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이, 세계오지를 가다 - 만화 오지 탐험, 이색 문화 체험 반쪽이 시리즈 2
최정현 글 그림 / 한겨레출판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나는 우물안 개구리다. 이 나이가 되도록 남들은 다 가는 해외여행이라고는 가 본 적이 없다. 바다 건너 가 본 곳이라고는 제주도가 유일하다. 아직 울릉도도 못 가 보았다. 특별히 바쁘게 산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주위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해에 한번 정도 나라 밖으로 나가는 것은 기본이다. 중국은 기본이고 일본, 동남아, 미국, 유럽까지 어지간하면 다들 다녀왔더라. 하도 주위에서 해외여행을 다니니까 이제 나도 슬슬 나라밖 구경을 한번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올 겨울방학때는 중국을 한번 다녀올까 싶어서 인터넷을 뒤적거리고 있다.  반쪽이의 오지여행은 여러모로 참고가 되는 책이다. 여행을 안 가더라도 그림보는 재미만 해도 좋다. 배울 것도 많다.

반쪽이가  다닌 곳은 주로 오지국가들이다. 뉴질랜드가 예외라고 볼 정도겠다. 산업화가 진행된 선진국은 거의 없다. 만화의 내용을 보니 여행 목적이 '한국청년해외봉사단'들이 있는 곳을 취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해외봉사라는 것이 살기어려운 나라들에 집중될 수 밖에 없을 것은 당연지사. 여행경로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김포공항-도미니카공화국-페루-파라과이-탄자니아-에티오피아-이집트-우즈베키스탄-피지-뉴질랜드-중국-베트남-파푸아뉴기니-김포공항. 한달쯤 여행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초판 1쇄가 나온 것이 1999년인데, 머리말에 보니 여행간지 1년이 되었다고 했으니 1998년쯤 되는 모양이다. 페루에서 후지모리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는 장면이 있었으니 아마 그 때쯤되겠다.

편에 따라서는 자세하게 그려진 곳이 있고, 간단하게 다룬 곳도 있다. 파푸아뉴기니 같은 나라는 길게 소개되고 있는 데 견주어보면 베트남은 지나치게 간략하다.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의 후진국들을 다녀왔다고 보면 되겠다. 반쪽이 만화이 그렇듯이 슬며시 미소짓게 하는 장면이 많은데 특히 재미있는 부분들은 이과수 폭포 이야기가 나오는 파라과이 편, 마사이족이 나오는 탄자니아 편, 각종 복지정책으로 심심한 천국을 구가하고 있는 뉴질랜드, 700여 언어와 800여 부족이 어울려 사는 파푸아 뉴기니의 원시적인 사람살이가 재미있게 읽혔다.

역시 후진국일수록 여자들이 고생을 많이 한다.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의 대부분 후진국들은 남자들은 놀고 여자들은 뼈빠지게 일하는 풍경을 보여준다. 에티오피아나 이집트 같은 나라에서는  여자들의 할례가 당연시되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여자들이 성형수술을 해서 살을 빼고 몸을 예쁘게 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듯이 그 나라들에서는 여자들의 성기를 할례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취급되고 있다고 한다. 문화란 참 무서운 것이다. 

 역시 제일 가보고 싶은 나라는 뉴질랜드. 완벽한 복지와 자연보호에다 환경오염이라고는 거의 없다고 하니 우리네 정서에서 보면 천국같은 곳이다. 거기 이민 간 우리나라 사람도 많이 증가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너무 바쁜 지옥이라면 거기는 심심한 천국이란다. 속도와 경쟁, 재미에 익숙한 우리 문화에서 보면 그 곳은 절간 같은 곳이겠지. 그래도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여자, 아이, 강아지, 남자 순으로 복지가 진행된다니 대한민국 남자들은 가서 살기가 어려운 곳이겠지. 워낙 남자대접받는 데 익숙하다보니 말이다. 그 밖에 꼭 가고 싶은 나라를 꼽으라면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산도 보고 용맹한 마사이족도 만나보고 싶다. 정말로 마사이워킹으로 걷는지, 사자를 투창 한번으로 잡을 정도로 팔힘이 센지도 한번 확인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외지사 1 - 우리 시대 삶의 고수들
조용헌 지음, 김홍희 사진 / 정신세계원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조용헌은 요즘 내 탐구대상 중 한 사람이다. 몇년 전에 유홍준이나 강준만 같은 이들이 혜성처럼 등장해서 독서계를 들쑤셔 놓았듯이 조용헌도 요즘 거기에 버금가는 기세로 책을 써내고 있다. 기억나는 이름만 해도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고수기행>,<사주명리학 이야기>같은 것들이 있다.  우리 옛 전통과 특이한 인물들에 대한 탐구가 주를 이루는데 그 솜씨와 내공이 만만치 않다.

