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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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다. 일요일 아침부터 읽었더니 점심 때 쯤 되니 끝난다. 이야기의 흐름이 빨라서 책이 술술 잘 넘어간다. 그렇지만 300쪽을 넘기니 잘 안 넘어간다. 후반부터는 좀 이야기가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가 51장면 정도로 분할되어 있는 것이 마치 영화를 쓰기 위해서 준비한 시나리오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그 시나리오가 좀 상투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지. 너무 냉소적으로도 보이고. 사이사이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에피소드는 실감이 났다. 기영의 북쪽생활 이야기에 나오는 그의 어머니의 죽음이나 정희라는 또래 여자아이 이야기도 감흥이 있었다. 또 마리의 아버지인 주류판매상 이야기도 좋았다. 박철수라는 국정원 정보원의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런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한 데도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어떤 감흥, 혹은 문제의식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광고에 나왔던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라는 발레리의 시구는 사람을 끌어당겼다. 과연 이 소설 속에는 이 시대에 대한 어떤 생각이 담겨 있으리라는 기대를 안고 보았던 것인데. '빛의 제국'이라는 제목과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어떤 내밀한 의미가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는데, 결국 주인공인 김기영이 뭐하러 저렇게 헤매다녔나 하는 허탈감을 자아내게 했다. 후반부로 가서 기영의 아내 마리가 스무살 대학생 둘과 벌이는 난잡한 정사 이야기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읽는 내내 김혜수가 등장했던 <바람피기 좋은 날>이라는 영화를 떠올렸다. 뭐하러 저 따위 영화를 만드는가 싶게 한개의 소비품에 불과한 영화라고 보았는데, 기영의 아내 마리가 벌이는 정사도 이 소설의 문제의식과 꼭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이른바 386세대의 붕괴한 도덕의식이나 희망의 상실을 조롱하려고 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글쎄, 내가 소설을 그냥 이야기로 읽지 못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기영이라는 인물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면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소설의 설정부터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10년 동안이나 상부선이 떨어진 남파공작원이라. 어쩌면 지은이는 이런 과도한 상황설정으로 우리 시대의 한 단면을 다루려고 한 것은 아닐까. 40대의  남자와 여자의 삶, 그들의 아이가 중등학교에서 겪는 삶. 어떤 면으로보든 속시원하지가 않다. 차라리 남파간첩이라는 설정을 빼버리고, 학생운동을 했던 부부의 삶과 도덕의식의 붕괴, 가정의 해체 현상 같은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렇게 메스를 들이댔다면 차라리 이해하기가 쉬웠을 텐데. 난데 없이 80년대 중반에 학생운동권에 침투했다가 10년 전에 상부선을 잃어버린 고정간첩이라니. <광장>에서 이명준이 월북하는 그런 동기나 이회성의 <금단의 땅>에서 다루어지던 남파공작원이나 자생적 사회주의자의 그런 고뇌가 없다. 한마디로 설정은 기막힌데 이야기는 상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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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 평전 - 정신의 비상
찰스 니콜 지음, 안기순 옮김 / 고즈윈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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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빈센트 반 고흐 전기의 제목은 <내 친구 빈센트>이다. 고흐가 늘 자기를 지칭하기를 빈센트라는 이름을 즐겨썼다는 것이 그 이유다. 고흐의 민중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제목 붙이기다. 나는 다빈치 평전의 독후감 제목을 내 친구 레오나르도라고 써 보았다. 위대한 르네상스인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그야말로 친구로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비범한 천재인 다빈치를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뇌하는 평범한 생활인으로서 레오나르도를 느낄 수 있다. 빈센트가 동생 테오에게 부친 편지를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밝혀놓은 것처럼, 레오나르도는 스스로 남긴 수십권의 노트를 통해서 자신의 정신세계를 우리가 엿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 책은 전기를 서술하는 데 레오나르도의 노트를 많이 참조했음을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도 레오나르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는 사생아란 점. 여기에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어떤 정신적 배경이 있다. 예를 들자면 그의 성모자 그림에는 절대 예수의 아버지 요셉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둘째로 그는 르네상스 절정기의 이탈리아인이라는 사실. 셋째로 그는 신체적으로 대단히 준수한 용모를 지녔고,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는 점. 이 점에서 그는 미켈란젤로와 대비된다. 넷째로 그는 왼손잡이라는 사실. 다섯째로 그는 그림만 그린 사람이 아니라 음악과 수학, 해부학, 공학 등 다방면에 걸쳐서 엄청난 호기심과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점. 이런 면에서 레오나르도가 천재라는 것이다. 여섯째로 그는 사색적인 사람이었다는 점. 다혈질이라기보다는 고요히 생각하고 집중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여기서도 그는 미켈란젤로와 대비된다.

