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정부 시대를 관통하는 대표적인 정치적, 군사적 실패였던 소말리아 사태와 아이디드 납치 작전의 실패를 방임주의적인 보수적 시각으로 그려낸 이 논픽션이 보여주는 디테일함은 하룻밤 동안 미군이 겪어야 했던 악몽 같은 현장을 현실 그 자체로 치환해 보이는데 철저하게 몰두한다. 덕분에 활자로도 영상 다큐멘터리적 감각을 자아내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이 원작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제리 브룩하이머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한 꺼리였으리라. 그런데다 기가 막히게도 9.11까지 터져버렸다. 미국내의 보수적 흐름들은 미국외에서 벌어질 군사작전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필요로 했고 국방부의 홍보자금은 자연스럽게 헐리웃 산업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브룩하이머의 제작력과 국방부의 아낌없는 원조, 거기에 스타일리스트 리들리 스콧까지 가세한 이 프로젝트는 이완 맥그리거와 조시 하트넷, 에릭 바나, 올랜도 블룸과 같은 A급 배우들까지 끌여들여서 완성됐다. 덕분에 이 영화가 가지는 선전성은 안 봐도 뻔한 지경에 이를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지점이 상당히 미묘하다.

리들리 스콧이 여기서 보여주는 시가전의 퀄리티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거친 리얼리티를 느끼게 만든다. 그런데 그 리얼리티는 영화가 가진 무기질적 감각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다. 영화는 전투 현장에 바로 카메라를 들이댄 것처럼 삭막한 다큐멘터리의 기조를 가지고 있다. 전투현장에 대한 집중적인 묘사와 시간할애는 두시간 20여분에 이르는 영화를 숨이 턱턱 막히게 만들고 있다. 머리를 박박 깎은 톱스타들은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가 힘들다. 그들은 하나같이 사방에서 날아드는 로켓탄과 기관총탄을 피해 도망치고 응사하기에 바쁘다. 그래서 객체화된 주인공들을 대신하여 영화를 지배하는 것은 철저하게 현장감을 추구하는 격렬한 이미지, 그 자체다.

물론 그렇다고 이 영화가 드라마를 완전히 없애버린 것은 아니다. 이 영화가 단 한 명의 미군이라도 구해야 한다는, 우리가 미국에게 가지고 있는 오래된 속설의 증명을 보여주려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이 영화의 진정한 반전, 그들 미군이 스무 명 가량이 죽는 동안 소말리아인은 1000여명이 죽어나갔다는 영화 마지막의 설명에 의해 무력화된다. 전쟁영화들이 양념처럼 넣는 전쟁 자체에 대한 회의감 또한 이 영화에서 진하게 느껴지거니와 그것이 이젠 일종의 공식이 되었다는 냉소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 비웃는 것처럼 삽입된 자막을 보고도 이 영화가 팍스 아메리카나 찬양기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런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여기서 리들리 스콧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나름의 예상을 해 볼 수가 있다. 그는 이라크 점령 시대에 헐리웃에서 거의 유일하게 부시정부를 향해 대놓고 삿대질을 한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을 만든 감독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나 영화 속에서나 결국 실패한 아이디드 납치 작전 이후 미국은 국내여론에 밀려 소말리아에서 손을 뗀다. 그러니 아프간 침공에 이어 이라크 전쟁을 준비하던 도널드 럼스펠드와 딕 체니가 이 영화를 보고 격찬을 했다는 것은 그들이 부시와 더불어 제법 혼돈스러운 정신세계를 갖추고 있음을 우회해서 고백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긴 소말리아에선 이라크 만큼 석유가 나오질 않으니까.

하지만 [블랙 호크 다운]에서 드러나는 기조에는 마냥 반전정신과 진보적 성향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주춤거림이 보이는 지점이 있다. 이것은 리들리 스콧이 국방부의 도움을 받아 이 영화를 완성했다는 그 부분에서 확인이 가능하며 그가 꾸준하게 가지고 있는 비주얼리스트로서의 욕구와 지향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게 만드는 사실이다. 결국 리들리 스콧이 흙빛 가득한 인상적인 비주얼로 전쟁영화의 새로운 경지를 창조해내는 데에는 기관총과 로켓탄과 죽음, 그리고 국가주의적 테이스트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은 십자군전쟁을 재현하여 비웃기 위해선 웬간한 국가사업 예산급을 동원해야 하는 헐리웃에서의 메이저 감독이라는 위치의 딜레마 그 자체이기도 할 것이다.



한스 짐머가 맡은 또하나의 걸작 사운드트랙인 이 앨범에서 영화의 스코어들은 중동-아프리칸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가 수반되는 에스닉 사운드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 거기에 전쟁영화 다운 선 굵은 일렉 기조의 음악들을 첨가, 혼합하는 정석적인 양상들을 간간이 보여주고 있으며 곡배치적으론 그의 또다른 걸작인 [미션 임파서블2] 스코어 사운드트랙이 자꾸 생각나게 만든다. 하나같이 보통 이상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곡들이란 점에선 역시 한스 짐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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