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사진
페터 슈테판 지음, 이영아 옮김 / 예담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었다. 표지에 실려있는 아폴로11호의 달착륙 사진은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사진은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기대도 그렇게 크게 하지 않았다. 별 생각없이 넘겨가던 나는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사진과 레닌의 유명한 연설 사진에서 눈길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1차대전 이후에 터키는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했는데, 거의 100만명 가까운 대량학살이었다고 한다. 20세기 대량학살의 원조처럼 이야기되는 사건이다. 역사책에서 가끔씩 언급하는 이야기들을 들었는데 사진으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200명 가까운 아르메니아인들이 뼈와 가죽이 상접한 채로 죽어있는 장면은 지옥 그 자체다. 어쩌면 우리는 한국현대사를 통해서 이런 종류의 사진에 익숙한 사람들인데도 그 죽음의 장면은 처참하다. 담요에 덮여있거나 알몸으로 죽어있는 사람들의 군상은 어린아이에서부터 젊은이,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공동체를 이루고 살던 한 마을 사람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한 느낌이 든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있어서 우리는 아르메니아인 학살에 대해서 바로 알게 된다. 과연 영상은 글보다 직접적이다. 글로 쓴 기록들은 우리에게 상상을 요청한다. 그러나 사진은 상상의 여지를 줄여준다. 인식은 직접적이다. 그만큼 사진의 충격파는 크다.

이 책 속에는 85장의 사진이 들어있다. 20세기를 기록한 가장 유명한 사진들이다. 한번씩은 신문이나 책, 방송들에서 보아왔던 사진들이다. 사진으로 보는 20세기라고 책 제목을 달아서 무방할 듯하다. 이 책을 편집한 사람은 독일의 사진작가인데, 사진을 보는 시각이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미디어를 보는 시각도 비판적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거대방송사와 신문사들이 보여주는 사진은 아무래도 사회적인 진실을 순화시킨 것들이 많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고른 사진들이다보니 극단의 시대이자 폭력의 세기라는 20세기의 본질적인 사건들을 포착한 사진들이 많다. 러시아혁명, 1차세계대전, 스페인내전, 2차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캄보디아학살, 냉전, 냉전의해체, 걸프전쟁. 대부분 전쟁에 관한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다. 21세기의 상징이 된 9.11테러와 이라크전쟁에 관한 사진은 없다. 이 책의 원본이 나오던 2000년의 시점에 가장 비극적인 상징은 걸프전쟁과 보스니아 내전, 팔레스타인 분쟁 같은 것들이다.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21세기는 20세기보다 더한 극단이 시대가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 같은 것들도 들게 한다.