     이 책 <방외지사>1,2권은 두 권을 모두 합쳐서 440여쪽 정도의 두께를 가지고 있다. 왜 나누었는지는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이 책에서는 모두 '방외'를 거니는 이들 13명을 다루고 있다. 1권에서는 '밥걱정을 뛰어넘은 귀거래사'와 '사바세계에서 도를 찾는다'를 주제로 하여 7명의 삶을 다루고 있다. 2권에서는 '정신의 길을 가는 탐험가'와 '우리 곁의 이단자'를 주제로 6명의 삶이 펼쳐져 있다.

      공무원 생활 20년을 접고 은퇴하여 고향집에 돌아온사람 박태후, 기자생활을 그만두고 강산을 떠도는 시인 이원규, 걱정없이 오로지 백수생활만 해온 처사 강기욱, 산중무술인 기천문의 2대 문주인 박사규, 차잎 냄새만 맡아도 원산지를 알아내는 차맛 품평가 손성구, 역술 하나만으로 가족을 꾸려오고 성공한 부산의 젊은 역술가 박종화, 내과의사이면서도 도를 구해 끊임없이 자신을 수련하는 의사 이동호, 제주도 한라산에서 '이뭣꼬' 화두만 붙들고 30년 세월을 홀로 살아온 대각심, 뗏목을 타고 동해와 서해를 누비는 탐험가이며 교수인 윤명철, 여자의 몸으로 중국의 도가 화산파 23대 장문인으로 등장한 여자 신선 곽종인, 전국의 산하를 오로지 발로만 걸어다닌 신정일, 지리산에서 태어난 뒤 실상사 앞에서 발우만 만드는 지리산의 지킴이 김을생, 나무를 다루는 소목장으로 폐교에서 민족전통의 솜씨를 이어가는 이정곤. 이렇게 열세명이다.

    하나같이 특이한 사람들이다. 지은이 조용헌은 이들을 방외에서 노니는 이들이라 해서 '방외지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처럼 도시와 일터에 몸붙여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삶을 자유롭게 꾸리는 이들이라 이거지. 이 책은 그 자유에 대한 헌사이면서 방내에 사는 이들에 대하 죽비같기도 하다. 네 삶을 여기 한번 비추어 보아라 이거다.

    방외지사들 모두가  결단의 순간이 있을 때 과감히 자르는 힘이 있다. 공무원 생활 20년 뒤 은퇴를 단행하는 이나, 깨달음을 위해 남편과 자식도 버린 이나, 항해를 위해 뗏목을 만들고 거친 바다 위에서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다는 사람이나 모두들 무엇인가에 미친 사람들이다. 물론 빛이 있다면 어둠이 있다. 그게 세상이치. 이들의 삶 뒤에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희생과 뒷받침, 가슴저림이 있을 것이다. 허영호같은 등산가나 김근태같은 민주화운동가의 삶도 이들과 같은 방외의 자유를 추구한 삶이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가까운 이들의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자기의 길을 간다면 희열이 있을지? 그 희열의 정체는 무엇일지 궁금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것은 인도소년 피신 몰리토 파텔의 삶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피신은 인도에서 태어나 풍요로운 소년시절을 보냈다. 온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 가는 중에 배가 침몰한다. 혼자 구명보트에 살아남은 소년은 227일동안이나 태평양을 헤매다가 멕시코 해안에 상륙한다. 그 구명보트에는 호랑이, 하이에나, 얼룩말, 오랑우탄이 같이 타고 있었다. 광고나 뒷표지에는 이 책이 신에 대한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이것이 동물이 인간됨, 인간이 동물됨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꼈다.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은 마치 신처럼 군림하지만 16살의 소년은 자신 속에 내재된 야성을 깨워서 살아남는다. 그가 살아남은 것은 신이 아니라 호랑이 리처드 파커 때문이었다. 리처드 파커라는 호랑이 때문에 파이는 야생의 호모 사피엔스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호랑이는 신의 현신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신화에서 보면 신은 어떤 생물로든 자신의 모습을 바꿀 수 있으니까 말이다.

