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가진 즐거움 중 하나는 손예진의 회당 출연료 5000만원으로 더 유명한 이 사전제작 드라마를 보는 일입니다. 글쎄요, 손예진이란 배우나 감우성이란 배우에게 뭔가 엄청난 애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감독이 한지승이란 것도 되려 호감의 반감요인이었습니다. 공형진이 나오니까 그가 나오는 부분만큼은 확실하게 웃겨주겠지... 정도의 기대감은 있었습니다. 그렇게 정말 별 생각 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어라, 이거 물건인 겁니다.
이 [연애시대]는 한지승이란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보여주는 코믹멜로물에 대한 강점들에도 불구하고 그의 전작들이 가지지 못했던 센스를 보여준다고나 할까요. 사실 [고스트맘마]는 센스가 영 고전적인 코믹물이었고 [찜]이나 [재밌는 영화]는 '웃기지도 않았으며' [그녀를 믿지마세요]가 좀 맘에 드는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영 진부한 센스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연애시대]는 아주 물샐 틈이 안 느껴집니다.
쿨한 개그로 가득한 이 드라마의 근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다치 미츠루적 센스입니다. 물론 아다치 미츠루가 사용하는 공식이 오리지날인 것은 아니지만 그에 의해서 단단한 법칙으로 정립됐다는 가정 하에서입니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코믹멜로쪽 건드리는 사람치고 아다치 영향 안 받은 사람 없습니다만, [연애시대]는 거의 완벽하게 그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런데다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을 보는 듯한, 거의 그대로 빼온 것 같은 그런 씬을 발견해버렸습니다.
드라마 3화에서 보면 은호(손예진)을 졸졸 따라다니는 현중(이진욱)의 정체가 아직 모호한 가운데, 그가 길을 가다가 그의 뒷태를 수상쩍이 여긴 경찰차와 달리기 시합을 벌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경찰차가 거의 뒷꽁무니를 쫓는 가운데 전력질주를 하던 현중은 결국 어느 고급저택 앞에 체념한 듯 서게 됩니다. 경찰이 총까지 꺼내들고 그에게 접근하는 찰나, 저택 현관문 스피커에서 한마디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도련님?"
아다치 만화에서 너무도 즐겨 쓰이는, 때론 거의 한 회 분량을 다 써먹어버리곤 하는 저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훼이크 플롯인 거죠. 이 드라마에서도 이 씬은 거의 2~3분여를 잡아먹는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매력적인 안배외에도 감우성과 손예진, 공형진의 기본 이상의 연기력을 기반으로 한 앙상블은 이 능청스러운 기운으로 가득한 코믹물에서 정말, 제가 보고 싶었던 장면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물론 설정상의 문제, 이혼한 부부의 만남이 저리도 줄기찰 수 있다는 것이 몇몇 상황의 억지성과 함께 이혼의 동기와 더불어 작품몰입의 내재적 위험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만 씬 하나하나의 즐거움이 워낙 뛰어나서 금방 잊게 만드는군요. 기대했던 [닥터깽]은 지지부진한 것에 비하면 [연애시대]의 깔끔함은 확실히 미덕입니다.
이건 뭐 이어지는 잡설입니다만 요즘 한국의 드라마, 정말 강해졌군요. [달콤살벌한 연인]이 MBC의 HD 노하우를 빌어다 만들어낸 걸 보면 앞으로도 그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겠죠. 미국처럼 말입니다. 아직은 모든 방송사에서 전반적인 흐름이 보여진다기보다는 MBC와 외주 사전제작 드라마들에서 두드러지게 작가적 욕구와 그 성과가 보이고 있는 중입니다만, 한국드라마의 상업적 가능성이 영화를 뛰어넘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그 가능성은 더 커지겠죠. 괜찮은 얼굴마담 나오고 국내에서의 시청율이 어느 정도 나온다면, 해외판매에서 얻는 수익이 보장된 상태니 드라마의 자유도 또한 넓어지리라 봅니다. 사상최악의 시청율이었던 작년의 MBC 드라마가 보여줬던 놀라운 성과들을 보자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니 장동건이 드라마로 돌아오고 싶다는 발언을 사업가적 눈치의 출중함으로 해석해도 좋습니다. 아울러 글쟁이로서 행하고자 하는 표현의 영역에서도 드라마의 입지가 훨씬 드넓어지리라 봅니다. 영화보단 드라마가 작가의 입김이 더 쎄서 그리로 간다는 사람도 있는 판이니까요. 인정옥이 [아일랜드]를 관철시킨 것 같은, 전례가 없는 사건이 다시 가능할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러고보니 정작 아다치 미츠루 만화는 뒤엉킨 실타래를 제대로 못 풀어냈던 [카츠] 뒤로는 요새 거의 안 보고 살았습니다-_- 또다시 자기복제물이란 소리가 들려오는 [크로스게임]은 볼만 합니까? 영화적 성과야 어떻든, 최호 감독은 [후아유] 이후 청춘이란 주제에 질려버린 다음 [사생결단]을 만들기로 했다죠. [연애시대] 또한 손예진의 주름과 그에 대한 소재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마냥 청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기에 아다치 미츠루 만화와는 일정한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퍼내도 퍼내도 영원할 것 같았던 청춘이란 소재에서 자기복제의 연속 끝에 바닥이 슬슬 보이는 것 같은데도 그걸 놓치 않고 있는 아다치 미츠루는 무슨 생각일까요. [진배] 같은 괜찮은 비청춘 만화도 그려냈으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