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날로그맨]은 궁상 맞은 만화입니다. 그리고 그 궁상맞음을 굳이 숨기려 들지 않습니다. 누리코리아에 연재되다가 단행본으로 나오게 된 이 작품은 만화가인 주인공이 돈이 다 떨어져서 집세도 못 내고, 해서 결국은 노가다판에까지 나가서 막장일을 하며 겪게 되는 인간군상들의 모습과 스스로의 궁상맞은 감수성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욕하고 도망가고 화내고 다시 반성하는 이 길죽한 이야기의 흐름은 매끈하게 정돈되어 있다곤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크게 자극적이거나, 엄청나게 웃기거나 그런 것도 없죠. 하지만 여기서 보여지는 미학이 거친 리얼리즘의 미덕을 고수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서울이라는 차가운 도시 속에서 꿈과 생계라는 두 길을 고수하는 고난한 삶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로서 말이죠.
먹과 펜만을 사용하는 작가의 두텁고 울퉁불퉁한 선이 만들어내는 사연 많은 세상과 인물들은 마츠모토 타이요와 로버트 크럼을 연상케 하며 그래서 그들의 만화에서처럼 그래피티적 감각과 미묘한 리얼리티를 동시에 뿜어냅니다. 이 만화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위태롭지만 어떻게든 살아날 구멍은 마련되어 있는, 살아가기엔 벅차지만 자살할 생각은 없기에 빈궁하면서도 절절할 수밖에 없는 삶의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살아날 구멍'이란 것이 때로는 사람을 얼마나 비참하게, 추레하게 만들기도 하는지요. '살아날 구멍'은 때론 현실의 인자함이 아니라 강요된 잔인한 선택일 때가 있습니다. 과연 이 세상에서, 서울이란 비대한 도시 구석에서 하층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화가-기술자-예술가라는 얄팍한 자존심과 꿈을 안은 채, 굶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최소한의 생계 지탱에의 본능을 가진 하층민-지은이의 근심은 냉소적인 독백과 관찰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냉랭하게 보이는 풍자 속에서 역설적으로 이 이야기의 온기, 차가운 서울시 바닥에 자리한 삶에의 추구와 콘크리트가 아닌 인간의 이야기가 제 모습을 슬그머니 내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만화에 애착이 가는 이유 중 하나는 저도 지난 겨울에 노가다판을 전전했던 기억이 나서-_- 아무튼 그 바닥으로 내려가면 별의 별 사람들 다 있습니다. 추위와 시멘트 가루로 부르튼 찢어진 장갑을 낀 손으로 석고판을 들고 평당 수백만원 짜리 바닥에 깔린 최고급 대리석 타일을 밟고 걸어가서 방음벽을 세워야 하는 곳. 그 간극을 어느 정도로 가늠하느냐 만큼이 바로 세상을 얼마나 능글맞게 살아갈 수 있느냐의 기준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