레오나르도의 아버지는 피렌체의 정치적 식민지라고 할 만한 도시인 빈치에서 활동한 사람이다. 직업은 공증인인데, 주로 귀족들의 문서를 취급하던 영향력있는 직업이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는법률적으로는 적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혼을 한 사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대의 상류층들의 결혼은 대부분 집안 간에 재산과 권력을 결합해서 서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거래의 성격이 강했다. 레오나르도는 어린시절에 사생아이지만 집안에서는 유일한 아들로서 (아버지의 본부인이 자식을 못 낳았기 때문) 할아버지나 삼촌 같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컸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렇게 하다가 레오나르도는 청소년 시기에 피렌체의 유명한 미술가인 베로키오의 작업장에 도제로 들어가게 된다. 10년 가까운 도제시절을 보낸 뒤에 레오나르도는 독립해서 자신의 작품을 제작하게 된다. 그러나 동성연애 사건인 살타렐리 연애사건을 겪고 난뒤 얼마 후에 피렌체를 떠나버린다. 이 때문에 레오나르도가 동성연애를 했다는 평가가 있는데,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런데 당대에는 젊은 미소년과의 동성애가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거부감을 주지 않고 받아들여지는 사회적인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물론 법률적으로는 금지행위였다고 한다. 거기에 레오나르도가 걸려든 셈이다.

이어서 정착한 곳은 밀라노이다. 그곳은 절대권력자인 루도비코 스포르자의 궁정에 음악가로 고용된다. 이것이 좀 어울리지 않았는데, 알고보니 레오나르도는 수금(바이올린 비슷한 악기)를 잘 연주하는 연주가였다고 한다. 거기다 레오나르도는 스포르자에게 자신을 전쟁무기 제조의 전문가로 소개하는 유명한 소개장을 보냈다. 거기에 보면 레오나르도는 단순히 화가라기보다는 공학자에 더 어울릴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포르자의 궁정에서 있는 동안 레오나르도는 스포르자의 정부들의 초상화를 몇 점 그린다. 유명한 것이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이라고 하는 체칠리아 갈레아니의 초상화이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인데, 보고 있으면 놀랍다. 인물 속에 그 정신이 바로 느껴진다. 레오나르도는 스포르자의 궁정에서 20년 가까이를 보낸다. 거기서 레오나르도는 <최후의 만찬>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기기도 한다. 최후의 만찬은 당대의 그림과는 다른 점을 보여주는데, 그것을 글쓴이는 '역동적인 물결구도'라고 한다.  과연 해설을 보고 난 뒤 그림을 보니 최후의 만찬은 세 사람씩 모인 네 덩어리의 인물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인물들을 감싸고 있는 놀람의 표정들을 다빈치는 절묘하게 잡아내었다. 밀라노에서 레오나르도는 스포르자의 거대한 기마상을 만드는 엄청난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결국에는 완성을 보지 못하고 점토상 상태에서 파괴되는 수모를 겪는다. 여기에는 당대의 국제정치의 상황이 작용한다. 프랑스 국왕이 이탈리아 정치에 개입하고, 여기에 로마교황과 피렌체의 메디치 집안, 밀라노의 스포르자 집안 사이의 치열한 암투 같은 것들에 의해서 서로 침략과 동맹을 계속하기도 한다.

