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빨래를 훔친 엄마 트롤 - 스웨덴 편 세계의 전래동화 (상상박물관) 2
안나 발렌베리 지음, 욘 바우어 그림, 박인순 옮김, 엄해영 감수 / 상상박물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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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한 편의 장편동화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은 단편동화 모음집인데 왕의 빨래를 훔친 엄마 트롤, 마법사의 망토, 왕의 선택, 뒤바뀐 아이, 네 명의 거인 트롤과 어린 목동 페터, 큰 산의 늙은 트롤, 꼬리에 소금이 묻은 까치, 겁 없는 소년 이렇게 8편의 동화다.  트롤은 누군가의 이름이 아니고 명칭인데 우리나라 동화에서 가까운 대상을 찾아보자면 바로 '도깨비' 란다.  그런데 도깨비가 아름답고 예쁠 수는 없겠지만 이 동화의 삽화는 어쩐지 흉칙했다.  트롤을 제대로 묘사하기 위한 그림이라 그런거겠지?  그러나 우리나라 동화의 도깨비는 흉칙하기보다는 익살스러운 구석도 있고 영리한 캐릭터인데.... 여전히 삽화에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 중 몇 편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솔직히, 점차 이야기의 흥미를 잃어 기억에 남는 것은 앞쪽의 동화 네 편 뿐이다. 
 
  '왕의 빨래를 훔친 엄마트롤' 에서의 엄마트롤은 양심이라곤 없다.  처음 옷을 훔치고 왕실 시녀인 잉가가 누명을 쓰고 쫓겨난 사실에 대해 알고도 또 옷을 훔친다.  누군가의 나의 잘못으로 인해 고통스러워졌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다면 반성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같은 짓을 하고 심지어는 잉가에게 그 옷을 보여주기까지 하는 개념없는 짓을 한다.  내가 만약 잉가라면 그 사실을 왕실에 고했을 것이다.  "당신의 옷을 훔친 범인을 알았어요" 하고.  이 책을 읽기 전 혹자는 가슴이 갑갑해지는 책이라고.  나 역시 비슷한 느낌?  
 
  '마법사의 망토'는 한 마법사가 소녀들을 납치하는데 알비다라는 소녀를 만나게 되고 역시 납치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다 망토가 찢어지게 되자 그걸 모른 알비다는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망토를 꿰메주게 되는데 그 망토에서는 밤낮 빛이 뿜어져 나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고통스러워 하던 마법사는 결국 소녀들을 모두 풀어준다는 내용이다.  내용 자체가 억지스럽다.  마법사가 소녀들을 잡아가기 위해서는 그런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어야 한다.  (굳이 우리나라 동화를 읽듯 해석하려는 것이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동화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 전래동화에서 보면 대개 '나쁜 심정이나 못된 버릇을 가진 아이들이 도깨비에게 잡혀가게 되고 풀려나면 그 행실을 고치게 된다' 뭐 이런 내용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동화를 들으며(혹은 읽으며) '도깨비에게 잡혀가지 않도록 해야돼'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동화는 아이들에게 바람직한 행동을 하도록 한다.  동화라면 적어도 이런 교훈을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이 동화에서는 그런 부분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마법사가 망토에서 발하는 빛으로 시달림을 당하는 것과 소녀들을 풀어주는 것에 대한 연관성이 별로 없다.  이를 테면 알비다가 '소녀들을 풀어주면 망토의 실을 풀어주겠다' 라는 대목이 있다면 모를까 단지 망토에서 빛이 나와서 잠을 못이루자 소녀들을 풀어준다는 것은 앞 뒤가 안 맞는다.  소녀들을 풀어주면 망토에서 빛이 안나오나?  그렇다면 마지막 대목에 '마법사가 소녀들을 풀어주자 이상하게도 더 이상 망토에서는 빛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마법사는 다시는 아이들을 납치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깊은 잠에 빠졌답니다' 정도의 부연설명이 필요하지 않을지.
 
  '왕의 선택' 이야 말로 가장 한국(?)의 정서에 맞는 동화라 하겠다.  왕좌를 넘겨주기 위해 많은 수상들을 후보삼아 살펴보던 왕이 그 수상들 중 왕좌를 이을 자를 찾게 되는 내용인데 왕이 나무꾼이 되어 수상들에게 도움을 주고 보답하겠다는 수상들에게 식사 초대에 와주는게 소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왕은 일부러 나무꾼의 약속 날과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연회를 연다.  결국 수상들은 모두 왕과의 약속에 가고 단 한 명의 수상만이 먼저 약속을 했던 나무꾼의 식사초대에 가게 된다.  결국 왕은 그 수상이 백성과의 약속을 소중히 여겼기에 나라의 왕으로 뽑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나랏일 하는 사람에게는 백성과 혹은 국민과의 약속이행이 가장 필요할지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보아서는 이 동화는 교훈 적이고 조화로운 상황의 이야기였다.
 
  '뒤바뀌 아이' 에서는 트롤의 본성에 대해 잘 설명해준 동화였다.  트롤 부부는 자신에게서 태어난 아이를 인간부부에게서 태어난 아이와 바꾼다.  그런데 역시 트롤부부에게서 자라는 인간 아이는 심성이 바르고 착하지만 트롤 아이는 제멋대로이고 말도 듣지 않는 아이로 자란다.  일반적으로 보면 성장환경이나 가정환경이 아이의 성격형성에 큰 좌우를 한다.  그러나 두 아이들이 거의 부모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란 것을 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하고 트롤은 근본적으로 악하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트롤이라지만, 자신의 자식을 추하게 여기고 인간의 아이를 원하는 트롤 부부의 모습도 이해가 안된다.  
 
  트롤....  우리나라의 도깨비와 비슷하다지만 인간과는 판이하게 다른 트롤, 추하고 악한 트롤에게는 정이 안 갔다.  나는 모든 이야기가 교훈적이어야 하며 전달하는 메세지가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로지 유희적 기능, 즉 재미만 가지고 있다고 해도 괜찮다.  그러나 이 재미도 없고 교훈적이지도 않은 동화라면 어쩌자는 것인지.  이 동화가 그 두 가지 기능(교훈적, 유희적)을 완전 상실한 동화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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