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두 아이콘 총서로 나왔던 데이빗 제인 마이로비치가 글을 쓰고 로버트 크럼이 그림을 그린 [카프카]입니다. 이두 아이콘 총서는 20세기의 사회 문화의 중요 아이콘들을 하나씩 붙들어 시각적 쾌감을 동반할만 한 구성과 편집, 그리고 깔끔한 서술들로 쉽게 이해 가능하도록 뽑아낸다는 점에서 좋아할 수밖에 없는 물건들이었는데, 역시 출판 시장에서의 고전으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하고 사라져갔죠. 근간엔 김영사에서 '하룻밤의 지식여행'이란 제목으로 비슷한 시리즈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카프카]는 이두 총서의 책들 중에선 좀 이질적이다 싶을 정도로 충실하게 전기적 색채를 띄고 있습니다.
60년대 히피 문화의 한 축이었던 로버트 크럼의 작품들은 기존의 딱딱한 사회 질서와 편견, 성에 대한 관념을 과격하게 부숴버리는 걸로 유명했습니다. 1995년에는 데이빗 린치가 제작하고 테리 즈위고프가 감독한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 '크럼'이 만들어지기도 했죠. 벅스 바니를 성적 매혹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을 고백함으로써 2차원 증후군 화두를 노골적으로 대외천명한 거의 최초의 양반이었다는 것과 저로선 처음으로 벅스 바니의 성별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꽤 의미있는 양반이기도 합니다(실제로 그 뻔뻔스러운 토끼의 바이 섹슈얼리티에 관해선 이것저것 얘기가 많습니다).
그와는 완전히 반대의 방식으로, 하지만 결국은 같은 대주제였던 부조리에 대한 악몽 같은 묘사를 선보였던 카프카의 작품의 아우라를 묘사함에 있어서 그의 스타일은 거의 완전하게 부합됩니다. 다만 여기서 다뤄지고 있는 카프카에 대한 해석이 카프카에게 내재된 유대계 유목민적인 성향을 바탕으로 그의 작품군이 만들어낸 풍경안으로 그를 대입하려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이후 나온 카프카에 대한 연구 저작에 비추어 편협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또한 다른 연구들에서 보면 카프카라는 단어가 형용사의 지위를 차지하게 만든 그 모든 음울함과 소심함과는 상반되는 모습, 유난히(혹은 전형적으로) 여자를 밝히는 섬세한 난봉꾼이었던 카프카도 보여주고 있거든요. 하지만 저 '카프카적'이란 형용사에 어울리는 카프카를 그려냄에 있어서 크럼에 필적할 감수성의 소유자는 더이상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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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 올렸던 글인데, 얼마 전에 크럼의 작품집인 [아메리카]를 구입하는 통에 생각이 나서.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