한국에 관한 사진은 딱 한장 나온다. 미국의 폭격기 여러 대에서 눈내리는것처럼 폭탄을 퍼붓고 있는 장면이다. 처음 사진을 볼 때는 늘 보던 사진이라서 별 생각없이 보았는데, 해설하는 사람의 해설이 정신을 번쩍들게 하는 말을 했다. 대강 이렇게 기억이 된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의 산하는 지극히 평화롭다. 그 자연 속에는 특별한 군사적인 목표물이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미군은 엄청난 폭탄을 쏟아붓고 있다.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내가 그 자리에 있던 피난민이거나 인민군이었다면 어땠을까하고 상상해보니 정말 끔찍했다. 그야말로 어떤 지역을 융단깔듯이 폭탄을 퍼붓는 한국전쟁의 시기는 '폭격의 시대'라고 할 만하다. 제공권을 장학했던 미군이 한반도에 쏟아부었던 폭탄의 양은 태평양전쟁시기에 일본에 대항해서 투하했던 것보다 더 많다고 한다. 폭탄은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는다. 우선 폭탄으로 땅에 보이는 모든 움직이는 목표물과 무기로 쓰일 수 있는 것, 엄폐물로 이용될 수 있는 건물은 모두 부수어버린다. 물론 미군은 한반도를 공산주의의 위협에서 구원해준 십자군이었지만, 그 댓가로 한반도는 셀 수 없는 파괴와 죽음의 시기를 건너왔다. 미군이 한반도에서 퍼부었던 폭탄 중에는 네이팜탄이 많았다. 숲이나 마을을 통째로 태워버리는 폭탄이 네이팜탄이다. 베트남 전쟁 중에 네이팜탄을 맞은 마을을 피해서 아이들이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치는 유명한 사진이 있다. 막 10살 정도 되는 여자아이가 불에 붙은 옷을 벗어버리고 울부짖으면서 도망치다가 미군을 만나는 장면인데, 나는 그 장면이 꼭 20여년 전에 한반도에서 벌어진 장면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단지 사진으로 기록되지 않았다는 점만 다를 뿐이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사진을 들라고 하면 마릴린 먼로가 하얀 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다가 바람에 날려올라간 치마를 누르는 장면이다. 간디가 물레를 돌리고 있는 사진이나 아인슈타인의 사진, 레닌의 연설 장면 같은 사진도 마음에 들지만 웬지 먼로의 사진에 마음이 갔다. 보통 방송이나 신문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각도에서 찍은 사진인데 먼로의 풍부한 얼굴표정이 드러나있어서 마음이 가는 사진이었다. 그 표정과 눈빛 속에 들어있는 무엇인가가 섹스심벌이라는 기존의 먼로의 이미지와는 다른 느낌을 주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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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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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실 김형경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별 느낌이 없었다. <한겨레>에 실렸던 그의 연재소설이나 심리상담을 그저 그렇게 주목하지 못하고 넘어갔다. 그에 대해 기억하는 정도는 <국민일보>1억고료 당선작인 장편소설 <새는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의 작가라는 것 정도였다. 그러던 참에 이번에 나온 <천개의 공감>이라는 책의 광고를 신문에서 자주 보면서 '한번 사서 볼까'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우선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표지의 그림도 인상적이었으며, 빨간색 버버리를 입고 찍은 작가의 사진도 매력적이었다. 어찌어찌하다가 서점에서 그 책을 샀는데 바로 읽지는 못했다. 어느 잠 못 드는 밤에 우연히 뒤져본 책 속의 사연들에 마음이 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나서  바로 그 책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사람풍경>이라는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인터넷 서점의 소개글을 보니 해외여행과 인간심리의 기본적인 쟁점들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고 되어 있어서 <사람풍경>을 먼저 보고 <천개의 공감>은 나중에 보자고 마음을 정했다. 책을 사서 본 처음 소감은 책 표지는 <천개의 공감>이 훨씬 낫다는 것이었다. 이 책 표지에 나오는 GROTTO라는 이탈리어어를 달고 서있는 두 가지 옷 모양은 마음에 쏙 들지가 않는다. 어쩌면 내 마음 속 방어기제인지도 모르겠다.

심리여행에세이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심리학의 문제와 여행(이탈리아와 프랑스,독일, 뉴질랜드가 대부분인)경험을 풀어쓴 에세이다. 김형경이 처음으로 낸 에세이집이라고 한다. 책의 내용은 거의 대부분 유럽여행의 경험과 거기에 연관된 심리학의 개념을 소개하고, 자신이 과거에 겪은 어떤 문제들을 분석하고 있다. 어찌보면 고백록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부분 부분 소개되는 글쓴이의 어린시절이나 대학시절, 직장경험을 조립하면서 김형경이라는 사람의 삶을 재구성하게 된다. 태어난 곳은 강원도 강릉이며, 어린시절에는 외할머니 댁에서 자랐다고 한다. 동생이 있었던 것 같고, 부모는 서로 사이가 안 좋았던 것 같다. 결국 부모는 이혼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엄마는 엄격한 편이었으며, 아빠는 중등학교 과학선생님이셨던 모양이다. 일곱 살 때까지 외할머니댁에서 보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어린시절에 엄마와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아빠의 뒷모습에 절망했다고 나온 것으로 보면 청소년 시절에도 부모 때문에 마음이 아주 괴로웠던 모양이다. 글쓰기에 재능이 있어서 소설도 쓰고 신문기자도 되었지만 삼십대의 삶이 절망적이었던 것 같다. 40살 무렵에 집을 다 팔아서 마련한 돈으로 9개월 정도 유럽과 뉴질랜드 등지를 떠돌아다니는 여행을 했다고 한다. 이 정도가 내가 이 책을 읽고 대강 추려낸 지은이의 살아온 내력이다. 내가 무슨 여성잡지 기자가 된 느낌이 든다.

