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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쿠 1
요시나가 후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잘 먹어서 그런가. 유독 칼로리 높은 음식을 즐겨 먹는 정력적인 작가인 요시나가 후미가 [플라워 오브 라이프]와 함께 연재중인 [오오쿠]의 1권이 드디어 발매됐습니다.
오오쿠란 원래는 쇼군의 여자들이 기거하는 금남의 장소로 실제했던 역사적 공간입니다. 쇼군의 권위를 보여주는 일종의 하렘이라고도 볼 수 있는 폐쇄적인 장소였던 오오쿠는 일본에서는 1983년에 [실록 오오쿠]가 제작된 이후로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인기 드라마 시리즈의 소재로 우리나라 케이블에서도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시나가 후미의 오오쿠는 그 여자들의 오오쿠가 아니라 남자들의 오오쿠입니다. 여자 쇼군를 받들면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수백명의 남자들이 기거하는 곳. 한마디로 대체역사물적 역전상황입니다.
이 작품 속에서의 일본은 남자가 극단적으로 적어진 까닭에 대부분의 일은 여자들이 맡아서 하고, 심지어 결혼조차 제한되어서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돈을 내고 씨를 받아야 하는, 아주 멋진 세상이지요. 이것이야말로 남자의 로망이 아니던가! 이 작가가 드디어 마초이즘의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인가.
그러나 요시나가 후미가 일찍이 마초이즘의 매력을 정확하게 간파한 작가였단 걸 제하더라도, 그녀가 그 마초적 남성들의 열렬한 사랑을 아주 즐겨 그려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겁니다. 좀만 바꿔 생각하면 [오오쿠]가 보여주는 세계는 여자들의 천국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여자들은 실질적인 가정의 가장이며, 자유로운 성적 유희를 누리는 게 가능하고 심지어 쇼군은 수백명의 꽃미남들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정치적으로 꽤나 흥미로운 텍스트가 될 수 있겠습니다만, 그보다는 작가의 개인적 취향의 결과로 이해되는 이 작품은 과연, 도입부의 여러가지 환상적인 정경들(이 글은 순수하게 남성독자의 입장에서 쓰여지고 있음을 밝힙니다)은 얼마 안 가 싹 사라지고, 농밀한 게이섹슈얼의 공간으로 독자들을 밀어넣습니다.
폐쇄된 장소, 결벽증이 생각나게 만드는 법도로 가득한 세계, 오직 남자들-꽃미남 및 적당한 시니어 취향도 만족시킬 수 있는 여러 옵션의 남자들로 싸인 공간. 이 모든 것이 대체역사극적 시대극으로 발현되는 것은 요시나가 후미가 전작들에서 틈만 나면 시대극을 언급했었던 것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갈 겁니다. 기실 오시마 나기사의 [고하토]를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그 고립된 신선조들의 세계가 얼마나 미혹에 약하며 금욕적 인상을 덧씌운 탁월한 미적 감각으로 장식되어 있었는지 아실 겁니다. [오오쿠] 1권의 상당부분은 바로 그 [고하토]의 세계를 판박이로 가져오고 있습니다. 실제적으론 직접적인 표현은 부단히 자제되어 보여지지 않는 이 작품이 그런 농밀함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시대극과 요시나가 후미의 캐릭터들의 삐죽입, 그리고 쾌락과 향유를 위해 준비된 폐쇄공간이란 상황설정 덕이겠죠.
하지만 [오오쿠]는 그 공간에 대한 매혹에서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녀의 작품 속 인물들이 질투란 감정에 지저분하게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어색한지 아는 독자들이라면, 이 작품에서 또한 그녀의 쿨한 캐릭터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름답되 썩어있으며 상처입은 부패의 매력이 넘쳐나는 남자들의 세계는 1권 말미에선 제법 상쇄되어버립니다. 그리고 그에 이어 갑작스럽게 대체역사물적인 미스테리가 등장하는 것이, 2권에 가선 작가가 혼합장르적 성과를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플라워 오브 라이프]가 소년-소녀의 시선을 상당 부분 수용하고 있는 학원물을 향한 작가의 색다른 시도라고 한다면, [오오쿠]는 그녀의 관조적 단편들과 작가의 본류에 가까운 [서양골동양과자점]의 정신적인 적자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오오쿠의 남자들로 대변되는 남자의 삶과 여자 쇼군으로 대변되는 여자의 삶을 동시에 아우르려는 요시나가 후미의 시도는 그동안 작가가 보여줬던 야오이 지향적 작품군들과 [사랑해야 하는 딸들]로 보여줬던 여성들에 대한 시선이 동시에 맞물린 결과로 그녀 자신의 작가적 견지에서도 확실히 새로운 것이라 앞으로가 기대되는 바입니다.
...언제부터 이런 것까지 이해하게 되버렸는지 모르겠지만, 45페이지의 두번째 컷은 절제된 색기를 추구하는 야오이팬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할 것으로 사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