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책 + 인형)
볼프 에를브루흐 그림, 베르너 홀츠바르트 글, 사계절출판사 편집부 옮김 / 사계절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아이들이 제일 친근하게 느끼는 것이 똥이 아닐까 싶다. 오줌은 액체이다보니 줄 흘러버려서 모양을 가늠할 수 없는데 비해서 똥은 모양도, 색깔도, 냄새도 있으니 아이들은 자연스레 똥을 친근하게 느낀다. 더구나 자기 몸에서 이런 요상한 물건이 나왔다는 것에 대해서도 신기해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깨닫게 되지. 똥은 더럽고 냄새나고, 불쾌한 것이구나 하고 말이다. 어린 시절의 어느 순간 우리는 똥을 잊어버리게 된다. 더구나 요즘 화장실은 똥은 바로 수용소로 보내버린다. 양변기에 앉아서 똥을 누면 자기 똥의 색깔이나 모양조차도 알기가 어렵게 된다. 그러나 밥만큼이나 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배우게 된다. 우리 시대는 밥보다 똥 때문에 괴로운 시대다. 똥을 못 누어서 고민하고, 독한 똥 때문에 병에 걸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똥의 이치를 알면 밥의 이치도 알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산다. 오늘도 나는 내 똥에 대해서 관찰하고 때로 명상한다. 맛이라도 한번 보았으면 좋겠는데, 아직 그 경지는 안 된다. 단지 냄새만 맡고, 색깔, 모양만 관찰할 뿐이다. 새벽 화장실에서 똥을 만날 때면, 저것이 어제 내가 먹고 남은 찌꺼기거니 하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이 책의 지은이 이름을 잘 못 외우겠다. 독일 이름은 참 익히기 거북하다. 마치 일본 사람 이름을 머리 속으로 되뇌일 때의 그런 기분이다. 베르너 홀츠바르트. 외워보아야겠다. 이 사람은 똥의 가치에 대해서 제대로 깨달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멋진 똥 이야기를 들려주다니 말이다. 더구나 두더지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생각을 하다니 기발하다. 두더지 똥이 곶감씨만하다는 것을 이 책 덕분에 처음 알았다. 눈 나쁜 두더지 머리 위에 똥을 누고 간 동물이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동물의 똥에 대해서 배운다. 비둘기, 돼지, 소, 염소, 개, 그리고 똥청소군 파리까지.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서 동물의 똥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한 것일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이것은 지식책이라고 보아도 된다. 굳이 제목을 붙인다면 <동물의 똥모양>쯤 되겠지. 그렇지만 지은이는 이것을 재미난 이야기와 그림으로 엮어냈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따라가다보면 동물의 똥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지식은 이야기의 부산물일 뿐이다. 주인과 손님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