이 와중에 등장하는 인물이 유명한 마키아벨리와 체사르 보르자다. 체사르 보르자는 당대 로마 교황의 사생아였는데, 상당히 냉혹한 권력자였다고 한다. 마키아벨리는 체사르 보르자를 모델로 하여 <군주론>이라는 정치학 책의 고전을 쓰게 된다. 레오나르도는 밀라노에 침입한 프랑스 국왕에 협조하게 되는데, 이것은 말하자면 부역죄 같은 것이다. 나중에 스포르자 집안이 다시 밀라노를 접수하자 레오나르도는 밀라노를 탈출하여 피렌체로 돌아가기도 한다. 나중에 레오나르도는 체사르 보르자의 군사부문 책임자로 일하면서 당대의 전쟁터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느끼게 되는 것이다. 체사르 보르자와 인연은 잠시였다. 체사르 보르자의 아버지인 교황이 죽은 뒤 체사르 보르자는 몰락하게 되고, 레오나르도는 미리 그 낌새를 알아채고 체사르의 군사고문직을 그만둔다. 레오나르도는 결코 권력자에게 충성하지는 않았다. 자기 생존과 작품을 위해서 적절하게 권력자의 힘을 이용할 뿐이었다. 당대 예술가들의 입지를 감안할 때 현명한 태도였다고 생각한다.

레오나르도는 이후에 밀라노와 피렌체를 활동무대로 하면서 <모나리자>같은 불후의 명작을 남기기도 했다. 피렌체에서는 마키아벨리와 함께 시정을 위해서 일을 하기도 했다. 또 미켈란젤로와는 시청벽의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서로 맞은 편에 나누어서 그리기도 했다. 둘 다 전쟁장면을 그리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두 위대한 화가가 서로 경쟁하면서 그리는 풍경은 당대에도 화젯거리였다고 한다. 그 때 미켈란젤로는 레오나르도보다 훨씬 젊은 후배였는데도, 불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속사포처럼 내뱉아버리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60세가 넘은 말년에 레오나르도는 프랑스로 넘어가서 프랑스 국왕에게 의탁한다. 이미 노년의 레오나르도는 위대한 화가일 뿐 아니라 현인으로도 이름이 나서 젊은 프랑스 국왕은 레오나르도를 환대했고, 이 위대한 예술가는 거기서 노년을 보내다가 편안하게 이승을 떠나게 된다. 이 때 나이가 68세였다. 가족은 없었고, 유산은 모두 가족이나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뜻밖에 레오나르도는 완성된 작품을 얼마 남기지 않았다.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 수태고지의 그림이나 몇 가지 초상화와 최후의 만찬 같은 작품을 빼면 대부분이 미완성작이거나 소실된 경우가 많다. 미켈란젤로와 비교하면 작품의 양에서 레오나르도는 현격하게 적다. 그런데도 레오나르도가 유명해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모나리자> 도난 사건 때문이라고 한다.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있던 모나리자를 이탈리아의 어떤 사람이 훔쳐서 가지고 갔다가 몇 년 뒤에 발각된 사건으로 <모나리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림이 되었다고 한다. 도난사건을 통해서 <모나리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되고 만 것이다. 더불어 작가인 레오나르도도 더 유명해졌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모나리자>를 훔친 사람이 애초에는 모나리자를 훔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문제의 그림이 훔쳐서 품에 넣어가기에는 너무 크다 보니, 바로 곁에 있던 작은 작품인 모나리자를 훔쳤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미술품 도난 사건으로는 희대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가 천재라는 증거로 자주 인용되는 것이 그의 노트다. 레오나르도는 그가 평소에 생각한 수많은 것들을 노트에 기록으로 남겼다. 거기에는 수학, 철학, 의학, 미술, 천문학, 군사공학, 문학 등과 같은 레오나르도의 다양한 관심사가 세심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다빈치는 메모광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박지원이 말 위에서 붓으로 메모를 했다는 고사가 생각나는 구절이다. 다빈치노트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공학적인 설계그림과 인체해부 그림들이다. 