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1.17 23:05
아침, 진눈개비가 질척질척 땅바닥을 흙탕으로 만들어놓고 있는 걸 확인한 나는 쾌재를 불렀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인천스러운' 것이 아닐런지. 지난 번과는 달리 저녁께 즈음의 인천을 확인하기로 결심한 나는 진눈개비가 인천에 도착할 때 때까지 계속 내려주기를 기대하면서 가면서 들을 시디와 책들을 정리했다.
1호선을 타는 행위는 오래된 기억 속에 남아있는 길창덕의 [꺼벙이]에서 도시락 때문에 내려야 할 역에서 못 내리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했던 꺼벙이가 생각나게 해준다. 무의식중에 떠오른 그 이야기는 근본적으론 경제 이데올로기였던 19세기 좌파, 우파와 아나키스트들 사이에 있었던 격렬한 갈림의 소용돌이와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할 때 처음으로 전사에 등장했던 전격전의 개념을 그대로 표상하는 것 같아 길창덕 선생의 역사에 대한 풍부한 고찰을 다시금 느낄 수 있게 해줬던 인상 깊은 에피소드였다. 참고로 전격전의 개념은 영국에서 먼저 개발되었지만 그 유용성을 인정해 준 것은 독일이었다.
128메가 램을 사기 위해서 잠시 백운역에서 머물러야 했다. 백운!(白雲) 참으로 참으로 인천스러운 이름이지 않은가. 나는 그 이름이 주는 촌스러움과 시류에 뒷걸음질하는 반시대성에 전율하면서 내가 어느새 인천이라고 하는 거대한 자장권에 들어와 있음을 뼈저리게 체감해야했다. 게다가 램을 팔러 나온 사람조차 어찌 그리.... 인천스러웠는지.
인천역에 도착한 것은 5시가 다 되어서였다. 지난 번에 왔을 때 여차저차해서 가지 못 한 차이나타운으로 들어가서 어렸을 때 자주 먹었던 월병을 먹었다. 4개에 3000원. 앙금과 건과류가 월병 특유의 밀도 높은 밀가루와 섞여서 입 안을 메우는 느낌은 참으로.... 별로였다. 다 자라고 난 뒤엔 입맛도 바뀌는 듯 월병은 더이상 내 입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같은 가게에서 강정과 흡사한 튀김 과자를 한 뭉텅이 샀다. 그리고 저녁을 먹기 위해서 가장 싸게 가격이 책정된 음식점을 찾아 헤맸다.
차이나타운은 인천에서 가장 인천스럽지 않은 동네였다. 그곳엔 중국인은 별로 보이지도 않았고 한국인 또한 별로 보이지 않았다. 붉은색으로 곱게 포장된 길은 보는 이로 하여금 독특한 거부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는 짬뽕을 먹었고 가격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많은 양이 들어있었던 그 음식은 또, 가격에 비해서 고추 기름을 너무 많이 쓴 듯 했다. 중국 본토의 짬뽕은 해물과 면을 기름에 넣고 볶은 것이라 들었는데.... 중국 가요가 흘러나오고 종업원들은 차이나 드레스를 입고 있긴 했지만 그곳은 중국이 아니었다. 그곳은 인천이고 차이나타운이었다. 하지만 서비스로 나온 헤이즐넛 커피의 맛은 좋았다.
땅은 과연 내 기대대로 눈이 막 녹기 시작한 탓에 끈적거리고 질척였다. 나는 월미도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역에서 월미도까지 걸어가는데는 40분 정도 걸렸다. 가는 동안 산업화 시대의 유산인 커다란 공장들, 하나 같이 번호판이 붙어 있지 않은 대규모의 자동차 군단, 나른한 기운이 감도는 겨울밤의 부둣가, 개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것 같은 외국 선박들, 진짜 개들, 지하를 지배하는 축축한 세균의 왕, 어둠 속의 누런 암살자, 카섹스 커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월미도는 요란스러웠다. 유난히 반짝거리는 놀이 기구들과 호객 행위 금지 팻말 아래서 당당하게 호객 행위를 하는 식당들, 인천의 기운을 제대로 알아채지 못하고 당황하는 소년소녀들, 바이브레이션 건슈팅 게임의 고전인 터미네이터2(1992년작이다. 무지하게 난이도가 높다.)를 볼 수 있었던 오락실, 텅 빈 거리와 하늘처럼 새까만 바닷가, 나를 따라다니던 할아버지.... 인천은 그런 곳이었다. 나는 비슷한 풍경을 오이도에서도 본 적이 있었다. 다만 그곳엔 낚시꾼들이 있었다. 강태공.... 부러진 낚시 바늘로 세월을 낚고 있던 중국의 거물.... 그 망할 할아범은 분명 법가의 후손이었겠지? 나는 내가 읽고 있는 책이 아나키즘의 역사임이 다행스러웠다.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은 사물을 객체화시키는 작업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가지는 태도에선 분명 아나키즘에 대한 매혹을 읽어낼 수 있지만 그것은 사서를 기록함에 있어서의 최소한의 매혹이다. 애정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돌아오는 길엔 동인천의 골목들을 누비고 다녔다. 가는 골목마다 세숫대야 냉면집들이 가득했다. 세상에, 갈갈이 박준형이 사진에 찍혀서 냉면집을 홍보하고 있었다! 그리고 냉면의 명인이라는 사람이 있는 식당도 있었다. 가격도 쌌다. 3500원. 겨울이라서 그런 걸까? 난 서울 중구에 있는 냉면집이 생각났다. 그 집은 회냉면이 기가 막히지. 정신을 차려보니 난 서울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과연, 인천이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저명한 인천매니아인 김 모씨의 말에 따르면 인천에는 전라도 사람이 많이 산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한나라당 서상덕이가 국회의원을 맡고 있는 거지?(서상목인가? 강삼덕인가? 최병팔인가? 너의 이름은 어디에 있나.) 나는 이내 내 생각이 민중의 의식을 무시하는 우익 아나키즘의 전형적인 사고관이란 걸 깨닫고 자아비판을 했다. 또한 그것은 근본적으로는 나자신도 국가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소규모 내셔널리즘의 전형적인 먹잇감이라는 걸 깨닫게 했다. 젠장, 그래도 민중은 바보야. 난 어쩔 수 없이 우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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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란 도시를 발견하게 된 것은, [고양이를 부탁해] 덕분이었다. 모두가 감탄했던 것처럼, 그 영화는 오래되고 내내 바람이 불고 있었으며 풍화작용에 의해 점점 사그라드는 인천의 풍광들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파이란]을 보면서 묵혀뒀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난 인천이 좋다. 그 오래되고 삭막하며 쓸쓸하게 삭혀져 가는 풍경들이 좋다. 가끔씩 그것은 비정하고 잔인하게도 비춰진다. 하지만 그보다는, 단단했지만 이제는 시간의 무게에 짓눌려 차차 부서져가는 완고한 껍질 속에 들어있는, 어떻게든 살아가야 했기에 궁상 맞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화경으로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