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규 오버그라운드 여행기
박훈규 지음 / 한길아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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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듣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가 바로 이것 아닐까.  어디로 떠나든 누구와 떠나든 그저 즐거운 것이 여행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여행이란 언제든 행복한 것이다.  이번 여름 예정대로라면 여권을 챙겨 어디론가 떠나야 뿌듯하고 개운했을 달이지만 이번 휴가에는 여행을 하지 않기로 한지라(고액의 대학원 등록금도 있고하니 여행은 자제하자. 흑흑)는  더욱 여행책들에 손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박훈규의 오버그라운드 여행기.  세상에는 참 많은 여행기가 있고 여행서적이 있다.  서점에만 가봐도 여행서적 코너에는 그야말로 꿀맛같을 누군가의 추억과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서적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이 책을 펼침과 동시에 나는 읽기로 마음 먹었다.  이 책은 그 유명한 관광지를 담은 사진이 아니었다.  저자의 그림, 저자의 메모, 그리고 기타 등등의 사진들.  이 책은 여느 여행도서와는 좀 달랐다.  대개 어떤 곳에서 여행을 했고 그 곳의 풍경이나 인상을 감상적으로 담아놓은 글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책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예술여행기였다.   

  여행의 시작은 영국의 그래피티 화가 뱅크시(Banksy)의 그래피티를 찾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뱅크시의 작품은 예전에 인터넷으로 몇 장의 사진을 보았지만 박훈규 씨의 종종걸음을 쫓아가는 발견은 내게도 같은 감동을 주었다.  저자가 그토록 찬양(?)하는 뱅크시의 작품을 더 찾아보았는데 정말 기발하고 창의적이고 아티스틱하고 재미나다.  아, 그건 그렇고.  이와 같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찾아 떠나는 여행기었다.  내가 같은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할지라도 누구나가 보는 곳을 갈 것이고 누구나가 사진을 남기는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겠지만 이 책의 여행기는 달랐다.  자신의 관심사인 그림, 조각, 건축 등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그야말로 설렘 가득이었을 것이다.  그런 설렘이 읽는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여행은 여러 가지 테마가 있을 수 있다.  문학을 좋아하는 누군가는 문학기행을.  음악을 좋아하는 누군가는 음악기행을.  그런데 저자의 여행기는 예술기행이었다.  물론 문학도 음악도 예술의 하위 집단이지만 내게는 박훈규 씨의 이 여행을 '예술' 이 아닌 다른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어휘력의 한계지 뭐.)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눈으로 직접 보고,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정말 로맨틱하고 자유로운 여행이었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는 이들이 부럽다.  나 역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자주 하지도 못하고 무엇보다 재능이 있는 것 같지 않아 흥이 나질 않아 즐기지 못하는 편이다.  이렇게 재주 없는 나는 여행의 모든 감상은 찰나를 기억해줄 사진과 몇 줄의 메모.  그것들이 전부인데 여행지에서 그린 그림들은 그때의 기분과 느낌들을 선안에 집약해 놓은 아주 좋은 메모가 될 것일 테니 말이다.  박훈규 씨의 그림은 모두 크로키와 같은 스케치였다.  그런데 그런 그림이 어쩜 그리도 역동적으로 보이고 인물들이 살아 있는 듯 보이는지.  사진보다 더 분명한 느낌의 그림들이었다.  그 그림만 보고도 그림 속 인물들을 실제로 만난다면 왠지 알아볼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림 속 인물들의 기분이나 성격까지도 알 것만 같은 스케치들.  그저 쓰윽쓰윽 그어둔 듯한 그런 그림들이 어쩜 그리도 멋진지.  박훈규씨의 그림과 메모를 보는 것은 내게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그의 글씨 또한 예술적이다.  그러나 다소 읽기가 힘들다.  그러나 나는 두 눈을 모아 집중해서 읽었다. 야호)   

  여행지에서 친구 피에르와의 만난 일도 참으로 부러웠다.  무작정 가방 하나 메고 떠난 여행지, 그것도 타국 땅에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자 기쁨이다.  그것도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필시 인연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피에르처럼 마음이 맞고 한 가지를 가지고 오랜 시간을 보내도 지루하지 않을 친구가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재산일 것이다.  (두 사람은 갤러리에서 하루 종일 살 것도 같았다.) 

  누군가의 여행기가 대리만족이 되는 것이라면 이 여행은 그와 함께 떠나는 또 다른 여행이었다.  그가 바라보는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순간을 기억하는 것들이 마치 내게도 하나의 여행처럼 흥이 났다.  누구나가 다 아는 여행, 여행자만 다르고 다 같은 여행을 담은 여행기가 따분하다면 이 책을 들어라.  어느샌가 그들처럼 골목길 구석구석 누군가의 장난처럼 편안하고 재미난 그래피티를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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