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시랍시고 썼던 것들을 지금에 와서 보면, 움베르토 에코가 언젠가 에세이에서 밝힌 것처럼 때가 되면 조용히 뒷산으로 가 불구덩이 속에다 쳐넣어야 할 그런 것들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무슨 생각으로 쓴 건지 뻔히 보이는 것들, 극단으로 치닫는 이미지들과 자아과잉적 의미 부여, 되도 않는 심상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치기에도 불구하고 요즘 와서 다시 깨닫고 있는 것은 시쓰기의 즐거움이다. 언제부터 이 자뻑스러운 작업에 쾌감을 느끼며 임했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적어도 내가 그 시들을 쓸 때, 나는 글쓰기가 무척이나 즐거운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여전히 즐거운 일임을 요즘에 와서야 다시금 깨닫고 있는 중이다. 지하철 터널 안에서,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자전거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너며, 처음 와보는 낯선 숲길과 매번 운동화가 닳는데 지대한 공을 세우는 도서관으로 가는 길 도중에서, 내 머릿 속에선 글자들이 날아다니고 부숴지고 조합되며 자리잡아진다.

내가 시를 보는 것은 언어유희로서의 하이쿠를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하다. 말을 바꾸고 의미를 흔들고 보다 아름답고 추한 것들을 모색하면서 호흡에 장난질을 하는 것. 단순히 유희라고 치부하기엔, 그 의미가 남다르지만 동시에 그 유희가 주는 즐거움을 지워버리면 의의가 사라지는 이 놀이가 나에게 끊임없는 즐거움을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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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1 1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llonin 2005-12-22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 필요까지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