "범인이 누구인지 너무 뻔하다" 는 것은 고전 본격물로는 약점이긴 합니다. 헨리 경이 독자가 모르는 정보를 쥐고 있다는 설정도 약간 아쉬웠고요. 그래도 전개과정에서 나름 합리성을 보장하고 있기에 크게 흠잡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결론내리자면 별점 4점은 충분한, 고전 황금기 시대 본격 추리물 및 법정 미스터리 걸작이라 생각됩니다. 동서 추리문고 스타일의 낡은 일어 중역본이 아닌 깔끔한 번역으로 소개된 것도 반갑고 말이죠. 추리 애호가라면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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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의 7퍼센트 용액
니콜라스 메이어 지음, 정태원 옮김 / 시공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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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주의하세요>>

심각한 코카인 (이른바 7퍼센트 용액) 중독에 빠진 홈즈는 모리어티 교수를 악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그를 응징하기 위해 집착한다. 왓슨은 홈즈의 코카인 중독 치료가 심각하다 판단하고 그의 치료를 위해 유명 의사 프로이드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 그러나 왓슨의 머리로는 홈즈를 들키지 않고 프로이드와 만나게 하기 위한 작전은 불가능했고, 그래서 왓슨은 홈즈의 형 마이크로포드와 상의하여 홈즈를 프로이드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나게 할 수 있는 계획을 짜낸는데...

이 작품은 출간 전 부터 셜록 홈즈 팬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작품입니다. 셜록키언들 사이에서 높이 평가받는 파스티슈 작품이기 때문이죠. 홈즈 완역본은 물론 다른 파스티슈물들까지 출간되고 있는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 / 베이커가의 살인 등등등) 최근 몇년 사이의 국내 홈즈 붐에 비하면 출간이 뒤늦은 감마저 느껴지지만 나온 것만 해도 굉장히 반갑네요. 저는 사실 일본어 문고판으로 구입해 놓긴 했었지만 잠깐 보니 문장이 너무 답답해서.... 독서를 미루던 와중이기도 했는데 한국어판이 나오니 안 살 이유가 없죠. 곧바로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읽고나니 과연 유명할만 하더군요. 일단 저같은 홈즈 매니아들이 푹 빠질 수밖에 없는 디테일한 설정과 다양한 잔재미들이 넘치는데, 가장 큰 이유는 기본적인 이 작품의 이야기 설정 자체가 셜록 홈즈 첫번째 시즌의 마지막 이야기였던 모리어티 교수와의 사투와 이른바 "라이헨바흐의 비극" 에 관련된 놀라운 진상을 새롭게 전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런던 범죄계의 나폴레옹인 모리어티 교수라는 캐릭터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더불어 이 사건 자체가 왓슨이 날조한 것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와 또 다른 사건이 이 소설의 핵심 내용이거든요.
아울러 현대 정신의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셜록 홈즈를 가공의 인물에서 현실로 끌어내는 역할도 톡톡히 해 줍니다. 물론 이러한 현실세계와의 크로스오버 설정은 다른 셜록 홈즈 파스티슈 작품에서도 많이 쓰이는 설정이긴 하지만 둘의 만남이 합리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 셜록 홈즈의 추리방식과 유사하다는 것을 이야기에 잘 녹여내고 있어서 작위적이지 않고 설득력있게 전개되고 있기에 팩션같은 느낌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 외에 셜록 홈즈가 처음 만난 프로이드에 대해 추리하는 부분이라던가 후반부 주요 사건인 바론 부인 낸시 슬레이터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 등 명탐정 홈즈스러운 추리법도 원전에 충실해서 추리적인 가치도 높고 여러 고정 캐릭터들 - 모리어티를 비롯하여 마이크로포드 홈즈, 허드슨 부인, 위긴스, 토비 등등등 - 의 등장 및 충격적인 홈즈의 과거사가 밝혀지는 과정도 팬으로서 무척이나 반가웠던 요소였습니다. 다양한 당대 문물이 뒤섞이면서도 난잡하지 않고 외려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 묘사도 좋았고요. 기타 여러가지 사항들을 자세하게 주석으로 설명하는 친절함도 돋보이는 부분이었죠.

이러한 셜록 홈즈와 당대에 대한 디테일을 차치하더라도 작품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기본적인 재미가 뒷받침 되는 것 역시 명성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셜록 홈즈에게 닥친 위기를 왓슨이 친구로써 고민하고 그것을 극복하게 도와주는 전반부도 재미있지만, 작게는 한 미국여인을 도와주고 크게는 유럽에 임박한 전쟁을 막아낼 목적으로 활약하는 홈즈가 그려지는 후반부는 그야말로 모험 소설로 손색없는 활극적인 재미마저 선사해주고 있기에 눈을 떼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저같은 홈즈 매니아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작품이라는 것이겠죠. 후반부 활극이 좀 홈즈스럽지 않았던 것과 전쟁 위기라는 것에 대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 모리어티 교수에 대해 이후 설명이 등장하지 않는 것 등 약간의 감점 요소가 있어서 별점은 4점입니다만 셜록 홈즈를 좋아하신다면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국내 추리문학계를 위해 헌신하신 정태원 선생님의 번역과 후기도 놓치지 마세요.

이 책을 읽고 경성판 셜록 홈즈 파스티슈라 할 수 있는 "경성탐정록"도 읽어 주시면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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