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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
모리 에토 지음, 김난주 옮김 / 시공사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평소 일본 소설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조심스럽게 다가선 책이었다. 하지만 처음의 우려와 달리 여섯 가지 다른 색깔의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을 만나면서 읽는 내내 가슴이 따뜻해졌다. 이야기들이 잔잔하게 요란스럽지 않게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룻을 찾아서>의 파티시에 야요이. 그녀가 닮아 싶은 히로미를 위해 헌신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잃어가는 그녀가 그룻 찾는 출장을 통해 자신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회사 모니터 앞에서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할때면 나도 작은 일탈을 꿈꿔본다. 나도 야요이처럼 좋아하는 케익을 돋보이게 할 그릇을 찾는 열정을 가질 수 있을까.
<강아지의 산책>의 강아지 사료값을 벌기 위해 술집에서 일하는 에리코. 그녀에게 강아지는 그저 애완견이 아니라 그녀의 삶의 이유이자 기준이 된다. 좋아하는 누구를 위해 혹은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 일을 해서 돈을 벌 때만큼 만큼 보람될 때도 없다. 매일매일 일을 하면서 나는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인지? 생계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좀더 멋진 이유가 내게도 있는 것일까.
<수호신>의 4년만에 졸업을 하기 위해 대필을 부탁하는 유스케.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고, 현재에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욕심많은 그에게 마유키는 대필 대신 따뜻한 격려를 보내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유스케는 마유키의 격려에 용기를 얻는다. 혼자서 할 수 없다고 스스로 나약해질때 '아니야. 너는 할 수 있어' 친구의 따뜻한 말 한 마디는 어떤 천군만마보다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나에게도 많이 외롭고 힘이 들때 그런 용기를 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기에 늘 감사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종소리>의 끝까지 자신이 믿고 있던 신념을 버리지 않았던 기요시. 가끔씩 일에서나 사람 관계에서나 또는 작은 일에서 고집스러웠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모두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스스로가 파놓은 아집과 독선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기를.
<X세대>의 친구들과의 오랜 약속을 소중하게 여기고 지키려고 노력하는 이시쓰와 그런 그의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는 노다씨. 학창시절 나도 나의 친구들과 많은 약속을 하며 새끼 손가락을 걸었다. 작은 약속들이라 하찮게 생각하고 잊어버린건 아닌지. 나의 공수표와 같은 약속에 누군가는 서운해하고 있지는 않을런지 모르겠다. 친구들과 주고 받았던 편지들을 찾아보고 싶게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글의 마지막은 이 책의 여섯 편의 소설 중에 가장 멋진 반전이었다. 인생은 내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거. 하지만 다시 기회는 찾아올 것이니 실망하지 말자.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시트>의 남편을 이해하지 못한채 떠나보낸 리카. 그가 죽고나서야 그를 이해했고, 그가 살아온 길을 걷고자 결심한 그녀가 안타까우면서도 한 편으로 공감이 갔다. 사랑을 하면서 우리는 점점 더 상대방에게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되고, 내 방식대로 사랑하면서 내가 원하는대로 따라주기를 바란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그는 나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소통하면서 서로를 알고 있을까. 좀더 늦기 전에 내가 사랑하는 이의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시트'는 과연 무엇인지 알아야하지 않을까.
소설 속에서 6명의 주인공들을 만나면서 마치 거울 속에 나를 비춰본 듯한 느낌이었다. 나의 삶의 이유와 나의 꿈,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 그리고 그 뒤에 남는 아쉬움 속에서 작은 용기 또한 얻었다. 다음에 또 다시 비슷한 일을 겪고,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될 때면 먼저 이 책의 주인공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지금처럼 또 작은 용기를 얻게 되겠지. 지금의 이 여운을 잊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