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벽이 벽이 아니다.... 내 눈에 비치는 세계란 어디까지 보장 가능한 것인가.

[팬텀 오브 인페르노]로 데뷔하여 열광적인 골수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제작사 니트로플러스에서 만든 2003년작. 4800엔이라는 저렴한 가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앨범으로 치면 미니앨범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짧은 분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니트로플러스의 게임들은 뭐랄까, 마이너한 감수성의 결정체라고나 할까요. 다분히 밀리터리매니아를 광분시킨 게임이었던 [팬텀 오브 인페르노]나 크툴루 신화를 기반으로 한 [데몬베인]도 그렇고, 그들의 작품군에선 꾸준하게 스탠다드한 노선을 거부하는 그런 인상이 있습니다. 물론 [사야의 노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 후미노리는 교통사고를 당해 죽기 직전까지 가게되지만, 현대의학의 쾌거로 인해 겨우겨우 살긴 삽니다. 다만 그 사고로 인해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 그는 현실을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즉 그의 눈에 비치는 세계, 그리고 보통 인간들이란 피와 붉은 살덩어리, 체액으로 가득한 괴물들의 세상이 된 것이지요. 거리의 벽과 건물에서부터 친한 친구들까지 예외없이 그렇게 변해버린 세상 속에서 그는 지옥 한가운데에서 사는 것과 다름 없게 됩니다. 눈만 뜨면 나날이 미쳐버릴 것 같은 세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는 그 세계에서 유일하게 보통 사람(보단 미소녀)처럼 비춰지는 사야를 만나게 됩니다.

무릇 섹스와 고어는 표현에 있어서의 양대 금기로써 전통적으로 치명적인 유혹의 대상이었습니다. 18금 에로 게임이라고 하는 장르는 그 두가지를 활용하는데 있어서 타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극히 자유로울 수 있었는데, 일단 에로 게임이라는 위치가 담보하는 표현의 자유로움도 그렇거니와 그 소비층 자체가 마이너하면서도 결집력 있는 집단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를 증명하듯 에로게임의 생산자들은 소비자로서의 경험 또한 풍부하게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더불어 그 밀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은 상대적으로 이 장르가 '아는 사람만 알고 하는 사람만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에로게임 제작의 영세한 특성상 시스템에 있어서의 혁명적인 무언가를 기대하긴 힘듭니다. 게임의 어떤 장르보다도 다양성과 순수한 게임성이란 측면에서 부실한 면모를 보이는 것이 바로 에로 게임이지요. 따라서 이 장르에서 중시되는 요소 중 가장 큰 부분은 바로 스토리, 설정의 문제입니다. 그 때문에 에로게임이란 장르에서의 스토리의 힘이란 거의 원시적인 위력을 가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전형적인 벗기기 게임, 포르노그래피티의 단순차용 또한 넘쳐날 정도로 존재합니다만 소위 비주얼노블이라는 하위장르의 탄생과 더불어 스토리의 특화성 또한 심화된 것이 사실입니다(이 얘긴 차후에 따로 다뤄보기로 하겠습니다).

[사야의 노래]는 바로 그 고어와 에로라는 두 영역을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는 비주얼노블입니다. 플레이 시간이 아무리 길어야 세시간 남짓한 짧은 단편소설이랄 수 있는 이 게임은 실로 에로게임이라는 지형에서만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온통 끈적한 피와 살덩어리로 채워진 세계, 식인행위, 러브크래프트적인 괴물, 피폐해지는 인간의 내면에 대한 표현과 미소녀라는 극단적으로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고, 또 그것이 소비될 수 있는 시장을 가진 장르가 과연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다 이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순수한 러브스토리이기까지 합니다. 세상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야의 노래]의 이야기는 훌륭합니다. 마치 꿈을 꾸듯 흘러가되 그것이 편안한 악몽 속과 같은 느낌입니다. 어떻게 보면 여기서 보여지는 너절하고 추잡하며 폭력적인 광경들과 미소녀 캐릭터라는 거친 조합은 그 자체로서 잔인한 매혹의 은유와도 같습니다. 결국 그것들은 우리가 눈을 돌려왔던 것이기에, 이 이야기의 병적인 인상은 이야기가 이야기로만 표현된 것이 아니라 그림과 더불어 표현된 죄인 건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저로 하여금 정말 이 게임을 불쾌하게 느끼게 만드는 것은 표현의 폭력성보다는 그 조합 자체가 던져주는 까끌까끌한 자극입니다. 여기서 불쾌함이란 엄밀히 말하자면 이 자극적인 시선 속에서 혐오와 매혹을 저 자신이 동시에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러니 굳이 오글리쉬에 들어가서 뇌내에 시각인지형 마조히즘 호르몬을 생성해낼 필요를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쪽 계열의 감수성에 면역이 된 사람에게나 마땅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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