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의 껌
긴
갯벌에서 주운 적이 있는
조개껍질 같은 가슴으로 재봉틀 앞에 앉은 소녀
땀에 젖네
출렁이는 파도를 연주하였으므로 미역줄기처럼 가슴이 축축하네
그 연주의 볼륨을 높이고 싶은 나른한 오후
질겅질겅 씹던 껌의 반죽이 잘되어 통통한 자지가 되었네
소녀의 입에서 말처럼 욕이 쉽게 튀어나오는 건
그 자지를 너무 세게 물었기 때문에....그렇다네
이제 박아줄까,
둘둘 말린 붉은 천이 풀리고 그 바닷가 모래 알갱이들이 쏟아지네
붉은 천으로 만든 옷의 안주머니는
탁탁 털어서 입을 것
주머니엔 못된 아이의 선인장이 자라고 있을 줄.....몰라
연주의 중간 중간에 파도의 화음이 들리고, 전화를 받으러 소녀가 뛰어나가고
일터를 자주 옮기는 똥파리 분대, 밥알을 남기고
찢어진 빵봉지를 지나서
언 생수통마냥 묵묵히 있던 소녀의 등에 보청기처럼 콩 달라붙네
소녀의 땀냄새, 분냄새,
고향 바닷가냄새가 나는 좋아.....파리는, 지겹게 달라붙네
너처럼 이쁘고 멋진 연주자를 본 적이 없구나
흰 목덜미를 한번 잡아보고 싶은 늙은이, 슬리퍼를 질질 끌고 와서
긴 악보를 놓고가네
슬픔은 슬픔으로 기워야 하는 이 연주의 곡명이 뭐지,
악보를 보기 위해 소녀가 연주를 멈췄을 때
파리는 이제 보청기를 뽑고, 창밖으로 멀리 날아가고
입속의 껌은 더이상 발기하지 않았다네, 이 자지를 어디에 뱉을까
(알쏭달쏭)-(소녀)-(백과사전). 노란색 직사각형 몇 개가 겹쳐져 있을 뿐, 따로 장식이 없는 창비시선집의 단조로운 표지디자인은 역설적으로 이기인의 첫 시집에 붙여진 이 묘하게 복잡다단한 제목이 만들어내는 아우라를 증폭시킵니다. 다르게 보자면 이 제목은 무척이나 팝적입니다. 이 제목에선 저렇게 분절된 단위로 의미적 해독을 치러낸다 해도 그런 해독의 결과물까지 포함시켜버릴 수 있는 달콤함이 느껴집니다. 흡사 시부야케 프렌치팝 계열의 노래 제목처럼, 여기선 달콤함과 함께, 색다름, 몽환적 발랄함, 적절한 우울함이 동시에 어우러지는 양산형 보사노바의 리듬과도 같은 감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상,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지는 발랄일탈스러울지도 모를 감각에 대한 기대감이 이 시집을 선택하게 만든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시집은 그 첫 시작에서부터 나에게 즐거운 배신감을 안겨줬습니다. 제목이 독자에게 전해주는 자장, 뻔한 표현으로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적이라고 칭할 수 있는 익숙한 감각은 역설적으로 작품들 안에선 말끔하게 거세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인용이나 패러디, 문자놀음, 아니면 엽기를 목적으로 하는 일탈적인 감각의 묘사들엔 관심이 없습니다. 도리어 알쏭달쏭한 소녀들의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시어들은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건조하지도 않게, 그러나 단단하게 문장들을 짜 나갑니다. 재밌는 건 그 완결된 문장이 보여주는 완고함에도 불구하고 <알쏭달쏭 소녀 백과사전>의 흐름은 흡사 달아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는 점입니다. 개개가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세심하게 고려된 단단한 문장들이지만 문장이 가는 길은 분명하게 보일 듯 하면서도 의식적으로 끊임없이 흩어지고 있습니다. 한 편의 시를 구조하는 흐름은 뭉쳐지지 않는 심상의 분해를 추구하며 그런 구조적 바탕 위에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과 성적인 도발들이 느슨하고 평온한 풍경을 그려내는 달콤한 은유적 시어들과 섞입니다. 그래서 시 속에서 소녀는 쇳가루를 씹어야 하고 제비는 흰 농약과 같은 문장에 놓이게 됩니다. 신기한 건 이 혼돈이 난삽해 보이질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시가 담고 있는 잔인한 진실들에 대한 아련한 시선 탓인지도 모릅니다.
결국 알쏭달쏭한 소녀들의 이야기는 현실에 기대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진하게. 시는 ㅎ방직공장의 소녀들과 죄수, 혹은 무력한 화자 나의 독백을 통해 무척이나 폭력적이고 가혹한 현실을 음울하지만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이 노래들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프렌치팝의 달콤함 따윈 더 이상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직 야만스러운 현실이 혼돈이라는 탈을 쓰고선 능청스러운 은유를 빌어 나타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독자를 그토록 현혹시키는 제목은 속임수, 혹은 일종의 아우라입니다. 이 시집은 그렇게, 잔인한 현실에 대한 밀도 높은 반추로서의 독 섞인 꿀과도 같은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해설에서 인용된 전략적으로 글쓰기라는 작가의 말이 다시금 떠오릅니다. 80년대 중반에서부터 90년대 초반에까지 이어졌던 수많은 시실험들과 그와 동반하여 현실, 대중과 유리되어 가는 시들에 대해 가해졌던 수많은 비판들. 이기인의 시가 기대되는 건 그가 그런 일련의 문제들을 요령있게 아우르는 동시에 현학과 자기애적 함정들을 능숙하게(혹은 뻔뻔스럽게?)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쾌하고 섬세하며 도발적이면서도 신중한 이 알쏭달쏭한 시들이 만들어내는 울림은 우리 시의 미래가 가질 가능성의 한 축을 가늠하게끔 만듭니다. 그것이 이 달콤쌉싸름한 유희가 그저 치기나 과잉스러운 에고이즘의 산물로 보이지만은 않는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