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폴리스 1 -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김대중 옮김 / 새만화책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페르세폴리스]에서 우리를 처음 매혹시키는 것은 저 빨간 표지 한가운데에 그려져 있는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가진 소녀의 무심한 표정이다. 소녀는 이제는 이슬람 여인들의 전형적인 대서구적 아이콘이 되버린지 오래인 베일을 쓰고 있으며 그녀가 그려진 칸의 외부선은 이슬람 양식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렇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는 것이다. 이란 사회에서 이란인으로 살아왔으며, 지금까지도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호메이니와 석유, 우리나라 건설기업의 단골 대형 토목사업 수주국가, 아바스 키아로스타미를 위시한 영화적 성과들, 아랍전쟁의 당사자, 악의 축, 핵무기로 이미지화 되는 이란은 마르잔 사트라피의 손에 의해서 전혀 다른 세계가 되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1980년이 시작될 즈음, 왕조가 몰락하고 '문화혁명'이 시작되던 교차점에서 시작되어 이라크와의 전쟁이 점점 수렁에 빠져들고 있었던 80년대 중반까지의 이란의 풍경들이다. 진보적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이제 막 열 살이 넘은 우리의 소녀는 체 게바라와 마르크스에게 푹 빠져있었고 밤마다 하느님과 대화를 하며 마지막 선지자가 되길 꿈꾸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으례 그렇듯, 소녀의 꿈을 지속시켜주지 않는다.

[페르세폴리스]를 보며 신선하게 느끼게 되는 것은 외부에선 종교적 억압으로만 이뤄져 있는 것으로 보였던 이란이 가진 내부적 개방성과 풍요로움일 것이다. 주인공 마르잔의 가문과 주변엔 진보적 좌파들이 득세하고 있고 그녀 자신은 마이클 잭슨과 아이언 메이든을 즐겨 들으며 가족들과 친지들은 폭격의 와중에서 포도주와 함께 하우스 파티를 즐긴다. 이것은 마르잔 집안의 남다른 진보적 면모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비지스와 핑크 플로이드의 테이프를 파는 암시장이 존재할 정도라면 그만한 수요가 그 사회 안에 끊임없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이 작품이 가진 면모가 이란사회의 그저 특수한 경우의 한 일례라고만 말하는 것은 과격한 일반화일 수 있다. 여기서 보여지는 풍경들은 분명히 이란이 가지고 있었던 또하나의 면모인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이야기가 상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외부와 내부에 걸친 폭력에 의해 비틀려가는 사회 속에서 그녀는 하느님, 마르크스, 가족들, 친구들을 차례로 잃기 시작한다. 그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점 가혹해지는 폭력 속에서 사라지거나 살해 당하거나 도망을 간다. 결국 그녀는 조국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그녀는 세상의 왜곡과 폭력이 만들어내는 변화에 대항하여 사실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페르세폴리스'에서 살았던 이라는 것과 그곳에서 가지고 있던 경험들을 견지하려 하는 회고록이자 고백담인 이 작품이 또한 탁월한 관찰기이기도 한 것은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녀의 눈엔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장소가 가진 기쁨과 즐거움, 모순과 슬픔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을 다시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용서는 해도, 잊어서는 안 된다." 라는 말로, 상실에 저항하는 기억을 추구한다.

이 작품이 자극할 수도 있는 그 모든 우울증 유발요소들을 감춰주는 것은 더없이 매력적인 페이소스를 뿜어내는 작화와 적절한 유머의 쓰임이다. [페르세폴리스]엔 두터운 모노톤과 온순한 데포르메만으로도 '페르세폴리스인'들을 온전히 매력적으로 재현해내는 그림과 더불어 이야기 내내 풍요롭게 받춰주는 인물들의 능청과 기구한 현실이 만들어내는 유머가 자리하고 있다. 표지에 그려진 소녀에 대한 매혹은, 그렇게 끝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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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1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llonin 2006-03-02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권을 기다리게 만들어주더군요.... 이미 해외에선 2권이 나온 상태이고, 아마도 성장한 작가가 겪는 이야기가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