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임은경과 같은 동네 사람으로 두 번 정도 2미터 내의 거리에서 구경도 해봤고, 동시에 중학교 선배인 입장에서 애정을 가지고 이 글을 쓰는 바입니다-_-

임은경이 처음 티티엘과 함께 튀 나왔을 때를 생각해보면, 대단했죠. 티티엘과 임은경이라는 브랜드로 당시 에스케이텔레콤은 백만명이나 되는 가입자를 끌어모았으니까요. 그런데 과연 그 사실 하나로 임은경을 메이저급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당시 컨셉으로 들고 나왔던 티티엘의 이미지 자체가 스탠다드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박명천이 감독한 그 CF는 난해한 이미지와 과도한 생략, 블라인드 마케팅을 동원하여 적극적으로 컬트현상을 노리고 제작된 작품이었죠. 그런 강렬한 이미지의 대상 그 자체로 나왔다는 것부터가 일단 임은경의 이미지를 묶어버린 것이고, 동시에 소수의 지지에 국한되게 만든 결과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임은경의 그런 이미지를 그대로 타고 가려고 했던, 일단 시도 자체는 탁월했던 영화였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그 제목이 주는 미묘한 쾌감-메르헨, 성서적 신화가 뒤섞인 키치적 쾌감을 고스란히 전달해주는-에 동요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다만, 감독이 장선우였다는 게 문제였죠-_- 이 양반은 영화외적으로 하나의 현상을 불러 일으켜서 영화의 시의성을 바깥으로까지 확장시키는 놀라운 재주를 가진 반면, 영화 자체는 의도적인 것과 감독 스스로의 감각이 뒤섞인,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론 다소 부실한 모양새를 가진다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장선우 감독이 아니라 다른 이가 맡았다 하더라도, 당시의 충무로의 기술력으로 저 영화의 백그라운드에 포진한 이슈성 요소들이 불러 일으키는 아우라를 충족시킬 정도의 결과물은 내놓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장선우 감독 정도 되니까, 당시 꽤 여러 명을 파산시킬 수 있었던 무지막지한 제작비를 끌어모았을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누구나 알다시피 영화는 개판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의 거대한 실험이었다고 해도 거둔 성과는 빈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장선우 감독의 특기인 이슈 차원에서조차 말이지요. 류승완 감독이 한 말을 약간 차용해오자면 그 돈을 차라리 불우이웃돕기에 쓰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었을 겁니다.

암튼 임은경의 악몽이 시작된 이즈음에서부터 임은경은 보다 적극적으로 연기자로서의 탈바꿈을 시도합니다. [품행제로]는 소위 신비소녀의 이미지를 벗고 연기를 보여주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녀의 변화가 감지되는 동시에 [성냥팔이소녀의 재림] 촬영 중간에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성냥팔이소녀의 재림]의 바보 같은 완성도를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다는 반증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그녀의 행보는 철저하게 틴에이지 아이돌의 길을 따랐지요. 아무래도 백만명을 끌어모은 임은경의 과거를 보자면, 그리고 그에 맞는 성과를 거둘려면 그녀의 행보가 대중지향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영 아니올시다였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 백만명이, 당시 태동하던 핸드폰 사업과 그 젊은 수요층을 거의 전부 끌어가버린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백만명이란 수요는 핸드폰 수요가 전 계층으로 확장된 지금의 백만과는 다릅니다. 당시 백만명은 막 핸드폰 구입 및 이용에 적극적으로 달려들던 구매층,  동시에 티티엘 광고에 공명하는 젊은 세대들의 것이었습니다. 에스케이텔레콤에서 본격적으로 시도한 계층 구분 전략이 성공한 결과라고 해야겠죠. 그들은 특권층, 소수자라는 환상을 티티엘에게 돈을 바침으로써 구입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그 백만명이 임은경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그 백만명이 지지했던 것은 임은경이 아니라 그럴 듯한 이미지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그럼 이제 낙동강 오리알이 된 임은경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자의든 타의든 간에 연예계라는 정글에 들어와버렸고, 그녀가 과거에 갖고 있던 명예는 싸그리 다 물말아먹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불리는 건 배우 임은경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임은경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연기자로서의 아우라입니다. 일단 에러성 짙은 고갸루 스타일 화장술과 마케팅 전략을 고수하는 현 기획사는 뛰쳐 나오는 게 최우선이고.... 그 다음엔, 베스트극장이라든지, 인디영화라든지 같은, 보다 그녀의 안목을 소수에게나마 인정 받을 수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아니, 어떻게 임은경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여전히 시대를 티티엘 시대에 묶어두고 있는 열성적인 팬들이겠죠. 앞서 봤듯이 그녀는 컬트문화의 상징으로 대중문화계에 틈입해 들어온 캐릭터였습니다. 그렇다보니 이미지만으로 엄청난 상업적 성과를 거둔 과거와 연기를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현재의 그녀가 메워야 할 간극은 작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줍잖게 대중적인 것들을 찔러보는 것보단, 아예 소수자들의 영역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렇다고 티티엘과 같은 신비소녀역을 주구장창 끌고 가라는 소린 아니지요. 바보 같은 시트콤에 다수 출연하고 이것저것 일을 겪은 통에 더이상 기자회견장에서 수줍게 고개만 숙이고 있지 않게 된 덕분이라고 봐야겠지만, 그녀의 이미지에서 옛적의 신비소녀 이미지는 상당 부분 없어진지 오래입니다. 그렇다면, 그녀로선 마이너하면서도 자신이 가진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는 일을 잡는다고 해서 딱히 현재의 이미지에서 더 부서질 것이 있다곤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처럼 보입니다. [레인보우 로망스]도 뛰쳐나왔구요-_- 제가 보기엔 그렇게 하는 것이,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나영과 같은 길을 걷는 것입니다만, 가장 이상적인 도정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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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적긁적 2005-12-09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예인의 장래에 대한 탁월한 안목을 가진 내가 단언컨대, 임은경은 그 매부리코를 고치지 않는한 성공할 수 없다. 그런데 그녀의 매부리코는 세인들에게 너무나 강렬하게 각인된 나머지 쉽사리 고칠 수도 없다는 딜레마가 문제.

hallonin 2005-12-10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 코는 참... 언제부터 그리 눈에 띈 건지-_- 뭐 연기로 메워야지 그런 간극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