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겐 을유세계문학전집 14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홍진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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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과의 만남은 표지그림 때문이었다.  에곤 쉴레의 그림 '앉아있는 소녀'.  에곤 쉴레의 그림은 전부터 참 좋아했는데 작년 여름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을 하며 더욱 관심을 갖게 된 화가이기도 하다.  때마침 그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고 가는 곳곳마다 그의 그림으로 만든 포스터와 플랜카드가 펄럭여 한참을 바라보았던 적이 있다.  여행 일정상 그의 전시회는 갈 수 없었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그의 그림을 더 찾아보게 되었고 그 그림들은 하나같이 내 마음에 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고 무언가 이야기거리를 가진 듯한 인물들.  아무튼 나는 이 책의 표지에 눈길을 빼앗겼고 그것이 이 책을 좀 더 살펴본 계기가 되었다.   

  앞서 표지 이야기를 했지만, 단순히 표지가 마음에 든다는 이유가 책을 읽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아니었다.  '성을 노골적으로 테마화하여 가장 커다란 스캔들을 불러 일으킨 작품'이란다.  과연 어떤 내용이길래.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문학에서의 프로이트' 라는 작가의 수식어가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를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학계의 프로이트라니.  뭔가 인간의 내밀한 심리묘사나 표현들, 감정에 대한 분석들을 기대하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라이겐>은 짧은 희곡들의 모음집이다.  라이겐, 아나톨, 구스틀 소위 이렇게 3가지의 큰 테마로 19가지의 희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라이겐'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춤의 형태로 원형으로 둘러서 추는 춤이란다.  이 중 '라이겐' 테마는 특히나 이 춤과 닮은 구성이다.  창녀, 군인, 하녀, 젊은 주인, 젊은 부인, 남편, 귀여운 아가씨, 시인, 여배우, 백작이 10개의 단막극에 등장한다.  '라이겐' 은 주로 성애가 주제가 된다.  그러나 전혀 외설적인 느낌이 든다거나 소위 말해 '야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왜냐면 '성을 테마화 한 것'이지 성행위를 테마화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직접적인 성행위에 있어서는 묘사되지 않고 있다. 작가가 성행위를 표현하는 부분은 ----------------------------------- 이렇게 긴 점선으로 표현되어 있을 뿐이다.  나는 특히나 이들이 나누는 대화들이 인상적이었다.  여자들은 파트너로 하여금 이렇게 묻는다.  '말해봐.  나를 정말 사랑해?'  그리고  남자들은 행위가 끝난 후에는 여자들에게 전과 같이 다정하지 않은 모습들이었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여성들은 건전한 여성들은 아니다.  남편이 아닌 남자를 사랑하는 우뷰녀, 창녀, 십대소녀등이다.  물론 상대남성 또한 건전하지는 않겠지만 백작, 군인, 하녀를 거느리는 주인등 사회적 권위가 있는 자들이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들은 대개 남자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  여성들은 비교적 수동적인데 당대의 분위기가 희곡 속에 녹아난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아나톨' 테마의 8작품이 인상 깊었다.  아나톨은 신경쇠약증 환자 같았다.  극도로 민감하고 신경질적으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는 심지어 그 동안 만나왔던 여자들에게 각 각의 이미지에 맞는 짧은 문장들이나 단어를 부여하기도 하고 결정적인 물건들을(머리카락, 먼지도 있음) 비닐팩에 보관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여자 친구외에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지만 여자친구에게는 자신만을 바라보기를 원한다든지 이별통보를 하러 나선 자리에서 이별 통보를 당하고는 억울해 하기도 한다.  뭐랄까.  이 책은 절대, 절대 줄거리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작가의 문장들을 직접 맛보지 않고서는 미치광이 이야기들처럼 느껴질 뿐이다.  '읽는' 다는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행위 없이 다른 어떤 걸로도 이해할 수 없는(이해하리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마지막 '구스틀 소위' 이 작품은 오로지 내적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쉽게 말해, 혼자 하는 생각을 글로 옮겨둔 것이다.  내용은 이러하다.  구스틀 소위는 오페라를 보러갔으나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정신이 어지러운 상태다.  그는 제빵사와 사소한 다툼을 하게 되고 그 다툼으로 인해 그는 자살을 결심한다.  그런데 죽음을 실행에 앞두고 그 제빵사가 뇌졸증으로 급작스레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되고 자살을 포기하고 기쁜 마음에 열심히 살기를 결심하며 이야기가 끝이 난다.   

   이 책은 난해하다.  하지만 희곡의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나 구스틀 소위의 속말들을 읽으며 그들의 심리상태나 관계, 감정들을 쫓아가는 재미가 있다.  희곡이라고는 하지만 형식이 그러할 뿐 극적인 요소도 없고 대개 잔잔하게 이어진다.  병적일 정도로 불안정하고 감정의 폭이 큰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이다.  오죽하면 이 작품을 '문학 작품이라기 보다 병원 검사 기록에 가깝다' 고 할까.  그러나 나에게는 그들 간의 대화에서 독자만이 찾아낼 수 있는 공간을 즐기며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아나톨'의 서곡에서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가 말한 문장들.  나는 마치 그것들이 이 작품을 요악하기라도 한 듯한 기분이었다.  그것들을 여기 옮기며 마친다.  

 

....(상략)....  자 우리 연극을 하자, 우리 자신의 작품들을 공연하자,
일찍 성숙했고 부드러우며 비극적인, 우리 영혼의 비극, 우리 감정의 오늘과 어제,
사악한 것들의 아름다운 형식, 매끄러운 말들, 화려한 그림들, 절반의, 비밀스러운 느낌,
죽기 전에 몸부림, 에피소크......  몇몇 사람은 귀를 기울인다, 모두는 아니리...... 
몇몇 사람은 꿈을 꾸고, 몇몇은 웃는다.  몇몇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그리고 또 몇몇은 매우 도색적인 것들을 이야기 한다.....(하략).... p.123,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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