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한 덕에 분할.



생각해보면 김성수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컨셉만은 훌륭했습니다. 특히 그의 데뷔작인 [런어웨이] 같은 경우는, 정말 개봉하기 전에는 제가 그 전에 언젠가는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그 컨셉 그대로였던지라 무척이나 불안했지만 정작 영화는 형편없었기에 꽤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_-

[영어완전정복]도, 액션영화, 남자영화만 만들던 사람이 로맨틱코미디물을 만든다는 '컨셉'이 화제가 됐던 작품이었죠. 역시나 이나영의 골수팬들이 아니라면 이 영화가 마이너 히트 정도밖에 치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말이죠.

얘기를 돌려서 김성수 감독의 최고걸작이라고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는 [비트]는 아직도 안 봤습니다. 어째서 안 봤느냐 하면 첫째,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의 저는 남들이 다 좋다고 하면 무조건 안 보는 삐딱한 녀석이었습니다. 덕분에 일단 시기를 놓치게 됐죠. 두번째, 저는 도로를 달리는 폭주 오도바이를 보면 바퀴 사이에 철봉을 끼워넣으면 재밌겠다는 상상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네들이 후까시 잡고 청춘 어쩌고 하는 걸 보느니 차라리 그네들이 그나마 생짜대로 나온 [나쁜영화]를 지지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허영만의 [비트]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그리고 전 그걸 끝까지 다 봤습니다. 넷째, [태양은 없다] 공개 직전의 인터뷰에서 김성수 감독이 자신이 정말로 만들고 싶었던 [비트]의 결말은 후까시 가득했던 영화가 아니라 허영만 원작의 [비트]의 결말이었다더군요. 저로선 그 말을 듣게 된 후 더이상 영화 [비트]를 볼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됐습니다.

역시나 컨셉은 좋고 기대도 잔뜩 하게 만들었으며 고생한만큼 기술적으로도 훌륭했지만 서사는 엉망이었던 [무사]의 경우도, 어찌 보면 저 마지막의 동반파멸극에로의 질주가 영화를 망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즉, 이 이야기는 시작에서부터 이미 끝나 있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파멸에의 비극은 인류 공통의 서사이고 그것의 미학적 승화 또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 터이지만,  여기에 이르러선 적어도 그 표현면에서의 기술력이 김성수 감독에겐 없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됩니다. 그가 자신의 모든 영화에서 각본가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과 그나마 나은 평가를 받았던 저 [비트]가 원작의 아우라를 상당수 빌려왔다는 부분에서 그 혐의는 짙어집니다.

[비트]를 허영만의 원작처럼 만들고 싶었다는 건 이런 '까라'들에 대한 환멸 때문 아녔나 하고 되물어볼 수 있겠습니다.

그 대답이 [태양은 없다]였습니다. 그리고 유일한 대답이기도 하죠. 제가 개인적으로는 김성수 감독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만, 이 영화에서의 청춘은 비장미와는 거리가 멀죠. CF 같은 감각의 카메라 터치가 넘쳐나긴 하지만 [태양은 없다]는 기본적으론 지지리궁상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우성-이정재라는 마초적 아이콘들과 김성수 감독의 그 MTV적 미학은 거둬지지가 않고 그런 것이 영화의 현실감각에 장애요소이긴 합니다만,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잖습니까? 그런 미학은 일종의 절충선이라는 거겠죠.

김성수 감독의 영화 속에서 공통적으로 세상은 좆같은 동네입니다. 세상은 청춘을 착취하고, 노예제이고, 법이라는 이름의 부조리로 정당화됩니다. 그런 좆같은 세상에 어떻게든 순응하느냐([태양은 없다]), 아니면 뒈지더라도 폭탄을 던지느냐([비트], [무사])의 기준선이 그의 영화적 미학의 가늠선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꾸준한 견지가 김성수 영화가 주는 유혹의 힘이기도 하지요. 기본적으로 막 되먹은 세상에 대한 환멸과 파멸에의 매혹에 구조적 정형에 대한 타파의 의지가 실려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면 어떤 즐거움을 주게 될까 기대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안타까운 건, 성공한 게 없어보인다는 점이지만요.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optrash 2006-04-28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태양은 없다' 제일 좋아해요. 극장에서 엔트렙먼트 + 기억도 안나는 다른 무슨 영화와 야간 동시상영으로 보았던 기억이. 그런데 야수의 김성수는 저 김성수가 아닐건데요 아마.

hallonin 2006-04-28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이거 원. 완전히 삽질했군요-_- 어째서 내 기억 속에는 계속 동일인물들로 남아있었던 거지.... 심지어 시사회장에서조차도 같은 인물이었던 걸로 남아있는 게 참....

Koni 2006-04-28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중에 '비트'와 '태양은 없다'를 보았네요. 정우성이 좋아서 보았는데 '태양은 없다'에서 껄렁한 이정재를 발견해서 좋았어요.

hallonin 2006-04-29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에겐 어째 그 두 배우가 배우로서 다가오지 않고 흐릿한 아이콘만으로 다가오는 걸까요....

배가본드 2006-04-30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어 완전정복과 무사를 봤습니다 ㅋ 영어는 거의 trash였고 무사는 그런대로 재밌었지만 나중에는 출연 배우들만 기억에 남는.. 동일감독이었다니 놀랐3

hallonin 2006-04-30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동일감독이란 게 영어완전정복 때의 마케팅 포인트 중 하나였는 걸요.

배가본드 2006-05-02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굉장히 뻘쭘하네용 ㅋ 그 때도 옛날이라 기억은 안나지만 그런 선전에 혹해서 본것같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