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절망선생 1
쿠메타 코지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쿠메타 코지, [제멋대로 카이조]로 진정한 폭주의 미덕을 보여주면서 소수의 열광적인 팬덤을 이끌어낸 자폐형 루저 만화가인 그가 [마법선생 네기마]와 같은 잡지를 통해 근 8개월여만에 비실거리며 복귀했다. 여전히 자신감 결여로 가득한 작가후기에서의 말들과는 상반되게 당당하고 뻔뻔스럽게 [마법선생 네기마]의 구조를 통째로 패러디하고 있는 [안녕, 절망선생]은 어느 봄날, 모처의 모고등학교에 담임교사로 전근 오게 된 이토시키 노조무의 벚꽃나무숲 자살씬으로 시작된다.

[제멋대로 카이조]는 처음 시작은 어떻게 보면 그즈음에 쏟아져나왔던 그저 그런 폭주물들, [이나중 탁구부]와 [멋지다 마사루]의 뒤를 이었던 [하이퍼 레스토랑]이나 [하레와 구우] 같은 영역의 답습으로 보였다. 후에 후루야 미노루는 소위 '엽기물'과는 다른 독자적인 작가적 경지를 개척하게 됐고 [하이퍼 레스토랑]은 소리 소문 없이 얘기가 끊겼으며 [하레와 구우]는 보다 건전을 지향하게 되면서 성공적인 소년물로 자리잡는 등 모두가 생존을 위해 나름의 길을 선택했지만(다만 우스타 쿄스케는 시부야케쪽 친구들과 노느라 바빴는지 되는대로 그리는 [삐리리 불어봐 재규어]로 복귀할 때까지 별 소식이 없었다) 땜빵용 연재작이라느니 오타쿠 개그만 구사한다니 하는 소리들에 시달려야 했던 [제멋대로 카이조]는 정반대의 길, 완전히 맛이 가버리는 길을 택함으로써 [코난]의 작가가 취재하러 휴재하게 되면 나도 취재차 쉬고 싶네요라고 지면에서부터 당당하게 씹어버리는 만화가 됐다. 연재 후반에 이를수록 절정에 달하는 그런 배째주의식 태도로 온갖 트러블을 다 일으켰으면서도 26권이라는 길고도 긴 여정을 끝마칠 수 있었던 것은 이 작품의 매니악한 팬층을 놓치지 않음과 동시에 지면채우기로서의 기능성을 잃고 싶지 않았던 소년 선데이 편집부의 간악함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아무튼지간에 그 덕에 우리는 한 만화가가 자신의 만화를 거의 개인블로그 수준으로 만들어버리는 지난한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참고 - 책날개에 있는 멀티 건강 식품회사의 엘리트 사원 노조무의 이야기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작가의 헛소리니 진지하게 읽고 싶다면 진지하게 읽어주자. 각장의 제목은 패러디다. 그외에도 쏟아지는 패러디들에 최대한 주석을 달려고 노력한 번역자의 열정이 아름답다. 1권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자폐증, 외계교신자, 히키코모리, 스토커, 문자메일매니아, 이중인격자, 꼬리 페티쉬, 변형결벽증, 불법입국자, 비교적 정상인 소녀 등등이다. [제멋대로 카이조]의 후반부에서부터 쓰기 시작한 각장의 메이킹 독백이 여기도 실려있다.

[제멋대로 카이조]의 연재 중반에 이르면서 쿠메타 코지는 재미도 없고 인기도 없으며 점점 엉망진창이 되가는 만화를 질질 끌고 가야 하는 자신에 대한 회의로 형편없는 내용의 연재를 계속하다가 결국 자신을 폭발시키는 것으로 스스로를 찾게 됐다. 결국 자학이며 당최 해결이 안 보인다는 점에서 대책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그것이 [사우스파크]를 위시한 미국형 이죽거리기, 더 나아가서는 역사상의 오래된 패러디의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구수, 걸직, 공격적인 패러디와 비꼼과는 다른 영역의 자폐적이고도 우울한 이죽거리기의 영역을 확보하게 됐다는 건 확실하다. 지극히 현대적이며 은근한 병적 기운을 담보하고 있는 [안녕, 절망선생]은 후기의 [제멋대로 카이조]가 보여줬던 현대(일본)백과전서적 지식에 바탕을 둔 소심하지만 줄기찼던 수다와 열외자적 이죽거림에 익숙해 있는 이들에게 확실한 만족을 제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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