다빈치는 새에 관심이 대단히 많았다고 한다. 사람이 날기 위해서 필요한 온갖 장치를 고안해보았고, 새의 비행방법을 세밀히 관찰하고 연구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헬리콥터와 낙하산의 원리를 발견했다. 또한 장갑차, 잠수함 같은 군사기술에 대해서도 이미 그것들이 실용화되기 전에 고민해보았다고 한다. 어쩌면 이런 고민이 가능했던 것도 그 시대가 르네상스시대라는 국제경쟁의 시대여서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마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다양한 사상들과 기술들이 나온 것처럼 말이다. 다빈치는 또 수십번의 인체해부를 통해서 인체의 비밀에 대해서 탐구한 사람이다. 기본적으로는 미술에 적용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노트에 남아있는 인체해부 그림을 보면 레오나르도는 철저한 관찰자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이나 풍설로 말하는 것을 믿지 않고, 직접 확인해보고 실험해 보는 정신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 물론 당대에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 한권의 가격은 요즘으로 치면 거의 자동차 가격 비슷한(너무 심한 표현인가. 컴퓨터 한대?) 정도로 아주 비싼 제품이었다. 때문에 집에 책을 소장한다는 것은 우리가 가구나 전자제품을 들여놓을 때 생각하는 그 정도의 고민이 필요한 것이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452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고 1519년 프랑스에서 죽었다. 우리로 치면 조선 초기다. 조선 6대 임금인 단종이 즉위한 때가 1452년이다. 1519년은 중종 14년인데, 역사책을 보니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사림들이 전격적으로 체포되어 사화가 일어난 해이다. 조광조는 죽을 때 38살이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가 죽을 때 68살이었으니 30살 차이가 난다. 이렇게 비교해서 보니 재미있다. 우리나라에서 레오나르도에 버금가는 예술가를 찾으라면 단원 김홍도나 공재 윤두서, 연암 박지원 같은 사람일까? 말을 좋아하고 그림도 많이 그렸다는 점에서는 공재 윤두서와 닮았고, 미술과 음악 모두에 능통했다는 점에서는 단원 김홍도를 닮았다. 메모광이라는 점에서는 연암 박지원을 좀 닮은 것 같다. 이탈리아라는 나라의 역사와 기질 모두가 한반도와 닮아 있다는 점에서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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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천재들
김병기.신정일.이덕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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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이 책을 이가환 때문에 읽게 되었다. 언젠가 읽었던 이덕일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에 나온 이가환에 대한 언급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한번 읽은 내용은 모두 외워 버린다는 희대의 천재 이가환의 이야기는 누가 들어도 신기할 법하다. 과연 내용을 읽어보니 이가환은 타고난 천재였다. 당대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책을 읽었고, 동시에 거의 모든 책의 내용을 외우고 있었다니 가히 인간 컴퓨터였다. 역시 천재로 소문났던 정약용이 '귀신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의 천재가 이가환이었다. 그러나 이가환의 그러한 박식함으로도 그 시대의 한계를 돌파하기에는 노론이 장악하고 있는 현실정치의 벽이 너무 높았다. 기호남인들의 후원자이기도 했던 정조의 죽음이후에 정약용을 비롯하여 이가환, 권철신, 정약전, 이승훈들은 죽거나 귀양가는 불행을 당한다. 이가환은 노론에 정면으로 대항한 이잠의 후손이라는 이유, 천주교도라는 이유로 정조 사후 노론의 일당독재 시기에 죽임을 당한다. 향년 61세였다.