이십대와 삼십대가 절망적으로 느껴졌다고 하는데, 그것의 원인을 작가는 대부분 어린시절의 부모, 특히 엄마에게서 찾는다. 엄마의 사랑과 보살핌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린시절의 마음풍경이 공허했고, 그 원인 때문에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이 생겨서 젊은 시절을 행복하지 못하게 보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 때부터 명리학이나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400권도 더 되는 심리학 관련 책을 읽었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서는 정신분석도 오랫동안 받았고, 그 경험이 자신의 마음 속에 공허하게 뚫려있던 구멍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은 마음이 평안한 어떤 상태에 도달했다는 느낌인데, 그것을 작가는 여행과 정신분석(어찌보면 누군가가 그의 이야기를 무조건 들어주는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된 상태로 이야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현실의 삶을 떠나서 낯선 곳으로 간다는 것, 내 이야기를 비판없이 무조건 들어주는 사람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나는 남자인데도 그의 경험과 심리분석에 많이 공감하게 되었다. 나 역시 내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이 알 수 없는 시스템이 결국에는 어린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것을 상당히 정확하게 집어서 자세히 보여준다. 내 경우에는 어린시절에 억압을 많이 느끼다보니 무의식 속에 상당히 많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쟁여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억압적 상황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사용한 심리적 방어기제들도 다양하다. 십대 시절에는 회피와 나르시시즘, 세상일에 초연한 듯이 화내지 않는 착한 사람 행세하기, 어떤 대상에 나를 동일시 하는 것들을 통해서 그 모든 심리적 억압의 상황을 견뎌내는 생활을 해왔다. 스스로 생각해보면 나는 '건강한 자아 중심성'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른바 인정과 지지를 받지 못하다보니 생겨난 결과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많은 콤플렉스의 덩어리이면서도 남들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나름대로의 나르시시즘을 통해서 내 자아를 지키는 방식을 써온 것이 아닌가 싶다. 전형적인 방어기제들을 써 온 셈인데, 그게 결국은 자아의 현실가 대결하는 것을 회피함으로써 자아를 견고하게 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스물다섯살이 지나면 부모를 원망하면 안된다는 서양속담도 있다고 하는데, 결국 지금의 나이에서는 스스로 자신의 심리를 분석해서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김형경의 책은 그런 길을 자신의 사례를 통해서 잘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일종의 멘토 같은 역할을 하는 책이다.

 이틀이면 다 볼 수 있을 정도 책인데, 한번 보고 책꽂이에 꽂아두기에는 아까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번 읽어보고 나에게나 주위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내 보고 싶다. 책 속에 소개한 심리적 개념들을 자세히 알게 해주는 책들도 찾아서 읽어보고 싶고, 김형경의 <세월>이나 <성에>,<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단종은 키가 작다>같은 소설들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 40대 전문직 여성이라는 작가의 위치를 염두에 두고 그의 글을 읽어야 하겠지만, 우선은 편견없이 그의 글 속에 빠져서 공감하고 감동되고 싶다. 다음은 <천개의 공감>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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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케네스 C. 데이비스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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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두꺼운 책이라서 도전하기가 망설여지는 책이다. 쪽수를 보니 670쪽 정도 된다. 이 정도면 보통 책의 두 배 정도 되는 덩치다. 그렇지만 책 속으로 들어가면 금방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자신을 느낄 수 있다. 케네스 데이비스라는 작가의 글쓰기 내공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이미 번역되어 나온 다른 시리즈(영어로 하면 Don't know much about )가 상당하다. 우리 나라에서도 상당히 잘 팔리는 외국작가인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번역본 중에서 한 권 정도를 더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필력을 다른 곳에서도 한번 맛보고 싶어지게 된다. <나를 부르는 숲>을 쓴 빌 브라이슨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작가이다.

