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불명 야샤르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야샤르 야샤마즈. 야샤르 야샤마즈. 야샤르 야샤마즈. 솔직하게 얘기해볼게. 노골적으로 고백하건데 저 이름, 불편해. 간장공장콩장장으로 시작되는 우리네 발음훈련을 떠오르게 만드는 저 이슬람 소스가 가득 배어나는 불편한 이름은 척 봤을 때 거부감마저 줘. 어쩔 수가 없지. 익숙치가 않거든. 더군다나 저 야샤르 야샤마즈의 고향은 터키. 혈맹의 나라니 동로마 문화의 중심지니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에게 터키라는 나라는 월드컵 이벤트로나 가끔씩 볼 수 있는 나라잖아? 아무리 케밥이 이마트 지하 식품매장 곳곳에 깔려 있다 해도, 전통적인 터키인력 수입국이자 햄버거 대신 케밥을 먹는다는 지경에까지 이른 독일 정도가 아닌 한에야 터키는 예전부터나 지금까지나 우리에겐 어디 붙어있는지도 지도에서 제대로 찾아내기 힘든 낯선 타자의 나라일 수밖에 없지. 그런 나라에서 온 야샤르 야샤마즈의 이야기에 우리가 얼마나 공명할 수 있을까?

야샤르 야샤마즈 만큼이나 발음 능력을 검증받아야 하는 쉠넴 이쉬규젤이라는 이름의 글쟁이 양반의 친절한 소개글이 끝나면, 우리는 교도소의 한 모퉁이에서부터 한바탕 무대를 여는 야샤르의 행각을 진득한 묘사를 통해 목도할 수 있어. 이슬람교의 전통에 대한 설명과 어느 고명한 성직자의 세상에 대한 회의와 신을 향한 처신, 그리고 그를 공손히 따르는 야샤르의 독실한 무슬림적 태도에 대한 묘사. 우리는 시작된지 얼마 안 지났는데도 꾸란의 숭고한 신비와 그를 체현하는 두 남자의 성스럽고도 아름다운 종교적 승화를 접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우려하게 되. 그러나 전혀 부담 갖지 말지어다. 단 3페이지 내로 작가는 자신이 독자를 웃겨줄 채비가 되어 있다는 걸 보여줄테니.

일단 한 차례 웃었으면, 이제부터 야샤르가 겪었던 고달픈 삶에 대한 주구장창 설레발에 빠져들 무장해제는 다 된 셈이야. 자신이 [아라비안 나이트]가 일찍이 알려줬던 이야기꾼의 운명에 대한 오래된 전통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가 아지즈 네신은 태어나면서부터 주민등록증을 가지지 못할 팔자였던 터키 촌구석의 평범한 청년 야샤르 야샤마즈의 입을 빌려 살면서 보고 겪고 느껴야 했던 부조리하면서도 흔한 풍경이기에 슬프고도 웃기는 양상들을 통해 터키 사회, 더 나아가 관료적이고 조직화된 사회에서 드러나는 지독한 인간소외를 이죽거리며 드러내보이기 시작해.

그런데 여기가 터키야? 무슨 이름들만 얄리꼴리하지 터키 같지가 않잖아.... 마치, 내가 겪은 일 같잖아!

 

얼씨구.

 

그들이 야샤르의 이야기에 이렇게나 열광하는 이유는 이야기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야샤르와 비슷한 사건을 경험한 그들 대부분에게 야샤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공동의 삶이었던 것이다. 야샤르는 마치 모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체화한 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206P

 

조나단 스위프트가 아일랜드의 위정자들을 향해 감자 대신 애들을 잡아먹자고 제의한 거나, 움베르토 에코가 냉동된 연어 한 마리 때문에 최신식 시스템의 호텔에서 겪아야 했던 온갖 수난을 그 초현실주의적인 인상들에도 불구하고 가슴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면 이 야샤르의 이야기 또한 깊숙하게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아니, 아니다 그딴 거 몰라도 상관없어. 그곳이 아일랜드든 캄보디아든 북부 이탈리아의 특급 호텔이든 간에 상관 없이, 우리는 야샤르의 빙글빙글 끌어들이는 입담에서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지. 왜냐, 야샤르, 그리고 야샤르들이 날카롭게 간파한 것처럼 세상은 한없이 엿같기 때문이야. 조직은 개인을 우습게 만들면서 그 피를 빨아 스스로를 비대하게 만드는 선천적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우리의 야샤르들은 뭔일을 당할까 쪼금 무서워서, 쌍욕을 (아마 아무도 없을지도 모를) 하늘에다가 대고밖에 못해. 근데 아무에게도 안 하는 것 같지만 결국 아무에게도 아니기에 모든 것을 향하는 그들의 욕질은 그 대상인 하늘의 상징성을 생각해볼 때 엉뚱하게 정확한 셈이야. 여기까지 오면 이스탄불 한 번 안 가 본 사람이라도 터키와 우리가 고리짝적부터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를 형제적 속성을 진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라구. 그래서 이런 불온한 이야기를 줄줄 읊는 아지즈 네신은 내란음모, 좌익활동 등과 연루되는 250번의 재판과 5년 6개월 동안의 수감생활을 통해 당당한 개인주의의 가치를 웅변했던 건지도 몰라. 뭐 그렇게 신나게 깜빵을 드나들었으니 이런 깜빵이야기도 쓸 수 있었던 거겠고. 그렇게해서 이 소설이 탄 상과 상업적 성과를 가늠해보면, 자신에 대한 투자가치대 산출비용을 확실하게 받아냈다는 점에선 이 작가, 은근히 지독하게 CEO스러운 양반일지도 모르겠군.

마지막으로 이 소설의 실용적 면모. 처음 기획이 라디오드라마의 극본이었던 것 만큼, 소설은 내내 연극적 색채로 가득 차 있어. 교도소라는 제한된 공간의 살가움과 야샤르의 이빨과 혀가 만들어내는 활극에 가까운 인생담, 줄줄이 펼쳐지는 온갖 우스꽝스러운 모든 광경들. 그리고 공감, 씁쓸한 뒷맛의 마무리까지. 이 수다쟁이의 이야기는 그 본래의 기획이 가진 장점들을 전혀 배신하지 않는 극본으로서의 가치도 실로 훌륭. 우리 주위를 둘러친 뻔뻔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조직의 모습과 그 안에서 살아 몸부림치는 야샤르의 억울한 표정과 내일을 꿈꾸는 몸짓은 그 살아있음이 보장됨으로써 설명 가능한 조건이기에 팔팔 꿈틀대는 인간을 통해서만이 제대로 체현가능한 것이 아닐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owup 2006-11-03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랩 가사처럼 리듬감을 살려서 읽어야 할 것 같은. 재미있어요.

hallonin 2006-11-05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