이가환 말고도 새로 알게 된 인물들이 있고,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들도 있다. 이벽에 대한 글과 정철에 대한 글이 인상적이었다. 역사책에서는 천주교를 전교한 인물 정도로 여겨지는 이벽이나 이승훈 같은 인물들이 당대 지식인들의 세계에서는 대단한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었다는 점을 알게 된다. 특히 이벽은 비범한 인물로 나온다. 이벽의 조상은 소현세자가 중국에 볼모로 잡혀가 있을 때 청나라에서 세자를 섬기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 때 소현세자가 조선으로 돌아올 때 가지고 온 천주교 관계 서적들이 이벽의 집안에 전승되고 있었던 것을 이벽이 스스로 읽고 '자생적인 천주교인'이 된 것이다. 역사상 신부의 전교없이 자생적으로 천주교인이 된 사례는 이벽의 경우가 유일하다고 한다. 이벽은 그렇게 스스로 천주교인이 되어서 이승훈을 중국에 보내서 천주교회당에서 영세를 받도록 한다. 그렇게 해서 이벽은 조선 최초의 천주교 조직을 꾸리고 이끌어간다.  이벽은 정약용 형제의 큰 형인 정약현의 처남이다. 정약용과는 사돈관계가 된다. 유명한 천진암 강학회를 했을 때 참가했던 선비들의 나이는 권철신 44살, 이벽 26살, 이승훈 24살, 정약전 22살, 정약종 20살, 정약용 18살, 이총억 16살이었다고 한다. 성호 이익의 학문을 추종하던 기호 남인의 자제들이 이벽이라는 인물 때문에 대부분 천주교라는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나중에 이것이 씨앗이 되어 이 모임에 참가했던 선비들 대부분이 죽거나 귀양가는 처참한 처지에 빠지게 된다. 정약용은 <녹암 권철신 묘지명>에서 "나는 이벽을 추종하였고, 나의 형 정약전은 아주 일찍부터 이벽을 추종하였다. 뿐만 아니라 권일신은 열성적으로 이벽을 추종하였으며, 이가환 역시 이벽을 추종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약용이 이벽을 따르고 존경했던 이야기들이 여러 곳에 나온다. 결국 이벽은 을사박해 후 32살의 나이로 죽게 된다. 문중의 강권에도 불구하고 천주교신앙을 지키려던 이벽은 결국 단식 14일 만에 탈진한 채 숨을 거둔다. 1785년 봄의 일이다. 경주 이씨 문중과 이벽의 아버지 이부만, 젊은 아들 이벽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줄다리기는 옛날일이 아니고 요즈음의 일처럼 느껴진다.

이 책에는 모두 열 세 사람의 천재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삼국시대 인물로는 최치원이 있고, 고려시대에는 이규보와 지눌,서희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김시습, 이이, 정철, 장영실, 유득공, 이가환이 있고, 구한말의 사람으로는 매천 황현과 이상설이 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분량이지만 각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이해하기에는 적절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좀 더 깊이있게 알고 싶은 사람은 해당 위인의 전기를 읽어보면 될 일이다. 나는 몇 해 전에 나온 <김시습 평전>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니 열 세 사람 중에 전기가 책으로 나온 것이 김시습이나 율곡 이이 정도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용으로 각색한 전기는 많아도 정작 제대로 된 전기는 드문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나마 <김시습 평전> 같은 것이 나온 것도 어찌 보면 이 분야의 좋은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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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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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이 책도 빚쟁이 같은 책이다. 벌써 두 번이나 읽으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책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30쪽 정도 읽다가 말았다. 다른 기막힌 책이 눈에 들어와서 그만 이 책을 버리고 말았다. 기억도 선명하다. 그러다가 한 해 쯤 지난 뒤에 다시 읽으려고 했다. 이 때는 반 정도까지 읽었다. 재미있었다. 감동도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또 책을 중도에 버리고 말았다. 왜 버렸는지는 나도 모른다. 아마 다른 멋진 책이 다가와서 유혹했겠지. 그렇게 마음의 빚으로 남아있던 이 책을 이번에 겨우 읽었다.  책꽂이에 꽂혀있는 이 책을 보면 마음이 편안하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한번씩 뽑아서 쓰윽 한번 넘겨본다. 아무 구절이나 읽어보고 내가 이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있음에 만족한다.

