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ardな dry |
좀 의도된 바로 해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래, 일단 그녀의 이름은 C라고 해두자. 어차피 정확한 이름도 모른다. C는 나에게 지옥에 대해 들려줬다. 상상하던 것이 현실로 체현되는 것을 현장 당사자의 입으로 직접 듣는 것은 악몽 같은 일이었다. 그녀는 내가 가진 모든 가치와 사고에 대해 비웃고 있었고 나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만남은 그리 길지 못했다. C는 바쁜 몸이었기 때문에 꼭두새벽에 그렇게 잡아두고 있다는 것이 너무 미안하게 여겨졌다. 그녀는 연신 툴툴거리면서 문밖을 나섰다. 그녀에게 빚을 져버린 꼴이 되어버렸지만 이 부분은 본의가 아니었다. 그녀가 나가고 난 뒤 여관에서 양말을 빨았다. 물을 짜낸 양말을 수건 걸이에다 걸어놓고 밖으로, 천호동 뒷 편으로 나왔다. 어쩐지 여관 안에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죄스럽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난 누군가 나를 후려치거나 아니면 내가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길 바랬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나는 다시 여관으로 돌아와야했다. 샤워를 하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TV에선 엄정화가 나오고 있다. 눈을 감은 뒤로 네 시간 정도 지나있었지만 양말이 아직 안 말라서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시간동안 복숭아 넥타를 마시며 어제 인쇄한 단편의 초고를 수정했다. 어제 밤에 클럽 에반스를 갔었던가? 현실은 어떻든, 만들어내는 건 꿈이 해야할 몫이 아니던가.... | |
2년하고도 그 전에. 채팅에서 어떤 여자를 알게 됐다. 그여자는 글을 팔아먹고 산다고 했었고 나더러 그 노가다업에 한 번 뛰어들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었다. 그녀는 거침이 없었다.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까지. 그녀는 업계에서 소위 말하는 고스트라이터였고 그것도 상당한 실력(3일에 한권 분량의 텍스트 생산)과 입지(월수입 600가량?)를 가진 사람이었다.
기실 사기와 음모로 가득한 곳이 네트 아니던가. 마침 그때는 사람만나기에 맛이 들려있었던지라, 이리저리 빠지던 그녀를 적당한 거짓말을 통해 밖으로 불러내는데 성공했고, 그렇게 그녀와 조우했다.
그녀에 대한 첫인상 중 가장 강렬했던 것은 택시를 타기 위해 꺼내들었던 그녀의 지갑이었다. 그 지갑은 만원짜리로 가득 차서 터질려고 하고 있었다-_-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저 위의 글처럼, 자신이 살고 있는 아귀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었다.
이후 그녀는 가정사적인 문제와 병적인 유희와 과로가 얽힌 생활을 계속 이어나갔다. 어느 날인가는 싸이더스 소속이라는 인상이 강한 남자를 하나 데려와서는 로드매니저도 겸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스릴러물의 초안을 청탁받았다고 얘기를 했고 참고로 하겠다고 나에게서 콜린 윌슨의 [잔혹]과 [다중인격탐정 싸이코]를 빌려갔다. 이틀 후 그녀는 내가 빌려준 것들이 시시하다는 소견을 밝히고는 영화 시놉시스 초안을 보내줬다. 거기에 여자캐릭터가 하나 늘어나고 소소한 일들이 덧붙여져서 7개월쯤 후에 [주홍글씨]라는 제목으로 개봉이 됐다. 그녀는 한푼도 못 받았다고 했다.
그즈음에 그녀는 완전히 지쳐있는 것처럼 보였다. 불면증으로 인해 잠이 들어도 한시간에 한 번씩 잠에서 깨고 즐기는 일이라곤 룸을 하나 잡고 소주와 맥주를 궤짝째로 들이붓는 게 유일하다는 그녀는 그 기간 중에 한차례 풍을 맞고 부분마비 상태가 됐다. 그녀는 나보다 한살이 어렸다.
그녀는 반찬가게를 하나 갖거나 신학공부를 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나라로 가기 위해서 여러가지로 준비를 하는 중이라 했다. 여행잡지 기고라든지 현지 출판사와의 제휴라든지....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사라져버렸다.
오랜만에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어느 때부턴가 메신저에서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죽었을지도 모른다. 장례식때 초청장 날리겠다는 약속을 기억이나 할는지 모르겠지만.... 아니면 그녀의 소원대로 다른 나라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센티멘탈리즘은 그녀가 가장 혐오하던 것 아니었던가.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살아있어야 옳다. 시궁창 속에서도 살아남은 여자이거니와 무엇보다도 나로선 [잔혹]을 돌려받아야 하니 말이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