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리비안의 해적들]로 헐리웃 제작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중년 아이돌이 되기 전의 조니 뎁은 팀 버튼이 그를 데리고 영화를 찍을 때마다 스튜디오와 대판 싸울 것을 각오해야 했던 저주받은 이들의 왕자였다. 자산보유량에 비추어 지나치게 저평가되었다는 그의 가치가 드러난 영화는 수없이 많았지만, 이제야 보게 된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도 그 자리에 올려야 할 듯 싶다.
처음 이 영화의 존재에 대해 안 것은 1998년 7월의 키노에서였다. 당시에 무려 [고질라]와 박스오피스의 자웅을 겨룰지도 모른다는 수사가 붙어있던 이 영화는 그 이후 당최 소식이 없었고, 당연히 우리나라에선 제대로 소개조차 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무려 '크라이테리온'의 딱지를 달고 DVD로 나와있었다. 2003년.
곤조 저널리즘의 창시자 헌터 톰슨이 1971년에 발표한 원작을 영화화 한 이 작품에서 조니 뎁은 대머리 저널리스트 라울 듀크로, 베니치오 델 토로는 배불뚝이 변호사 닥터 곤조가 되어 히피즘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는 시대의 악몽을 그려낸다. 온갖 종류의 마약을 가방에 싣고 다니며 영화 내내 약에 절어서 휘청거리고 있는 이 두 인물은 격렬했던 한 시대가 끝난 다음에 겪어야 하는 진한 현기증이 섞인 보편적 후유증을 영화 속에서 그대로 구현한다. 환락과 아메리칸 드림의 도시 라스베가스는 먼지와 네온으로 뒤덮여있다. 그들은 미친듯이 돈을 쓰고 쉴새없이 약을 빨아들이며 계속해서 비틀거리고 가리지 않고 구토를 한다. 싸이키델릭락이 뒤틀리고 변조되서 울려퍼지는 가운데 기이한 광기에 사로잡힌 두 인물은 독백과 역할극과 환상을 통해 공포와 혐오가 어우러진 총체적인 혼돈의 풍경들을 구축해낸다.
그들은 사실 갈 곳도 없고, 쉴 곳도 사라진 잃어버린 이들이다. 세상을 바꾸리라는 환상 속에서 어느새 아무 것도 없는 나락으로 굴러 떨어진 이들의 박탈감에 대한 망각은 오직 그때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약물의 효과에 의해서나 지탱될 따름이다. 울기 보다는 욕하기를 선택한 이들은 그래서 더 처절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