원제목은 '작은 나무의 교육 The education of little tree'이다. 작은 나무는 여섯살짜리 꼬마 체로키 인디언이다. 작은 나무는 아버지 어머니가 죽고 난 뒤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따라서 산 속으로 들어간다. 산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할아버지는 190미터 정도 되는 거구를 지닌 인디언이다. 할아버지는 아일랜드인의 피가 섞인 혼혈 체로키다. 할머니는 순수한 체로키족 출신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자인 작은 나무를 정말로 사랑한다. 지구상 모든 종족들의 조부모가 손자를 사랑하는 그런 방식으로 사랑한다. 그러면서도 아이를 키우는 체로키적인 방식이 있다. 문명의 기준으로 보면 턱없이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은나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품 안에서 아무런 부족도 느끼지 못한다. 행복을 느끼고 산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미국의 1929년 대공황을 전후한 때인 것 같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양은 좀 황폐해 보인다. 정부에서는 위스키 제조를 법으로 금하고 있다. 그렇지만 산간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옥수수 농사를 짓기 때문에 옥수수를 팔아서는 겨우 입에 풀칠할 만한 정도 밖의 수입을 얻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농부들은 옥수수를 가공해서 몰래 위스키를 제조해서 판다. 이 때는 금주법의 시대였기 때문에 술을 만드는 것는 좀 돈이 되는 때다. 도시에서는 아마 술을 만들고 유통시키는 일을 마피아들이 관장해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것 같다. 작은 나무의 할아버지는 몰래 위스키를 제조해서 아래 마을의 잡화점에 판다. 그 돈으로 필요한 생필품을 사게 된다. 작은 나무는 어린 나이지만 할아버지의 위스키 제조를 나름대로 돕는다. 할아버지는 작은 나무가 하는 일의 몫을 인정해주고 긍정한다. 정부에서는 이 불법위스키 제조를 뿌리뽑기 위해서 수시로 단속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배꼽을 잡는 일들이 일어난다.

할아버지는 글자를 모른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세상사를 해석하는 방식이 독창적이다. 어찌보면 핵심을 찌르는 말이기도 하다. 할아버지는 뉴욕이란 곳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살 땅이 모자라기 때문에 뉴욕 사람들 중 반 정도는 미쳐 있고, 그래서 총으로 자살하거나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일이 생긴다고 말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글자를 알고,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다. 그렇게 빌린 책으로 작은 나무에게 문자교육을 시킨다. 할머니가 읽어주는 책을 들으면서 할아버지가 보이는 반응이 웃기고 재미있다. 돌난로 앞에 앉아서 책을 읽어주는 할머니, 흔들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할아버지는 상상만 해도 정겹고 재미있다. 인디언은 몽골족이라니 아마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로 상상해도 좋을 듯하다. 물론 이렇게 정겨운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나라에서도 찾기는 참 드물겠지만 말이다.  

작은나무가 정부공무원에 의해서 고아원으로 잡혀가는 장면은 소설로 치면 갈등과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평이한 에피소드의 연결 정도에 그치고 있던 이야기는 이 부분에서 갈등으로 치닫는다. 갈등의 해결도 감동적이다. 역시 인디언적인 방식이다. 우직한 지혜가 여기서 발휘된다. 체로키들이 지닌 인간적인 품격에 비하면 백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인격을 지닌 사람들이다. 고아원의 목사는 인디언의 핏줄인 작은 나무를 교육한답시고 막대기로 몸에서 피가 나도록 때린다. 인디언은 악의 씨앗이라는 것이 목사의 신념이다.  그에겐 이승은 선과 악으로 구분되고 저승은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진 곳이다. 할아버지가 이야기하는 이른바 '정치인'을 비롯해서 목사, 공무원,소작인들은 모두가 인격에 어떤 장애를 지닌 사람들처럼 보인다. 이에 비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인디언 동료들, 집에서 키우는 개들은 모두가 고결한 인격을 지닌 신비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전혀 다른 종류의 인류를 느낄 수 있다. 언젠가 <녹색평론>의 김종철 교수는 어떤 글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이야말로 가장 고결한 품성을 지닌 사람들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려서 사랑을 나누면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 책 속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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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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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에서 '손님'이란 책 이름을 쳤더니 무려 122개나 되는 책이름이 나타난다. 도깨비 손님, 우리 집에 온 손님, 겨울 손님 등등. 이렇게 책이름에 손님이란 이름이 많이 붙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에게 '손님'이라는 말은 반가운 의미로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어렸을 적에도 우리 집이나 동네에 손님이 온다고 하면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반갑게 맞이하기 위해서 청소하고 정리하면서 부산을 떨었지 싶다. 손님은 잠시 머물다 가기 때문에 짧은 동안의 시간에 좋은 기억을 주기 위해서 긴장하고 그랬던 것이지.

