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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아리아나 프랭클린 지음, 김양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표지를 처음 보았을때, 해골을 쿠션삼아 기댄 무표정한 여인하며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이라는 제목이 더운 여름 그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런거 있잖는가? '머리도 식힐겸해서' 라는 말이 제법 어울릴 듯한.... 그런데 책을 받아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흠.... 두께가 장난아니군. 이 책은 페이지수가 무려 555에 달하는 책이다. 아마 올초부터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 중 두께로 보자면 책들의 아버지쯤 될 것이고 내 평생 읽은 책으로 보자면 책들의 큰 형님정도 될 법한 두께. 나는 은근히 겁이 났다.
책을 펼쳐드는 순간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생각났다. 그 책의 첫 페이지는 수도원 근처를 그린 그림지도다. 이 책도 이야기에 등장하는 곳들을 찾을 수 있는 그림지도가 있었다. 그리고 두 책에서 등장하는 수도원, 수녀등의 중세적인 분위기 또한 비슷했다.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은 사람에게 뿐 아니라 책도 마찬가지 인 듯 싶다. 이 책을 펼치고서는 왠지 모를 묵직함을 느끼게 되리라 생각했다. 결코 책의 두께만이 아닐 그 묵직함.
사흘만에 읽었다. 그것도 마지막날은 새벽 3시가 넘어 책을 놓을 수 있었다. 아, 이제 막 클라이막스에 달한 이야기를 손에 쥐고 눈앞의 커튼을 내리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새벽 3시 반경 책을 다 읽었다. 덕분에(?) 그 날은 종일 다크서클을 달고 다녀야 했다. 그렇다고 수면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 억울하지도 분하지도 않았다. '내가 이 시간까지 미쳤다고 이러고 있었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대로 책을 덮고 잠을 자기 위해 눈을 감는 그 순간에는 경건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 추리소설은 읽고 참으로 경건한 마음이 들었어요' 라고 누군가에게 말한다면 "혹시 어젯밤 읽은 책이 에거서 크리스티의 위인전은 아니었구요?" 하며 되물을지도. 뭐 그냥 들어 생각기에도 추리소설을 읽고 재미있었다고 말하기는 하나 감동을 받았다고 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도록 한 책이 여기 있다. 바로 <죽음을 연구한 여인> 이다. 어떤 면이 그토록 감동스러웠는지 천천히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추리소설이나 무협지, 그들이 갖고 있는 매력은 빠른 전개와 긴장감, 스릴이다. 이 책 역시 책을 손에 놓을 수가 없으리만치 흡입력이 강했다. 급기야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 아델리아가 되어 아이들의 시체를 해부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으니 말이다. 최근 읽은 추리소설은 카르멘 포사다스의 <모두가 네스터를 죽이고 싶어한다> 라는 책이었는데 기존의 추리소설의 룰과 형식을 탈피한 새로움이 신선했다면 역시 추리소설의 진수를 보여준 것은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이 아닐까 싶다. 아, 그나저나 추리소설이나 공포영화 따위를 접하고 나서는 숨만 쉬어도 스포일러들이 줄줄 흘러나올 것만 같은데 그것들을 글자로 남기는 위험천만한 일을 지금 하고 있다. 그리고 '낱낱이 발가벗기는 서평은 자제해야겠구나' 하고 추스리는 중이다. 만에 하나 내 글이 이야기 속 용의자를 예측하는데 실마리를 제공해 김이 새버리게 할 부분이 있게 된다면.... 그것들을 그대들의 눈과 머리가 인식하지 못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먼저 이 소설이 가치로운 점은 이야기의 흥미진진함은 물론이요. 작가의 박식함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문학은(게중에서도 소설은 특히나 더) 이야기 구성력, 필력, 상상력, 작품에 대한 애정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하나, 저자의 방대한 지식이 모두 함께 잘 버무려져 훌륭한 맛을 내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중세 시대에 대한 작가의 이해수준이 뛰어난 작품이었다. 이해라고 표현해버리고 말기에는 아쉬울만큼 완벽히 재현한 듯한 중세시대. 그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 책의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는 이야기의 배경이나 상황이 단순히 허구만으로 지어진 것은 아니라고 항변하듯 역사적 배경과 뒷받침을 담고 있었다. 시대를 초월한 작품을 쓰기까지 작가의 무수한 자료수집과 연구가 있었겠지. 그 손길과 발품으로 지어진 책이라 생각하니 어쩐지 겸허해졌다. 그 뿐 아니라 약초나 해부학적 지식은 물론 다양한 종교에 대한 작가의 앎의 깊이에 놀랐다. 아, 역시 작가는 글 좀 써댄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고.... 역시 아는 만큼 쓸 수 있다. 유치원생의 그림일기와 중견작가의 에세이가 또 다르듯이 말이다.
한 시도 범인을 지목해내기 어렵게 하는 이야기 전개능력도 훌륭했다. 책의 빨간 띠지가 말한 것처럼 '현대 스릴러 작가들의 무수한 찬사를 받은 세계적 베스트셀러' 다웠다. 이 책은 '이 사람 왠지' 싶다가도 또 금새 '아까 그 사람은 아닌 것 같군' 하다가 '틀림없이 이 사람일꺼야. 제발 그렇기를....' 하다가 '이 사람이었다니, 이럴수가' 하게 된다. "내가 예측한 범인이 정확히 맞아떨어졌소이다" 하는 다른 독자가 있다면 나는 그를 필시 친구로 삼고 곁에 두고 싶을 것이다. 만약 그것이 당신이라면, 당신은 대단히 예리하고 번뜩이는 정신력을 가진 범상치 않은 인물이니 반드시 후세에 이름을 남길터. 부디 옥체보존하소서.
또 하나의 감동을 얻은 부분은 아델리아라가 4번째 (아직 이 부분까지 진도를 나가지 못한 독자가 이 자의 이름을 알게되지 않길 원하여) 시신을 두고 고민하던 모습이다. 그 시신을 열어젖히면 범인에 대한 큰 실마리를 얻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이미 호흡이 떠나버린 망자의 시신앞에서 살아생전 믿고 따르던 그의 신과 종교를 거스르는 일이 될까봐 망설이던 모습이다. 죽은 자 앞에서 예(禮)를 갖추는 모습이었다.
단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이 셋과 네번째 사람까지 살해한 범인에 대해 그럴수밖에 없었던 더 기가막힌 배후의 음모등이 숨어있었다면 하는 점이다. 실로 많은 공포영화가 범인의 명백한 살해 이유나 정황없이 그저 그 자신이 '미치광이' 이기 때문에 자행하고 있는 그것과는 달랐다면 더 참신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역시, 읽어볼만하다. 단지 잡고 잡히는 데만 열중하지 않아도 될 추리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