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홍대씬을 중심으로 한 인디밴드들과 팝아트스러운 문화잡지들의 동시다발적 출현으로 인해 세기말 괴이쩍은 문화 전환기라도 맞이하고 있나 하는 사기스러운 감각을 느끼고 있던 시기에 자우림이 '헤이 헤이 헤이'를 부르며 나타났습니다. 신선했었죠. 그리고 절묘했습니다. 비주얼이 되는 여성 보컬을 메인으로 미묘한 절충선에 쫙쫙 감기는 멜로디를 가진 노래를 들고 나온 밴드는 자우림이 거의 유일했거든요. 그때 자우림을 봤을 때의 느낌은 이후 [라그나로크]의 오픈베타 광고가 났을 때의 느낌과 똑같았습니다. 즉, 새로운 트렌드에의 놀라울 정도의 포착감, 그로 인한 대박 예감.

 

그런 점에서 자우림의 1집은 제 기대를 충분하게 만족시켜줬었습니다. 판권 문제 때문인지 음악적 자존심 때문인지 암튼지간에 히트곡 '헤이 헤이 헤이'가 빠진 상태에서 나온 1집의 감수성은 익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데로 인디밴드가 가지고 있을 법한 마이너한 감각을 자우림-김윤아라는 인물이 가진 묘하게 절충적인 필터(만화적 감수성이라 불러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를 통해서 의식적으로 묵직함을 배제하고 약간의 우울증 페이소스를 첨가한 세련된 결과물로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말은 그때부터 많았습니다. 당시 함량미달의 밴드들, 가수들이 크랜베리스, 시네이드 오코너 같은 색깔 강한 외국가수의 스타일을 답습하여 내놓은 음악들은 그 창의성 없음으로 해서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었었죠. 김윤아도 그 비판에서 자유롭진 못했습니다. 이후 지속된 앨범 발표에 있어서도 밴드 업계의 기둥다운 묵직한 한 방을 못 날리고 계속 실없는 잽만 날리고 있다는 비판 또한 있었구요.

 

일단 보컬로서의 김윤아에 대해선 시간이 흐르면서 일취월장했다고나 할까요. 좀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 와서 그녀의 목소리가 돌로레스의 짝퉁이라고 놀리긴 힘들 듯 합니다.

 

실없는 잽의 문제에 있어선, 저로선 자우림의 노래들 중 정말 좋아하는 노래들이 있기 때문에 100% 동조하긴 힘들지만 그들의 노래들이 이제 와선 전반적으로 사카린 기운이 물씬 풍기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더군요. 너무 달콤한데, 그래서 7장째 듣고 있자니 좀 질렸습니다.

 

http://www.aladin.co.kr/blog/mypaper/948444

그런데 뒤늦게 본론으로 들어가서, 오늘 이 포스트를 올리게 된 건 '하하하쏭' 표절 문제 때문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고 있었겠지만 저는 얼핏 듣고 있다가 오늘 나귀님의 서재에서 보고 보다 구체적으로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원래 자우림 자체가 기존의 여성보컬 중심의 소프트한 락 밴드라는 전통에 서 있고, 그 감수성은 팝컬쳐의 우울함이라는 상반된 개념의 혼합 시너지가 불러 일으키는 잡탕적이면서도 패셔너블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서 많이 접한 것 같다는 인상은 전부터 많이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논란들에 대해선 김윤아는 특유의 베짱으로 버텨왔다는 점에선 그녀가 가진 자폐적인 당당함을 느끼게 만듭니다. 붕 뜬 우울함의 외향적 지향이라는 절충적 감각의 현현이 김윤아라는 점에서, 이 모순되지만 납득이 가는 인상 또한 자우림의 잡탕적 성격을 우회해서 드러내 보이는 양상이 아닌가 하고 남는 시간의 망상 약간.

아무튼 '하하하쏭' 얘길 보고 든 생각은,

 

2집에 실린 '이런데서 주무시면 얼어죽어요'가 the wonders의 'that thing you do'와 판에 박은 듯 똑같은데도 당시에나 지금이나 어째서 아무데서도 표절논란이 없는지가 정말 궁금하다는 거였습니다.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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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단적치인 2007-10-16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데서 주무시면 얼어죽어요'와 'That Thing You Do'둘다 알고 있던 노래인데도 불구하고...이 글을 읽기전까진 둘을 함께 떠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막상 생각해보니까 비슷한점이 분명 있어요. 신기해요.
두 노래의 성향이 좀 달라서 그런게 아닌가 싶어요.

글 잘읽었습니다 :)

hallonin 2007-10-16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우림 스타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musial 2009-12-11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런데서 주무시면 얼어죽어요'... 예전에 Wonders의 그 노래하고 비교해보면서 듣던 기억이 나는군요. 오죽하면 두 음원을 제가 다니는 사이트에 올려서 비교해보던 기억까지 납니다. 제 생각에도.. 왜 이 노래가 표절의혹이 재기된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는지 하는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