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린 M의 전설
자크 앙릭 지음, 김병욱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카트린M의 전설]을 읽음에 있어서 이 작가의 아내가 쓴 [카트린M의 성생활]을 떠올리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보다 분명하게 밝히자면 이 두 권의 책은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쌍둥이 거울과 같은 관계다. 비록 [카트린M의 성생활]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 두 사람이 순전히 세금을 덜 내기 위해서 결혼했다는 것도 먼저 기억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 사실은 이 두 권이 가지고 있는 미묘한 관계를 역설적으로 돋보이게 만든다.

책을 열면 목차 바로 다음장에는 베란다에 서 있는 젊은 날의, 20대 때의 카트린 밀레의 전신 누드 사진이 찍혀져 있다. 바짝 마르고 성깔 고약할 것 같은 전위예술 잡지의 편집장을 떠올리는 이들에게 충분한 배신감을 안겨줄 정도로 그녀는 아름답다. 그 외모는 취향에 따라서라도 제법 많은 이들에게 성적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뿐이다. 적어도 보편적인-혹은 흔한-성적 충동의 제물이 될 가능성은, 그 한 장이 마지막이다. 나머지, 뒤에 실려있는 30여 장의 사진들은 그녀가 이제 불혹의 나이로 들어가는 시점에 찍은 사진들부터 보여지기 시작한다. 보편적인 현대 인류 사회에선 움베르토 움베르토 같은 불운한 청년들의 인구수 퍼센티지가 현저하게 낮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배치다. 그가 판단하기에 그녀는 읽혀져야 할 전설이다. 그래서 그가 그녀를 찍는 행위는 그리스 조각상을 새기는 행위와도 같다. 그녀에게 나이는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그의 시선으로 볼 때 그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그녀는 바뀌지 않은 오직 그녀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의 사진으로 영원을 증명하려고 한다. 우리는 그녀가 어떤 성적 모험을 치뤘는지를 안다. 어떻게 자신을 드러냈는지도 안다. 그래서 헤어누드로 당당하게 찍혀 있는 이 모든 사진들에서 그녀는 한 순간도 주춤거리지 않는다. 기차역에서, 묘지에서, 능욕 당하는 죄인 꼴로 사진을 찍힐 때조차. 그녀는 모멸을 모조리 쾌락으로 치환시킨 여자다.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그녀를 감당하지 못했겠는가.

책은 우선 카트린 밀레의 사진이 놓여지고 그 뒤로 자크 앙릭의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의 글은 그녀를 찍은 사진기의 기종과 작동방식에서부터 자신의 저작들, 그리고 사드와 바타유(일종의 전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에서부터 조이스, 바르트, 프루스트, 쿠르베의 그림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한다. 그러나 언제나 되돌아오게 되는 건 카트린 밀레의 몸이다.

여기서 [카트린M의 성생활]을 기대하진 말지어다. 자크 앙릭의 현학적인 공상의 유희는 이 책에 대한 독법을 순전히 제목 때문에 책을 구한 이들의 독후감에서 실망감을 토로하게 만들었던 바타유의 [에로티즘]과 같은 영역으로 위치시켜 놓고 있다. 카트린 밀레는 [카트린M의 성생활]을 마치 자신의 몸을 쓰듯이 풀어놨다. 그래서 그 자극적인 책의 문장은 쉽고 말초적이었으며 분명한 센세이셔널리즘적 사례-흥미로운 사례들-가 제시되고 동시에 '더럽게' 해부적이었다. [카트린M의 전설]은 그 반대편이다. 이미 카트린 밀레의 육체가 완전히 벗겨져서, 가끔씩 벌려지기도 하면서 박혀있는 이 책이 다시금 그녀의 모험에 대해서 재탕하는 것은 지루한 일이리라. 이 사진 에세이들은 그녀가 치룬 전설적인 센세이셔널리즘적 이벤트가 아니라 그녀에 대한 감탄과 그로 자극 받아 이루어지는 사유에 모든 것을 바친다. 그래서 이것은 남자가 쓴 책이며 그녀와 몸을 섞은 이가 쓴 책이라는 걸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그것이 일종의 겉멋 든 난 체인지, 아니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쓸 때의 괴테와 같은 심성의 발로인지는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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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1 1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llonin 2005-12-02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