미국역사를 시초에서부터 현재까지 통사적으로 훑고 있는 책인데도 중간에 지루하지 않고 잘 나간다. 우선 책의 체제가 보통과는 다르다. 시대별로 중요한 물음을 두고 거기에 대답하는 방식이다. 마치 인터넷 게시판에 있는 FAQ처럼 느껴진다. 내가 미국사에 무지한 상태인데도 잘 넘어간다. 예를 들자면, 나는 디즈니의 영화 <포카혼타스>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존 스미스 선장이 뭐하는 사람인지 잘 몰랐다. 그런데, 여기서는 우선 독자 대부분이 존 스미스 선장이 뭐하는 사람인지도 알고, 포카혼타스도 누군지 잘 안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한다. 마치 우리나라 역사에서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를 이야기하면 우리는 잘 알지만, 외국인은 그 이름조차 생소한 것과 같은 이치다. 무지를 하나하나 돌파해가면서 새로운 사실을 익혀서 알게 된다.

역시 미국역사의 시점은 콜롬버스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1492년 콜롬버스가 스페인왕가의 후원을 받고 인도와 중국으로 가는 항로를 찾기 위해서 대서양을 건너가기 시작한 지 꼬박 두달 만에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딛게 된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서 함락되면서 중국과 인도와 교통하던 직항로가 사라지면서 유럽인들은 우회하는 길을 찾기 위해서 고심하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이후에 콜롬버스가 아메리카에서 한 일은 앞으로 이 대륙에서 벌어질 일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주민에 대한 학살과 착취, 개척이라는 일은 앞으로 500년 이상 내내 그 대륙에서 벌어진 일이다. 빙하기 때 베링해협을 통해서 건너갔다고 추정되는 그 섬의 원주민들은 사실상 황인종, 그 중에서도 몽골족에 가까운 사람들로 보인다. 시베리아와 만주 지역의 족속들이 가지고 있던 종교와 습속들과 많이 닮아있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문화를 보면 우리는 은연 중에 인디언의 심정이 되어 백인들을 비판적인 눈길로 보게 된다. 인디언이 베풀 친절을 백인들은 침략과 착취로 보답한다. 남미에서 스페인이 벌인 일이나 북미에서 영국이 벌인 일이나 모두가 똑같이 신과 왕의 이름으로 행해진 것들이다. 어쩌면 그것은 기독교 문명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정신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콜롬버스 이후로 계속된 신대륙 발견의 시대를 유럽인들은 '대항해 시대'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에게는 '대침략 시대'나 '대학살 시대'라고 할 만하다.

미국사의 전환점을 몇개 보자면 1776년에 일어난 독립혁명과 1861년에 일어난 남북전쟁, 1929년의 대공황 같은 사건들을 들 수 있겠다. 2000년에 일어난 911 테러는 겨우 몇 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우리가 워낙 민감하게 느껴서 그렇지 미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사건은 아니었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많이 바뀌었다는 정도로 볼 만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독립혁명과 내전, 대공황은 미국사회를 그야말로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명적인 사건들이었다. 독립혁명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낸 사건이었다면, 내전은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성과를 내었지만  이후에 영원히 아물지 않는 남북간의 증오와 불신의 시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1929년의 대공황은 자본주의에 대한 미국민의 태도를 많이 바꾸어 놓았다. 기업의 자유에 대해서는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생각을 벗어나서 비로소 경제에 국가가 개입하는 자본주의의 수정을 행한 것이다. 지금의 미국사회와 대외정책을 이해하려면 1929년의 대공황과 그 이후에 미국이 벌인 대외전쟁들-2차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의 역사와 본질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것이 긴요할 것 같다.

