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 교실

 

다시 사는 환희에 들떠
넘쳐나는 개선가.

여기는, 먼 먼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눈먼 몇십 대의 할아버지 때부터 시작하여, 아직까지도 우리의 감격을 풀지 못하는 나약한 꽃밭.

여기는 또 조용한 갈림길, 우리는 깨끗이 직각으로 서로 꺾여져 가자. 다시 돌아다볼 비굴한 미련은 팽개쳐 버리자.

갑자기 너는 무엇이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는가? 우리 오래 부끄러운 눈길을 피하던, 영원한 향수가 젖어있는 어머니의 젖가슴, 너는 다시 우리를 낳아준 본래 어머니의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

허면, 우리는 고운 매듭을 이어주는 숨소리를 음미할 때다. 살아있는 보람이 물결 일어 넘쳐나는 개선가를 불러준다.

여기는 먼 먼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생명의 온기를 감사하는 서정의 꽃밭.

 

 

해부학 교실 2

참, 저애 좀 봐라.
꼬옥 눈감고 웃고 있는
흰꽃으로 가슴 싼 저애 좀 봐라.

여기가 무덤이 아닐 바에야
우리는 소리 없이 울지도 못하는데

한세상 가자고 하다
끝내는 모두 지쳐버린 곳

네 살결이 표백되어
천장의 흰 바탕 보아라.

너를 얼리던 소년은
하나씩 외로운 척 흩어져가고
수줍어 눈 못뜨는 소녀야, 말해봐라.

전에는 종일 산을 싸돌고
꽃 따먹고, 색깔 있는 침을 뱉어

저 냄새, 내리는 햇살 냄새에
너는 웃기만 했지.

우리는 두 손
숨을 멈춘다.

참, 저애 좀 봐라.
그래도 볼우물 웃고
우리들 차가운 손바닥 위에
헤어지는 아늑함을 가르쳐주는
저애, 꽃순 숨소리 들어보아라.

 

 

조용한 기도

1

우리의 얼굴을 꾸밈없이 내보일 때
그 끝에 보이는 황홀함과 따뜻함이여.

한 손에 해골을 들고
내 얼굴의 향긋한 내음을 맡는다.

막막함도 잊고 웃고 있는 어제,
웃고 있는 내 얼굴, 친구들 얼굴
너무나도 섬세한 백토의 조각품.

근육을 한 개씩 분리할 때마다
어느 여름날 저녁의 바닷물 소리,
기억에 남아 있는 고운 목소리.

지금 소년는 얼마나 시원할까,
흩어져 누워 있는 때 묻은 소녀의 옷을
나는 힘들여 찢고 있다.

2

나 지금 정들어 입고 있는 옷도
천천히 모르게 헌 옷이 되게 하소서.

때가 되면 주저없이 새 옷을 마련하고
8가볍게 활개쳐 날게 하소서.

먼 거리를 나래치며 오르는
비상의 신비한 기쁨 누리게 하소서.

해부대 앞에서 눈감은 소녀같이
나를 부리소서, 시작하게 하소서.

 

정신과 병동

비 오는 가을 오후에
정신과 병동은 서 있다.
지금은 봄이지요. 봄 다음엔 겨울이 오고 겨울 다음엔 도둑놈이 옵니다. 몇 살이냐고요? 오백두 살입니다. 내 색시는 스물한 명이지요.

고시를 공부하다 지쳐버린
튼튼한 이 청년은 서 있다.
죽어가는 나무가 웃는다.
글쎄, 바그너의 작풍이 문제라니 내가 웃고 말밖에 없죠.
안 그렇습니까?

정신과 병동은
원시의 이끼가 자란다.
나르시의 수면이
비에 젖어 반짝인다.

이제 모두들 돌아왔습니다.
추상을 하다, 추상을 하다
추상이 되어버린 미술학도,
온종일 백지만 보면서도
지겹지 않고,ㅡ
가운 입은 피에로는
비 오는 것만 쓸쓸하다.

이제 모두들 깨어났습니다.

 

 

연가4

네가 어느 날 갑자기
젊은 들꽃이 되어
이 바다 앞에 서면

나는 긴 열병 끝에 온
어지러움을 일으켜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망각의 해변에
몸을 열어 눕히고
행복한 우리 누이여.

쓸려간 인파는
아직도 외면하고

사랑은 이렇게
작은 것이었구나.

 

임종

서향의 한 병실에 불이 꺼지고
어두운 겨울 그림자
낮은 산을 넘어서면

부검실은 차운 벽돌,
뼈를 톱질하는 소리로 울려도
이것은 피날레가 아니다.

나는 처음 해부학에서
자연스런 생명을 배웠다.
거기에 추위가 왔다.

막막한 청춘의 잠자리에서
나는 자주 사형선고를 받았다.
남은 시간의 화려한 현기증.

들리니, 포기한 키 큰 사내의
쓸쓸한 임종.
들리니, 이것은 피날레가 아니다.

 

바람의 말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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