황석영의 소설 제목인 손님이 상징하는 바는 '주인이 되어버린 손님'이다. 돌림병처럼 사람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무서운 손님이다. 여기서는 기독교와 공산주의가 손님이다. 겨우 100여년전에 한반도로 들어왔지만 이제는 남녘과 북녘에서 주인이 되어버린 손님이다. 기독교나 공산주의 모두 민족과 민중의 수난기에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들어왔지만, 결국에는 사람을 억누르고 파멸시키는 사상이 되어버린 역설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은이는 황해도 신천 학살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 가는 과정에서 그것이 우리 민족 내부의 싸움에서 생긴 사건임을 알아내었다고 한다. 노근리 사건처럼 미제국주의에 의한 학살이 아니라 기독교와 공산주의 간의 살륙임을 알아낸 것이다.

황석영은 황해도 신천학살의 이야기를 지노귀굿, 혹은 오구굿이라는 굿의 12마당 형식을 빌어서 들려주고 있다. 기독교도인 요한과 요섭 형제는 한국전쟁 뒤 남쪽으로 내려온 뒤 미국으로 이민을 간 세대다. 요섭은 목사다. 미국에서 북한으로 가는 고국방문을 통해서 그들의 고향을 찾아간다. 그 고향방문에 요한은 혼령으로 함께 따라간다. 황석영은 헛것이라는 표현을 쓴다. 신천학살 때 숨진 그 마을 사람들의 혼령은 지상을 떠돌다가 요섭을 따라서 북으로 간다. 그곳에서 해방전후와 전쟁전후로 벌어졌던 마을의 일들의 실상이 밝혀진다. 이것은 소설적인 장치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인 사실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것을 밝히는 이야기는 작가가 모두 이야기하는 방식도, 주인공이 진술하는 방식도 아닌,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다. 소설이 아니라 연극 같은 느낌도 준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아서 불편했는데 자꾸 읽다다 보니까 편안해졌다. 나는 한번 읽고 나서 다시 한번 앞에서부터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기면서 이해안 되던 부분을 읽어보았다. 그랬더니 이야기의 전모가 이해되었다. 결국 책을 두번 읽은 셈이다. 나는 같은 책은 두번 잘 안 읽는데 하다가보니 그렇게 되었다.

해방과 전쟁 전후의 이야기를 보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그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불구덩이를 지나왔을까 하는 안쓰러움이다. 내가 만약에 그 시대에 젊은이로 삶았다고 하더라도 어떤 선택을 강요당할 수 밖에 없지 않았겠나. 기독교든 공산주의든, 극단적 반공주의든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중간파란 존재하기 힘든 시대였으니까. 회색은 검은색도 흰색도 아닌 색깔로 취급되어서 어디에서든 환영받지 못했으니까.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다보면 사람은 어느 순간 마약에 중독된 사람처럼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다. 그것의 노예가 된다. 손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비극이 벌어진다. 이 소설에서 다루는 장소와 시대에서는 그것이 극단으로 치달아서 수만명의 인민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을 벌였다. 공산주의가 옳지도 않고 반공하는 기독교도 옳지 않다. 재판도 없고 판결도 없는 학살이 서로간에 벌어진다. 내 논밭을 뺏어간 공산당의 세력이기 때문에 죽이고, 내 편을 학살한 반대편이기 때문에 죽인다. 나중에는 서로 같은 편끼리도 죽이는 일이 벌어진다. 어린애고 여자고 어른이고 가리지 않는다.  평소에 마음에 두고 있던 여자도 반대편이면 총을 무기로 능욕하고 지겨우면 죽여버린다. 과연 이런 세상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인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이런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유고내전에서, 아프리카의 내전들에서 이런 일들이 예사로 일어난다. 그야말로 문명속의 야만이다. 총든 자들이 저지를 수 있는 야만은 얼마나 무서운지. 막강한 힘이 주는 유혹. 돈가진 자들도 마찬가지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힘없는 이들에게 저지르는 횡포도 본질은 같다. 어른이 어리고 약한 아이들에게 휘두르는 권력도 마찬가지.  여하튼 성찰되지 않은 힘은 남을 해치고 결국에는 자기의 인간성을 파괴하는 법이다. 세설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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