미국사의 전개를 보니까 거기에도 독립이후 200여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근본정신이 있다. 미국 정신의 쟁점은 자유와 민주주의, 제국주의에 대한 끝없는 투쟁의 역사인것 처럼 보인다. 미국유권자연맹의 사무실 벽에 붙어있다는 '자유는 영원한 감시의 대가'이다라는 경구처럼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영원한 감시와 투쟁의 결과로 지금의 미국이 이만한 정도로 존재하는 것 같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제국주의 정책과 인종차별, 빈부격차 밖에 보이지 않지만, 미국 내부에는 세계 제일의 국가로 존재하는 만큼의 무수한 장점들이 많은 국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피상적인 관찰이다. 미국의 현재에 대한 분석들도 더 깊이 알아 보아야 하겠고, 미국을 현지에서 경험해보는 것도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한 개의 나라가 아니라, 현재의 세계를 상징하는 나라라고 보면 되겠다. 대한민국을 아는 것만큼이나 미국을 자세히 아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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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교양으로 읽는 미국의 역사
실비아 엥글레르트 지음, 장혜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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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치고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경제,정치,문화,교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을 알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지구에는 하고 많은 나라들이 많지만 대한민국은 미국이라는 상수를 개입시키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나라다. 서설이 길었는데, 요는 미국을 이해하자는 것이다. 반미주의자든, 친미주의자든 상관없이 말이다. 미국의 역사, 지리, 문화, 정치, 경제를 속속들이 아는 것이 곧 세계를 아는 것이요, 대한민국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이 책은 독일인이 쓴 미국사 개론이다. 미국을 잘 알고 청소년 시절에 미국에서도 살아본 미국통이다. 나름대로 객관적인 시각을 살려서 미국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대학시절에도 미국학을 전공했단다. 현재는 독일의 언론인이라고 하는데, 글을 쓰는 관점도 학자풍이 아니라서 책이 쉽게 읽힌다. 책 두께도 300쪽 정도라서 부담도 없다. 초심자들에게 딱 좋은 책이다. 단, 이 책만 읽고서 미국역사를 논하기에는 너무 간단하다는 것이 단점이다. 물론 이 책의 의도에 비추어본다면 단점도 아니겠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더 깊이 미국역사를 이해하고 싶으면 두꺼운 개론서를 보던지, 각각의 주제들을 다룬 책들을 따로 보던지 하면 될 것 같다. 나는 케네스 데이비스의 <미국에 대해서 알아야 할 모든 것>과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저항사>를 여름 방학 중에 같이 읽어볼 계획이다. 그게 끝나면 베트남 전쟁과 쿠바혁명에 대한 책도 같이 읽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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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시대 - 에릭 홉스봄 자서전
에릭 홉스봄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홉스봄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아직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홉스봄의 역작으로 알려진 근현대사 4부작도 우리집 책꽂이에는 다 있다.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읽어보았다. 제국의 시대는 읽다가 말았고 극단의 시대도 70% 정도 읽다가 그만두고 있다. 읽을 때는 무척 흥미롭게 들어가다가도 다 읽고나면 좀 헷갈리는 것이 사실 19세기 서양사다. 극단의 시대는 20세기 현대사라서 그런지 좀 쉽게 넘어간 편이다. 홉스봄의 자서전을 보니 극단의 시대는 세계적으로 많이 팔린 책이라고 한다.

홉스봄이 지은 책들의 저자 소개를 통해서 어렴풋하게 지은이 소개를 보던 것과는 다른 딴판의 세계가 이 책 속에는 펼쳐져 있다. 막연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을 지은이는 살아냈다. 캠브리지대학교 출신으로 캠브리지 버크벡 칼리지 교수로 평생을 가르쳤다는 대목도 알고보니 표면적으로 보는 것하고 다르다. 나는 그가 킹스칼리지를 졸업하고 비슷한 곳의 칼리지에서 가르쳤던 캠브리지대학교의 교수이겠거니 했는데 저간의 사정이 다르다. 공산당 출신의 학자이다보니 냉전 시기에 캠브리지의 킹스칼리지에서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고 버크벡 칼리지에서 가르쳤는데, 그곳은 야간대학이었다. 야간에 직장인 출신들의 역사학도들을 가르쳤던 것인데, 결국 홉스봄은 평생 캠브리지의 주류에는 속하지 못했던 셈이다. 똑똑했지만 처음부터 잘나간 사람이 아니었단 것이다. 남들은 30대에 이루어놓는 업적들을 홉스봄은 40대부터 쌓아나갔다. 그 이유는 오로지 그가 선택한 공산당원이라는 신분때문이었다. 홉스봄은 그의 동지들이 1956년의 흐루시초프 비밀연설로 스탈린의 학정이 드러나자 공산당을 떠날 때도 공산당원으로 남았다. 또한 1968년의 헝가리 사태때도 남았다. 결국 그는 1990년대에 소련이 무너지고 영국공산당이 스스로 해체를 선언하자 공산당원 신분을 그만두었다. 자서전을 서술하는 내내 이 '공산주의'문제는 쉬지 않고 나온다. 그만큼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홉스봄은 자신의 저서인 <극단의 시대>에서 20세기 역사는 결국 레닌의 사상이 빗어낸 공산당의 성장, 투쟁, 소멸의 역사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왜 홉스봄이 스스로도 실망한 공산당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공산당원이라는 신분을 지켰는지는 책을 자세히 읽어보아야 할 것이다.