1부의 인도 폰디체리 지방에서 겪는 가족과 동물원, 학교, 종교 이야기는 차라리 2,3부 보다는 소설 냄새가 많이 난다. 난 차라리 1부가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2부의 태평양 장면은 충격적이어서 빨아들이는 힘이 있었지만 지루하기도 했다. 대화가 없고 오로지 관찰과 생각만 나오는 글은 계속 붙들고 있기가 힘들었다. 사람이 나오지 않고, 대화가 없는 소설은 적막했다. 어찌보면 1부에서 다루는 동물원과 종교 이야기는 태평양에서 겪는 사건들을 쉽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갖춘 소도구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야생동물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주기 위해 피신의 아버지가 벌였던 일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호랑이가 이렇게 위험한데 피신은 구명보트에서 무려 7개월 이상을 호랑이와 같이 보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나는 문득 <쥬라기 공원>에서 철창에 갇혀있던 티라노사우루스에게 잡아먹히던 염소가 생각났다. 여기서도 희생제물은 염소더군. 피신은 왜 기독교와 힌두교, 이슬람교를 모두 다 받아들인 것일까? 누가 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기쁨을 가지고 받아들였다. 심지어는 공산주의자 교사의 사고방식도 무리없이 받아들인다. 무신론과 유신론을 골고루 받아들이는 피신의 이 대단한 수용성이 나중에 그를 살아남도록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다의 표류 장면에서 우리는 참 다양한 것들을 배우게 된다. 우선 구명보트에서 살아남는 법을 우리는 배울 수 있다. 어찌보면 시시콜콜하다고 할 정도로 자세히 나와 있다. 바다에서 먹이구하는 법도 배우게 된다. 무엇보다도 특이한 것은 작은 구명보트에서 호랑이와 공존하면서 그를 길들이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어떻게 호랑이를 겁주는지, 그와 경계선을 나누는지, 음식을 나눠먹는지, 배설물을 치우는지 들이 자세하게 묘사되어있다. 그래서 이 소설이 무슨 <구명보트에서 호랑이를 길들이고 살아남기>같은 실용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야기의 마지막 반전은 소름끼친다. 이미 맹인들의 만남, 식충섬 이야기에서부터 혼란스러워지던 표류 이야기는 파이 자신의 입을 통해서 전혀 다른 종류의 고백을 뱉어낸다. 호랑이보다 더 무시무시한 사람의 존재. 과연 사람은 사람에게 맹수보다도 더 무서울 수 있는 존재구나 싶어진다. 파이라는 소년의 고난이 가엾고, 또 인간이 마음의 상처를 이겨내는 능력의 불가사의함에 대해서도 감탄하게 된다.  바다에서처럼 우리 삶은 권태와 공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추다. 그래서 살기 위해서는 바쁘게 지내기. 그래야 이겨낼 수 있다. 인생은 우주와 섞여 있고, 아트만은 브라만에 닿는다. 삶은 광활함으로 나아가는 입구이며, 우주를 엿보는 구멍인데 여기 이곳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없다. 이 작은 구멍이 우리가 가진 전부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영조 마라톤 스쿨
황영조 지음 / 한언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달리기는 매력적인 운동이다. 마라톤은 달리기의 꽃이다. 그렇지만 달리기는 부상의 위험이 큰 운동이기도 하다. 달리기에 재미를 느끼다보면 어느 순간에 자기 몸을 잊게 되는 순간이 있다. 우리 몸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우리 관절과 근육, 힘줄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부상의 위험에 노출된다. 어떤 사람은 되돌리지 못할 부상을 입기도 한다. 모든 운동이 위험을 가지고 있다지만, 마라톤은 그 정도가 큰 운동이다. 그래도 우리는 마라톤에 도전하고 싶다.  42.195  km를 달린다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우리를 끌어당긴다.

황영조는 이 책에서 시종일관 fun marathon과 maranic(marthon picnic)을 강조한다. 부상당하지 말고, 달리기를 즐기라는 말이다. 마라톤 선수로서 황영조가 겪은 경험이 너무 고통스러웠던 모양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마라톤은 기원 자체가 '죽음에 이르는 운동'이다보니, 잘못하면 죽음이나 죽음에 가까운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황영조는 성공적인 마라톤 완주를 위해서 14단계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다. 풀코스 완주를 위해서는 14단계 프로그램을 충실히 밟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각 단계별로 1주씩을 배당한다. 이 한 주일 훈련프로그램을 무난하게 통과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특히 일요일의 '장거리 달리기'를 중요하게 보는데, 여기서 통과를 못하면 그 단계 훈련을 계속 되풀이한다. 그렇게 해서 그 단계에 필요한 힘을 얻게 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무리해서 욕심내면 안된다. 그것은 실패와 부상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보통 1단계에서는 걷기를 위주로 한다. 2단계에서부터 달리기가 시작된다. 이런 식으로 4단계까지 마치면 5 km 달리기에 도전할 수 있다. 5km달리기는 이른바 '건강달리기'라고 해서 보통 사람도 무난하게 할 수 있는 달리기다. 4단계 마무리 테스트는 50분 달리기를 가뿐하게 해낼 수 있으면 통과할 수 있다. 7단계까지 하면 10km달리기에 도전할 수 있다. 90분 달리기를 쉬지 않고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한다. 11단계를 완료하면 하프코스에 도전해볼 수 있고, 풀코스도 천천히 뛰면 할 수 있다. 120분 달리기가 테스트 조건이다. 마지막인 14단계를 마치면 풀코스에 도전할 수 있다. 프로그램대로 충실히 한다면 3-4시간에 완주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른바 서브쓰리(3시간 내 완주)는 못하더라도 거기에 버금가는 정도는 되는 셈이다. 쉬지않고 180분 정도를 달릴 수 있어야 14단계를 통과했다고 할 수 있다. 황영조식 훈련프로그램은 기록향상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꼭 인터벌 훈련을 해야 한다. 5단계부터 시작되는데, 강도가 장난이 아니다. 보통 일주일에 한번 수요일에 하는 데, 발목과 무릎만 튼튼하다면 못해볼 일은 아니겠다.

