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던가, 라고 말하기는 너무 무책임하고. 밤샘 알바를 하고 온 비몽사몽한 머리로 생각해보기에 그 시작은 아마도 [현시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매니악한 오타쿠 세계를 다룬 만화들은 있었지만 [현시연] 정도의 오타쿠에 대한 충실한 묘사와 이해를 가지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나 인지도적으로 인정을 받은 건 없었으니까요. 나아가 [현시연]은 인터넷 공간에서의 오타쿠에 대한 논의를 보다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이후 라이센스 시장에선 오타쿠 취향의만화들이 하나의 조류라도 해도 좋을 정도로 앞다투어 출간되기 시작했죠. [남자는 불끈불끈]이라든지 [여동생은 사춘기]라든지.... 물론 요시나가 후미가 [플라워 오브 라이프]에서 (상당히 통찰력 있는 표현과 더불어)오타쿠 주연을 버젓이 내세울 정도로 은근한 인기 등장 캐릭터가 된 오타쿠라는 계층의 2000년대 맞이 커밍아웃에 의한 출연 빈도수 증가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가뜩이나 서로 죽네마네 하는 생존 경쟁의 장인 좁디좁은 우리나라 만화판에서 그같은 만화들의 난입은 그 만화들이 팔리고, 이슈가 되니 가능한 것은 아니었나 싶습니다. 즉, 극단적으로 협소해진 만화시장에서 팔리는 만화란 건, 의외로 그런 매니악한 소수 취향의 만화들이라는 것이죠.
그 증거로 라이센스는 아니지만 영챔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만화 중 하나인 [언밸런스X2]를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에로게임의 감수성을 흠뻑 받은 임달영의 현란한 필치에 의해 만들어져 나가고 있는 [언밸런스X2]의 중쇄로 드러나는 성공은 그 만화의 방향성을 미뤄 볼 때 썩 주류라곤 할 수 없을 독자층, 보다 노골적으로 얘기하자면 에로게임과 모에코드에 근거하는 오타쿠문화에 익숙하며 호응하는 독자층이 확실하게 책을 사주고 있다는 반증이 되고 있죠. 분명 [언밸런스X2] 같은 만화는 일본에서라면 확실하게 예상되는 판매량만 판매될, 결코 메이저적인 감수성이나 가능성은 갖추지 못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죠. 이것은 결국 좁아질대로 좁아진 한국만화 시장의 현주소를 반증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즉, 우리나라에서 팔리고 싶다면 정말 특정 취향 공략에 올인하는 매니악한 만화를 그려야 한다.... 는 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게 되버렸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런 만화도 나오고 말았습니다. [페이트] 동인지로 막강한 골수팬층을 마련한 히로유키의 상업지 데뷔작인 [동인워크]. 동인지 업계라는 수라장을 살아가는 네 남녀의 진솔한 이야기를 초현실주의 기법으로 형상화한 작가 특유의 허무개그적 스타일이 돋보이는 4컷만화입니다. 이미 발매 전서부터 네트 이곳저곳에서 이슈가 된지 오래입니다만, 하도 번역이 많이 돌아다닌 탓에 판매량에 있어선 다소 회의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현재 충성도 깊은 팬의 위력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죠. 이미 [헬싱]이라는 (동인지급) 만화로 재미를 본 조은세상의 셀렉트는 눈썰미가 있다고 해야 할지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장사가 되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작가나 출판사, 연재잡지나 현지에서의 이슈화 등등의 면에서 볼 때 어떤 형태로든 광범위한 지지나 이슈가 아닌, 국내에선 온전히 인터넷의 특정 계층에서만 이슈가 됐고 그것이 상업적 판매량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확고하게 국지적이며 소재로서나 내용 자체가 보여주는 코드와 해법으로 봐서도 분명하게 소수 취향 지향인 [동인워크]의 발매와 판매량에 있어서의 지표는 앞으로의 라이센스 만화시장을 더욱 노골적으로 만들 계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면 뭐, [페이트] 인기 동인지 묶음(오피셜 트리뷰트북이 아닌)이라든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