홉스봄의 삶에 이정표가 되는 도시는 알렉산드리아, 빈, 베를린, 런던, 뉴욕이되겠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홉스봄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에릭 홉스봄을 낳았다. 그 때가 1917년이었다. 공교롭게도 홉스봄은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해에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유태인이었다. 아버지는 잉글랜드 태생이었고, 어머니는 오스트리아 사람이었다. 빈으로 이주한 두 사람은 곧 1929년 대공황의 타격을 받고 생활고에 시달린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죽고, 곧이어 어머니도 죽는다. 아버지는 약간 무능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시대가 불러온 무능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소설도 쓰고 번역도 하던 중산층 출신의 지식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어머니가 안데르센의 동화를 좋아했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홉스봄의 재능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일 수도 있겠다. 청소년 시절에 부모를 잃어버린 에릭은 베를린의 친척집으로 옮기게 된다. 이 시기를 에릭은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본다. 바로 거기서 그는 공산주의 사상을 접하고 독일 공산당에 가입하게 된다. 곧이어 히틀러의 나찌당이 바이마르 공화국을 삼키고 전체주의 국가를 만드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 뒤에 에릭은 런던의 이모 집으로 옮겨간다. 거기서 그는 고등학교 시절을 마감하고 캠브리지대학교에 입학한다.

홉스봄이 캠브리지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은 대학생들 사이에 공산주의 사상이 가장 맹휘를 떨치던 시절이었다. 마치 80년대에 한국의 대학교에서 맑스주의가 사상의 제왕처럼 행세했듯이 30년대의 캠브리지대학교도 그러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다르게 당대 유럽에서 대부분 대학생들은 진보적이라기보다는 보수적이었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에 이어서 등장한 파시즘은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를 삼킬듯한 기세였다. 스페인 내전은 파시즘과 민주주의의 대결장이었다. 그 무렵에 가장 열심히 파시즘과 싸운 세력은 공산주의였다. 파시즘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반파시즘의 투사인 공산당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홉스봄은 그런 시기에 캠브리지대학교에서 학생공산주의자로 활약을 했다. 홉스봄의 동료학생들 중에 몇몇은 스페인 내전에 공화파로 참가해서 싸우다가 전사한 경우도 있었다. 홉스봄은 혁명가 유형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후에 2차 대전시기에 영국군으로 징집을 받았지만, 공산주의 활동 전력 때문에 중요한 부대에는 속하지 못하고, 공병으로 군대생활을 했다. 공병으로 지내는 동안 홉스봄은 노동자출신의 병사들 속에서 살았다. 홉스봄은 거기서 '때로는 거칠어질 때도 있었지만 노동자들의 올곧음과 허튼 소리에 대한 경멸감과 계급의식과 동지애와 협동정신을 평생토록 존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군대에서 제대하고 난 뒤에 홉스봄은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학문을 가지게 된다. 주로 영국의 캠브리지대학교에서 가르치면서 자신의 특기를 살린 역사학 저술을 내놓는다. <원초적 반란>,<혁명의 시대>,<자본의 시대>,<제국의 시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책들을 써 내면서 역사학자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또한 영국공산당에 소속된 역사학자들과 함께 '공산당 소속 역사학자 모임'을 구성해서 맑스주의에 기반한 역사학 연구를 계속한다. 영국에서 유명한 역사학 저널인 <과거와 현재>를 창간해서 정치사 중심의 역사학에서 탈피하여 사회사에 기반한 역사학 연구의 새로운 기풍을 만들어낸다. 이 무렵에 프랑스에서는 이미 <아날>이라는 유명한 역사학저널을 중심으로 사회사를 탐구하는 새로운 세대의 역사학자들이 많이 생겨났다. 아날학파의 거장으로 유명한 페르낭 브로델은 홉스봄보다 10년 이상 연상인 학자였는데, 엄청난 연구역량과 탁월한 조직역량으로 프랑스식 사회사학을 맑스주의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일구놓았다. 영국의 공산당 역사학자들 중에는 <영국노동자계급의 형성>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톰슨도 있었는데, 홉스봄은 톰슨을 '그야말로 난 사람이며, 천재라는 개념에 부합하는 내가 아는 유일한 역사가'로 묘사하고 있다. 여하튼 영국과 프랑스의 사회사 연구는 그전에 독일이 주도하던 정치사 중심의 역사학을 혁신하는 전환을 이루었다. 지금은 사회사가 이미 주류에 들어섰고, 오히려 그런 사회사 중심의 전체사에 대항하는 미시사학(작은 쟁점에 주목해서 세밀하게 연구하여 시대상을 복원하는 식의)이 요즘 유행이라고 한다. 홉스봄은 미시사학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지만, 전체적인 시각을 포기하는 방식은 역사학이 역사의 진보에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50년대에 제일 중요한 사건으로 홉스봄이 들고 있는 것은 흐루시초프가 소련공산당 대회에서 행한 '스탈린 격하'를 들고 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스탈린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당시에는 스탈린이라고 하면, 전세계 민중에게 푸근한 아저씨 같은 인상이었다고 한다. 홉스봄을 비롯한 공산주의자와 민중들은 당시에 '스탈린을 정말로 엄청나게 존경했다'고 한다. 그래서 홉스봄은 '레닌의 10월 혁명이 세계 공산주의 운동을 만들었다면, 1956년 2월의 소련공산당 20차 대회는 그것을 무너뜨렸다'고 말하고 있다. 스탈린 격하 운동의 결과로 홉스봄은 '공산주의 투사에서 지지자 내지는 동조자로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영국공산당은 완강하게 소련공산당의 노선을 추종했기 때문에 홉스봄은 '몸은 영국공산당 당원이었지만, 마음은 내가 생각하는 공산주의 이념에 들어맞는 이탈리아 공산당 당원이었다'고 말한다. 그람시의 지적 유산을 가지고 있던 이탈리아 공산당은 당대 유럽에서 소련공산당을 제외하고는 최대의 당원을 보유한 공산당이었다. 노동자계급의 정당이라기보다는 인민의 정당으로 자신을 규정할 만큼 유연한 공산주의 노선을 가지고 있었다. 책 속에는 이탈리아 이야기뿐만 아니라 스페인, 소련, 남아메리카, 쿠바 등의 다양한 진보운동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어서 읽을거리로도 좋다.

