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짜르트가 살아 있다면
김미진 지음 / 민음사 / 1995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출간 당시부터 참 읽고 싶던 책이었다.  근데 이제서야 읽게 됐네.  참 오래도 걸렸다.  이런걸 보면 그 많은 읽고 싶은 책들 중 실지 내가 읽는 책은 얼마나 될까?  책을 보면 '읽고싶은 책일세' 하다가 정작 내 눈 앞에 그 책이 사라지게 되면 또 잊었다가 다시 눈에 띄게되면 '아!  이 책 읽고 싶어했었지?' 하고 다시 읽을 다짐을 하게 된다.  그러다 상황과 여건이 잘 맞아 그 책을 내 수중에 넣게 되면 읽게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읽고싶은 책' 으로 남게 된다.  결국 이 책도 '아, 내가 보고 싶어 했던 책이지?' 하며 번뜩하는 생각과 함께 헌책방에서 데려온 책이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절대적으로 절실하지 않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 그런지 그 책을 보고 싶다는 자체를 잊어버리기도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다.  어찌 되었건 이 책은 읽고 싶은 책이었다.   

  김미진씨가 이 책으로 무슨 상을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가 혼동하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소설책이지만 예술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소신있게 드러내고 있는 책이다.  책의 표제에 '모짜르트' 라는 음악가의 이름이 거론되어 이 책이 음악과 관련된 책이 아닐까 할 수도 있는데, 정작 모짜르트는 찾아보기 힘든 책이다.  그런데 굳이 모짜르트라는 음악가를 지칭하여 제목을 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내용을 함축하고 정확히 꼬집은 제목이 아니라면 뭔가 상징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다.  '베토벤' 도 '브람스'도 '바하' 도 아닌 왜 모짜르트일까?  뭐 이렇게 말하니 모짜르트의 이름이 사용된 것에 불만이 있다는 늬앙스네.  그런 것은 아니고. ^^  왜 하고많은 음악가 중에 모짜르트냐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계속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자, 계속 한 번 고민해보자.  이 책은 음악보다는 오히려 그림을 이야기 하고 있다.  등장인물들도 대개 화가거나 미대생들이다.  그렇다면 '고호가 살아있다면' '다빈치가 살아있다면' 뭐 이럴법한 제목이 왜 굳이 모짜르트냔 말이다.  한 번쯤 생각해 볼 법하지 않을까?  이 역시 꼬치꼬치 따지고 드는 격이 되는 것일까?  적어도 난 뭔가가 놓여진 상황에 대해 '이게 여기 놓여 있구나' 가 아니가 '이게 왜 여기 놓여있을까?' 를 고민하는 쪽이다.  내 성향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미술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그림을 포함한 모든 예술이다.  실제 이 책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많은 사람들(쌍, 글라스, 지후, 지니, R등....)이 등장하고 그리고 소설쓰기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있는 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류 또한 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문학과 미술이라는 분야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작가의 소신을 피력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완전한 예술을 총망라 했다고 보기에는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그렇다.  음악이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작가는 의도적으로 음악적인 요소를 접목시키기 위해 표제를 이렇게 정한 것이 아닐까?  뭐 음악가의 이름을 빌어 쓴 것이야 이렇게 생각을 해볼 수 있겠다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가 남게 된다.  왜 모짜르트일까?  하필이면.    이건 필시 모짜르트 라는 음악가의 성향이나 일생에 뭔가 다른 음악가의 이름을 사용해서는 안될--그가 아니면 안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 무엇이 무엇인지 생각해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무엇보다 자명한 것은 모짜르트는 음악의 신동으로 인정받아 왔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두가 그림에 대해 그리고 예술에 대해 고민하고 번뇌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천재적인 음악가의 대명사인 모짜르트가 살아있다면 이렇게 예술에 대해 고민하고 붓질 한 번에 작품 하나에 울기도 웃기도 하는 자들에게 뭔가 해답을 내려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작가의 암호가 아닐까?

  소설 속 윤이 한 이야기가 있다.  20년 평생을 쓴 작품은 불과 몇 시간만에 읽고 이것을 먹었노라 뿌듯해 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의 그런 예측이 불가능하며 끝까지 공을 들여 읽지 않고는 안되도록 하는 소설을 쓰겠다는 윤.  이는 작가 김미진이 윤의 입을 빌어 한 말이 아니었을까?  두어번 정도 예술가의 결과물을 너무나도 쉽게 날로 먹으려 하는 우리들의 모습에 대해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누구도 이견이 없을 만한 천재적인 음악가가 살아있다면 예술에 대한 분분한 의견과 입장들, 그 속에 만연한 혼란함을 잠식시키고 무언가 분명하게 말해주지 않겠느냐는 뜻일지도 모른다.  작가가 생각기에는 모짜르트가 바로 그에 적임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짜르트가 죽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안타까울 동시에 영원히 예술에 대해서 끊이지 않는 고민을 해야한다 뭐 이런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시작과 끝이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서로 만나는 이 소설처럼.  영원히 끝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내 뜻대로 해석을 해보자면 우리에게 예술에 대해 시원한 해답을 줄 사람은 이미 죽었고 그러기에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예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답을 찾기 위해 험난하고 머나먼 여정을 계속해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또 이 책은 점, 선, 면, 보이지 않는 풍경.  이렇게 4단락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 2부, 3부를 유심히 보자.  1부 '점'에서는 등장인물들의 모든 대화가 "(따옴표) 안에 들어있다.  그리고 2부 선에서는 -----(선)으로 대화를 표시했으며 3부 면에서는 『 로 대화를 표시하고 있다.  따옴표는 일종의 점으로 보고 『 이 기호를 영역을 지정해주는 기호로 이해한다면 면을 상징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윤의 입을 빌어 말한 작가의 암호가 아닐까?  그리고 윤은 또 그렇게 말했다.  각 독자의 지적수준 정도에 따라 달리 읽혀지고 의미 파악도 다를 수 있는 소설을 쓰겠으며 그런 방법으로 하나가 군데 군데 암호를 넣는 것이라고 했다.  쉽게 말해 독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이해되어지는 소설을 쓰겠다는 말이다.  그것은 김미진씨가 글쓰기에 있어 지향하는 바일터인데 그것이 이 소설로 인해 이루어졌다 할 수 있을지 여전히 그런 글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일지는 모를 일이다.

  이 소설의 매력은 참 무거운 소재 (소위 말하는 예술, 예술가) 를 김미진씨의 경쾌한 입담으로 하여 독자에게 아주 성큼 가깝게 다가와 앉는다는 것이다.  독자는 그런 소재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거나 경계할 겨를도 없이 작가의 날렵하고 신세대적 필치에 의식의 자리를 내줘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쉽게 화두를 들고 와서는 그것을 대놓고 함께 고민하자고 말한다.  돈이 가득든 가방의 행방에 그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라고 대놓고 의문을 던지고 독자는 자기 나름의 가치와 잿대로 그 가방에 비할 무언가를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또 감각적인 언어의 재미를 느끼며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던 책인데 역시 읽은 후 뭔가 여운과 고민을 남겨주는 가볍지 않은 책임에 분명한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