이 책은 마라톤이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황영조의 마라톤 관련 철학과 방법론이 다 녹아들어있는 느낌이다. 달리기의 매력, 몸의 기초이론, 신발 고르는 법부터 부상예방, 스트레칭까지 골고루 다루고 있어서 꽤 쓸모있다. 홍은택이 우리말로 옮긴 존 빙햄의 <천천히 달려라>를 황영조의 이 책과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존 빙햄의 책은 정말 달리는 것의 본질, 매력, 방법론을 황영조 같은 전문선수가 아닌 일반 동호인의 입장에서 서술한 매력적인 책이다. 존 빙햄에 비하다면 황영조는 아무래도 글쏨씨와 유머감각이 부족해 보인다. 그게 선수의 단점 아닐까. 너무 진지하다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 - 개국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조선시대 역사만큼 재미있는 것도 드물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다. 500년 왕조의 역사를 지나는 동안 다양한 지배자들과 정치가들, 문인들, 반란자들, 전란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한편의 대하역사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다. 조선은 건국도 흥미롭고 멸망도 기막히다. 어느 왕조인들 그렇지 않겠는가마는 조선은 특히 더 그렇다. 그것은 그 나라가 기록의 왕국이었기 때문에 풍부하게 남아있는 다양한 사료들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사료들 중에서 으뜸인 사료가 바로 <실록>이다. 이 조선왕조실록은 세계 역사에 유례가 드문 희귀한 자료라고 한다. 이 실록 하나만으로도 우리 민족은 세계 어느 곳에 가도 문화민족으로 대접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박시백은 조선왕조실록을 20여권에 이르는 만화책으로 그려낼 심산이라고 한다. 이미 나와있는 것이 7권 분량이다. 1권은 개국, 2권은 태조와 정종, 3권 태종, 4권은 문종과 세종, 5권은 세조, 6권은 예종과 성종, 7권은 연산군 편으로 되어있다. 어느 책을 들여다보아도 재미없는 것이 없다. 한권 잡으면 손에서 놓기가 어렵다. 다 읽어야 내려놓을 수 있고, 한권 다  읽으면 다음 권이 또 궁금하다. 이제 조선의 10대 임금인 연산군에 이르러 잠시 멈추어있는데, 앞으로 나올 중종, 인종, 명종, 선조 대의 이야기들이 궁금타. 연산군까지가 사림의 맹아기였다면 중종 이후는 사림의 성장과 투쟁, 시련, 정권장악의 시기다. 이 시기를 그는 어떤 시각으로 다룰 것인지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특히 박시백의 장기인 한국토종 캐릭터 창출이 또 어떤 경지에 가닿을지 기대된다. 연산군을 그릴 때, 얼굴에 '대일밴드'를 붙인 재치는 기막혔다. 또 태종과 세조의 캐릭터는 어떠한지. 조조를 연상하게 하는 그들의 음모가적인 모습이 박시백에 의해서 잘 그려져 있다. 박시백의 <실록>을 읽는 재미의 첫번째는 단연 그 캐릭터들의 다양함에 있다고 하는 생각한다.

이미 어린이용 역사만화책으로 윤승운 선생의 <맹꽁이서당>이 나와있어서 조선사에 대한 대강의 전개과정을 알고 싶을 때 보면 얻는 것이 많다. 나도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야사에 많이 기대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온다. 박시백은 고려대 84학번이라고 한다. (혹시 85학번?) 그의 그림은 딱 386세대의 역사의식이 만화 속에 침투해있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를 이야기가 아닌 현실의 거울로 보려는 경향이 보인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E.H.카아의 명제는 386세대의 역사인식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 박시백의 만화를 통한 역사해석은 그런 시각이 강하게 엿보인다. 박시백의 <실록>은 우선 정사인 <실록>을 고증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록을 보는 다양한 비판적 해석들을 참고한 위에 자신만의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이 만화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함께 읽어볼 책으로는 이덕일의 <사화로 보는 조선역사>와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박영규의 <한권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을 들고 싶다. 통사적으로 조선사를 꿰뚫어보는 데 쓸모있는 책들이다. 더 자세한 것을 원한다면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와 사계절에서 나온 <한국생활사박물관>조선편을 보면 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