홉스봄은 나중에 미국에서도 가르치게 되었는데, 뉴욕에 있는 신사회연구원(New School of Social Research)이라는 대학교에서 교수로 오랫동안 있게 된다. 이 학교는 미국의 진보세력이 만든 일종의 대안대학교라고 볼 수 있는 곳이란다. 홉스봄은 뉴욕에서 가르치면서 미국이라는 세계제국에 대해서 몸으로 많이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이라는 제국이 자신의 힘의 한계를 모르고 무한정 힘을 휘두르며, 자기 편에 서지 않으면 무조건 적으로 몰아붙이는 데서' 어떤 고충을 느낀다고 한다. 역사가로서 느끼기에 '미국의 세기가 끝나는 것을 내 눈으로 보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독자 중에는 그것을 볼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도 과히 빗나간 예상이 아닐 것이다'라고 미국이라는 제국이 정점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고 관망한다. 물론 홉스봄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 유럽인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하지만 우리가 느끼기에도 미국은 이미 역사상 많은 제국이 그러했듯이 전성기를 지난 느낌이다. 아마 20-30년 안에 그런 광경을 볼 수 있지도 않을까.

홉스봄은 1917년 태생이니까 우리나이로 치면 90살을 넘긴 나이다.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 왕성하게 저술하고 강연도 한다. 청소년 시절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잃었던 소년이 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로 성공한 것을 생각하면 이 책은 일종의 성공담이기도 하다. 소련이 망할 때까지 공산당을 떠나지 않은 신념의 소유자라는 면에서 보면, 과연 20세기 중후반을 통틀어서 공산주의가 지식인들에게 가졌던 매력의 이유는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데서도 쓸모 있다. 나는 외국의 역사 중에서 좋아하는 사람을 꼽으라면(그렇게 아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홉스봄과 브로델을 꼽는다. 듣기로는 브로델도 자서전을 썼다고 하는데, 누가 번역해서 시장에 내 놓으면 당장 사보겠다. 프랑스 역사가의 삶은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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