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irugi.egloos.com/1195062
올해 초 즈음에 각 인터넷의 만화 및 게임 사이트, 그리고 [월희] 팬사이트에선 일제히 흥분된 어조로 나스 키노코의 [공의 경계] 국내판이 발간된다는 정보가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매니악한 소비층을 어느 정도 확보한 라이트 노블이란 장르에서 당시까지 가장 폭발력을 갖추고 있을 거라고 평가받던 [공의 경계]는 예약한정판과 일반판으로 나뉘어 판매가 시작됐고 그 결과는 관계자들을 충분히 흡족하게 만들 정도의 대성공이었죠(당시 1000부만 찍어냈던 [공의 경계] 한정판의 가격은 현재 옥션에서 8~9만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출판사가, NT노벨을 펴내고 있는 대원이 아니라 학산이라는 점이 의외였습니다. 뭐, 두 회사가 모회사라는 점만 봐선 그럭저럭 이해가 가는 일이기도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공의 경계] 정도의 대어를 그냥 넘겨주다니요. 이제 와 생각해보면 학산으로선 자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확고하게 심어줄 요량이기도 했습니다만. 잘 생각해보면 [공의 경계] 일본판 및 나스 키노코의 소속은 고단샤. 그러니까, 이때 이미 얘기가 되어 있던 것이죠.
문예잡지로는 일본내 최대 발행 부수를 발행하고 있는 고단샤의 라이트노블 전문 잡지 파우스트가 대만판에 이어 국내판 발간이 결정됐다고 합니다. 출판사는 학산. 그러니까 라이트노블에 있어서 대원은 카도카와 쇼텐 것을, 학산은 고단샤 것을 맡기로 한 모양입니다. 형식은 일본내 라이트노블과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을 혼합하는 현지화 전략을 쓸 듯합니다.
관련 포스트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625527
이것이 가뜩이나 좁은 문학시장, 그중에서도 매니악한 팬덤만이 존재하고 있는 우리네 환타지문학 장르를 확장시킬지, 아니면 공멸의 장으로 만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일단 환타지문학조차도 아직 제대로 정착이 안 된 상태에서 저렇게 본격적인 잡지를 발간한다고 하는 것은, 확실히 모험이라고밖엔 보이질 않는군요. 일단 [공의 경계]를 위시한 나스 키노코의 팬들의 충성도를 보면, 그 정도만큼은 팔리겠지 하는 것이 출판사쪽의 생각인 듯 합니다만. 역시 일본내 제 1의 출판사다운 베짱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_- 아니면 학산의 충실한 스펀지 역할?-_- 그러고보면 출판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게 우리나라 업계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강도하씨가 예전에 지적했었죠.
이게 또 위험해보이는 것은 우리나라 독자들의 장르 편식이 조각조각 구분되어 있는 상태 탓입니다. 라이트노블이 장르문학의 성과들을 그대로 써먹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시장에서 아서 클라크나 알프레드 베스터를 읽는 사람들과 [부기팝] 시리즈를 위시한 라이트노블을 읽는 독자층은 거의 겹쳐지질 않습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손 치더라도,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라이트노블 독자층은 대여점용 먼치킨 환타지문학 독자층하고도 겹쳐지지 않습니다. 이게 웃기는 일인 게, 우리나라에서 먼치킨 환타지 문학이라고 불리우는 것의 본령은 일본으로 따지면 라이트노블에서였거든요. 그런데 수입산인 라이트노블은 독자적인 라이트노블이라는 장르로 불리고, 환타지문학들은 또 따로 환타지문학이라고 불리우는 게 우리네의 현실이죠. 이것은 라이트노블의 대중화가 실패했다는 반증으로 동시에 대여점을 중심으로 구축된 환타지문학, 결국 뿌리는 같은 시장에 라이트노블이 틈입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일단 초기의 NT노벨이 판매용 사업에 주력한 나머지 대여점 시장을 놓친 결과가 '일본작가의 환타지소설'이라는 정의로 라이트노블을 묶어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기존의 인터넷 작가 출신들이 잡고 있는 대여점과의 차별점을 높임과 동시에 독자의 직접 구매를 통해 이윤을 높인다는 전략은 이해가 가지만, 결국 국내 환타지소설 독자의 한계를 간과하고 실패한 셈이지요. 