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 15 | 1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신현승 옮김 / 시공사 / 200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프킨의 책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이 책 속에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바의 진실과 처방들이 제시되어 있다. 읽으면서 늘 생각하는 것이 '리프킨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이런 책들을 써낼 수 있을까'이다. 한 분야만 고정해서 써 내는 것이 아니라 현대세계의 다양한 쟁점들에 대해서 놀랄만하게 예리한 분석의 칼을 들이댄다. 리프킨의 책은 책으로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노동의 종말>이 나온 뒤 세계적으로 노동시간 단축 문제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던 것이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머리말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소의 수는 12억 8,000마리로 추산된다. 소의 사육면적은 전 세계 토지의 24%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들은 수억 명을 넉넉히 먹여 살릴 만한 양의 곡식을 먹어치우고 있다. 소의 무게를 전부 합치면 지구상의 모든 인간의 무게를 능가한다.

머리말 속에 리프킨이 주장하는 내용의 핵심들이 다 들어있다. 그 주장의 핵심들을 몇 가지로 추려본다.

1.소는 지구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다. 소를 키우는 거대한 산업단지는 미국의 서부와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아프리카에 포진하고 있다. 그 곳은 지구의 허파라고 할 수 있는 열대우림이 있는 지역인데, 이곳이 소를 키우기 위한 곡물사료제조를 위해서 불태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서 아프리카는 급속한 사막화의 길을 걷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가 내뿜는 메탄가스는 지구온난화의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으며, 축산폐수는 지하수 오염의 주요요인이 되고 있다.

2.소고기 섭취로 인하여 음식피라미드의 최상층에 위치한 유럽과 북미인들은 각종 성인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또한 축산산업을 위해서 농작물 생산토지를 잠식당한 남미와 중앙 아메리카의 농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거나, 도시빈민으로 전락하고 있다. 소는 부자나라와 가난한나라의 인민 모두에게 죽음을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고 있는 셈이다.

3.소고기 섭취 문화는 계급주의와 인종주의,식민주의,남성우월주의를 고취하는 주요한 이데올로기적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주장만 강한데 있지 않고, 풍부한 자료에 있다. 너무도 생생한 자료를 읽다보면 지은이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이 책은 전부 6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소와 서양문명
2부.미국 서부 정복기
3부.쇠고기의 산업화
4부.배부른 소 떼와 굶주린 사람들
5부.지구환경을 위협하는 소 떼
6부.육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의식구조

3부까지는 서양문명에서 소가 가지는 의미와 미국과 아메리카 대륙의 소고기 산업 성장 과정을 다루고 있다. 4부와 5부는 쇠고기 산업이 미치는 문화적 충격과 지구환경에 대한 위협을 다루고 있다. 6부에서는 육식이 가지는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정말로 햄버거나 쇠고기를 함부로 먹지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먹는 음식 전반에 대해서 새롭게 성찰하는 눈을 가지게 될 것이다. 추천의 말처럼, 우리 지구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육식을 종말시키기 위해서나 쇠고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필수 요소인 현대적인 식생활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이달 2021-10-13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대한민국사 -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한번도 人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다. 늘 國民이라는 이름으로 호명되었다. 여기에는 개인, 혹은 사람으로 취급되기보다는 국가의 신민으로 취급되어온 우리들의 역사가 투영되어 있다. 물론 '인민'이라는 말이 잘 안 쓰인 이유에는 북녘의 공산주의자들이 그 말을 즐겨쓴다는 탓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닐 터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지도이념이 '국가주의' 혹은 '우익 전체주의'였기 때문에 그러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이유가 아닐까.

