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는 김치가 매워서 물에 씻어서 먹는다. 고추가루가 다 없어진 백김치를 참 맛있게 먹는다. 그런데 할머니가 늘 집에서 아침이나 점심을 먹이는 까닭에 안 좋은 버릇이 하나 생겼다. 할머니는 김치를 손으로 찟는 것을 예사롭게 한다. 옛날 할머니들은 원래 손을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누리가 이 버릇을 배웠다.
오늘도 저녁을 먹이는데 김치를 빨아 달라고 해서 그렇게 해 주었다. 그것을 밥에 얹어 먹는데, 젓가락이 아니라 손을 쓴다. 아무래도 네살짜리 꼬맹이에게는 젓가락 사용이 어려운 법이지. 손을 뻗쳐서 김치를 가져가는 것을 보고 한마디 했다.
"김치를 그렇게 손으로 집어먹으면 안 돼지.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 그 손으로 눈 만지거나 하면 눈이 아파서 울 거잖아. 그리고 냄새도 나고 말이야. 네가 할머니야 응?"
그랬더니 눈치를 슬슬 살핀다. 아빠 목소리가 제법 엄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무의식중에 한번 더 김치를 손으로 집으려는 것을 제지했다. 그랬더니 이제는 알겠다는 투로 젓가락을 사용한다. 그렇게 몇번을 먹었더니 씻어놓은 김치를 다 먹었다. 또 김치를 더 달라고 해서 새로 몇 가닥을 씼어서 작은 접시에 담아주었다. 그리고 밥을 먹는데 김치에 손가락이 뻗치고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또 손으로 김치를 만지지."하고 좀 큰소리를 쳤다.
그 순간에 녀석이 얼마나 놀란 눈치던지. 잠시 몇 초를 꼼짝 안하고 얼어있더니 금새 "으아앙"하고 울어버린다. 황당했다. 울 거까지야 있나 싶은데, 딴에는 심각했던 모양이다. 눈에서 눈물이 비오듯이 쏟아진다. 갑자기 수도꼭지가 열린 듯 하다. 참 감수성도 좋다. 이렇게 쉽게 울다니 말이야. 부럽다. 아이들은 심각한 것은 속에 담아두지 못하는 모양이다. 바로 이렇게 풀어야한다. 우는 품이 귀여워서 좀 보고 있다가 달랬다.
"아빠가 혼내니까 무서웠구나."하니 더 크게 운다.
눈물을 닦아 주고 나서
"아빠가 혼내니까 많이 무서웠구나"하니까 그제서야 "으응"한다.
"이제 아빠가 혼내지 않을께. 자, 김치먹자. 아 해봐"하면서 김치를 밥숟갈에 얹어서 떠 먹였다. 그랬더니 받아 먹는다. 그렇게 두번 정도 했다. 1분도 안 되어서 또 신나게 밥을 떠 먹는다.
나중에 내가 또 김치를 빨아서 가져왔다가 너무 큰 가닥이 있어서 자르다가 무심결에 손으로 반을 찢었다. 그랬더니 우리 작은 녀석이 하는 말에 내 가슴이 뜨끔했다.
"아빠. 김치를 손으로 먹으면 안 되잖아."
"으응? 그렇네. 아빠가 깜빡 실수했네. 우리 누리 말이 맞다. 김치를 손으로 먹으면 안 되는데 그렇지?"
"그래."
꼬맹이라고 얕보면 큰 코 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