카도노 코우헤이라든지 아키타 요시노부와 같은 작가들의 네임밸류를 너무 과대평가했던 것은 아닌지도 생각됩니다. 그런 반면 대여점을 지배한 출판사의 입김은 인터넷 조회수를 무기로 신진작가라 해도 그대로 대여점에 집어넣을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 상태였죠. 이것이 라이트노블과 국내 환타지 소설의 간극이 된 겁니다. 그래서 한국의 라이트노블은 대여가 아니라 판매로 더 잘 읽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초창기의 NT노벨의 목적이 팔리는 책이었던 만큼(지금은 폐기한 전략이긴 합니다만) 엉뚱하지만 초기의 그 전략은 먹혀 들어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문제는 판매량이지만요. 거기에 SF-환타지 문학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수요의 편협함이 더해진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 존재하는 라이트노블 팬덤과 정통 SF-환타지문학 팬덤 사이의 벽은 일본문학계에서 라이트노블이 받는 푸대접의 딜레마와는 다르게 미묘한 부분입니다만, 제 생각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라이트노블이 살아남으려면 저 '알프레드 베스터를 읽는' 독자층도 불러 들일만한 여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비슷한 문화의 향유자로써 공존하고 있을 바엔 게토 안의 이전투구를 벌이기보단 차라리 한바탕으로 묶어버리는 게 더 승산이 있을 법 하다고나 할까요. 라이트노블의 부진에는 좀 있어보이는, 제대로 된 라이트노블의 출현을 열망한 독자들의 수요를 만족 못 시킨 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공의 경계]의 성공을 보며 다시 한 번 느끼게 됐습니다. 물론 확실한 판매루트로는 [풀 메탈 패닉]이라든지 [마술사 오펜]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작품들은 확실히 팔리긴 하지만, 꾸준한 고착만을 지속시키고 있습니다.
일단 문예잡지라는 형식으로 나온다는 것 자체가 비록 형태만이지만 어쨌든 우리나라에 있는 기존의 문학잡지들과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발전하여 SF-환타지 팬덤까지 이르는 소비층이 명확하고 광범위한 반면 우리는 아직 그렇질 못하니까요. 물론 하드한 독자들 잡으려면 뭐하러 '라이트'노블을 내느냐 하겠지만 일전에 뉴타입에 연재됐던 오오츠카 에이지의 [다중인격탐정 사이코] 소설판이나, [부기팝] 같은 것들은 그런 '하드'한 독자들의 감수성을 자극할만한 감각과 뒷심이 충분히 있었거든요. 일단 선정우씨의 말에 따르자면 와타야 리사나 히라노 게이치로와 비교해도 딸리질 않는다고 하니.... 그만한 작품이라면 손을 뻗어 집어들 이유가 충분히 되는 거겠지요. 요는 퀄리티 있는 라이트노블의 발간과 그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의 필요성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지금까지 봤던 라이트노블들만 생각해선 어째.... 기대했던 [부기팝]마저도 번역 탓인지 저자 탓인지 모르겠지만 문장이나 흐름에서 영 아니어서. 좀 믿기지는 않습니다만-_-
주로 군소출판사들이 차지한 먼치킨 환타지 문학 시장도 잡지 못한 라이트노블이 원고료 및 발행비를 만족시킬 정도의 충성도 높은 독자를 확보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어보이는 상태에서, 오직 라이트노블만 다룬 잡지를 내놓는다는 것은 앞으로의 시장을 향한 대담한 승부수라고 봐야겠죠. 전통적으로 있던 문학잡지들도 발간방식을 바꾸거나 휴간하는 근간에 (나름대로 형식만으론 정통인)문예잡지가, 그것도 대중소설만을 다루게 될 잡지가 탄생한다는 것이 반가운 소식이긴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정착된 문예잡지가 될지, 아니면 만화-애니메이션 소비층의 때에 따르는 매니악한 소비품이 될지는 두고봐야겠죠. 일단은 딱 뉴타입 정도의 포지션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