우리는 제도교육을 받아온 수십년, 대중매체의 영향을 받아온 수십년 동안 끊임없이 국가우선의 이데올로기에 세뇌되어왔다. 그 이데올로기에는 개인의 행복이라는 생각은 중요하게 간주되지 않았다. 국가가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이 국가를 위해서 봉사해야만 하는 체제를 쉴새없이 구축해온 것이 우리의 현대사가 아니었나. 지금도 국가우선의 체제라는 성격은 변함이 없다. 남북한 양쪽에 버티고 선 두개의 제도는 이제 '국가를 위한 국가'라는 이념을 기리는 기념물이자 화석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대통령을 가지게 된 남쪽은 체제의 성격이 조금씩 변해왔지만, 북쪽은 여전히 경직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 책에는 이와같이 화석이 된 국가인 남북한의 국가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힘이 있다. 참으로 예리한 분석의 도구라고 할까? 글쓴이는 쉽고 재미있게, 때로는 통절하게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우리를 지적인 편력으로 이끈다. 대한민국의 진짜 실체를 드러내는 사건들, 이야깃거리들을 가지고 숨겨진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있다. 그것들은 분노 이전에 슬픔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우리 민족은 참 험한 길을 힘들게도 지나왔구나 하는 애잔함 같은 것 말이다. 이 책에 실린 26편의 이야기들 모두가 시사주간지인 <한겨레21>에 매주 실렸던 것이고, 그 주제 역시 연재 당시의 첨예한 사회적 쟁점들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장님코끼리 만지듯 하다가 우리는 어느새 코끼리라는 존재의 실체를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전부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대한민국의 정체를 말할 때 이야기되는 것들 여섯 개가 있다. 유산된 민주주의 혁명, 공화제, 임시정부 계승론, 태극기 탄생의 배경, 단군과 단일민족 신화의 허상, 김두한의 행적들이 논의되고 있다. 2부에서는 친일파와 고문경찰, 군사독재, 6.25전후의 민간인 학살, 일제의 만주국이 대한민국에 남긴 유산들이 논의되고 있다. 3부에서는 보수주의, 좌우대립, 사회주의, 연좌제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4부에서는 미국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주로 다루어진다. 맥아더장군, 정전협정 문제, SOFA협정, 광화문 촛불시위들이 다루어진다. 5부에서는 병영국가 대한민국의 이면인 징병제, 병역기피의 사회사가 다루어진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규정하는 말로 적절한 것이 '이식근대화'와 '압축근대화'이다. 일본과 미국이라는 두 강대국의 문화와 경제건설 경험을 이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 근대 자본주의 경제 건설이다. 또한 급속한 시간의 압축을 통해서 이룩한 도시화, 공업화는 대한민국사회를 세계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회로 만들었다. 도시화 비율이 1960년 28%에서 1995년 78.5%로 진행된 것만 해도 유럽이 150~200년 걸려서 할 것을 30~40년 만에 해치운 놀라운 경험이다. 정작 우리는 그것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시인 김진경은 <30년에 300년을 산 사람이 어떻게 자기 자신일 수 있을까>라고 되물었던 적이 있다. 이와 같은 급속한 자본주의적 근대화는 이른바 '산업혁명'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러나 경제의 급속한 변화는 사회구성원의 급속한 계급변동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그것은 곧 정치지형의 새로운 변화를 추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같은 정치의 변화를 겪지 못했다. 이른바 '민주주의혁명'을 우리는 겪어내지 못했다. 그 대신 숱한 '항쟁'들을 겪었다. 4월항쟁(1960년), 5월항쟁(1980년), 6월항쟁(1987년). 이 항쟁들을 통해서나마 우리 역사는 한걸음씩 전진해왔다. 그러나 혁명적 변화를 겪지 못하다보니 낡은 세력들을 청산하지 못하고 아직도 그들을 우리사회의 돈과 권력을 쥐고 흔드는 세력으로 용인해주고 있다. 4.15총선을 지난 이제서야 우리역사는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한 길로 접어든 셈이다.

대한민국의 근저를 구축한 것은 두가지 세력이다. 친일파와 미국. 이 둘은 강력한 결합으로 한반도 남쪽에 강력한 친미반공기지를 건설했다. 여기에는 1945년 해방 이후의 격렬한 좌우대립, 1950-53년의 한국전쟁, 그리고 남한에서 좌파정치세력의 완전한 제거(한홍구 교수에 의하면 멸균실 수준의 반공),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100만명에 이르는), 강력한 군대에 근거한 병영국가의 건설, 극우반동적 정치세력의 활개들이 겹쳐진다. 용서할 수 없는 반민족세력이있던 친일파들이 친미우파적 정치세력으로 복권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 1946년의 신탁통치논쟁이었다. 이 논쟁, 혹은 대립으로 인해서 친일세력들은 정치적 시민권을 회복했다. 여기에는 친일경찰과 만주국군대 출신들을 중용한 미국정의 행위도 한 몫을 했다. 이승만을 정점으로 하는 친미우파세력들은 여기서 더 내달려 남한단독정부수립이라는 도박을 내걸어 승리했다. 1948년에 남북 양쪽에 건설된 국가들은 공히 중간파들이 배제된 분열주의 정권들이었다. 1950년에 일어난 전쟁은 그 싹을 이미 1948년에 배태하고 있었던 셈이다. 내전인 동시에 체제간 이데올로기전쟁일 수 밖에 없었던 이 전쟁은 결과적으로 남북한의 인민들을 '후라이팬을 피하고 보니 불구덩이'라는 말이 들어맞을 만큼 일제시대보다 더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또한 전쟁 중에 벌어진 10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학살'은 인민을 정치의 주인이 아닌 정치의 노예, 혹은 정치의 도망자로 만들었다. 이후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된 정치가 복원된 것은 그 시기의 기억을 지니지 않은 3세대에게서 가능한 일이었다.

한홍구 교수의 대단한 입심은 그의 해박한 역시지식과 주체적인 역사해석 덕분에 더욱 힘이 커졌다. 요소요소를 건드리며 진실을 드러내는 그의 능력에 새삼 경탄한다.  살아있는 역사, 현재를 해석하는 피와 살이 되는 역사, 미래를 위해 버려야할 요소를 깨닫게 해주는 역사를 그는 보여주었다.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비판의 무기가 될 것이고, 과거를 미화하는데 몰두하는 이들에게는 자기 등을 내려치는 죽비같은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 15 | 1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