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에 고딕로망의 현대적 대가, 광막한 지옥과 어둠의 창시자이자 아이스크림 중독자였던 러브크래프트의 단편집을 읽다가 생체시계의 유혹에 빠져 깜빡 잠에 빠져 있던 차였다. 구글과의 사운을 건 혈투를 벌이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사 제작의 메신저가 팡팡하고 울려대는 익숙한 소리가 문어괴물이 꿈틀대는 꿈속에서 비몽사몽하고 있던 중에 들려와서 겨우 몸을 일으켜 보니, 전부터 알고 지내던 목소리 좋은 늙은 소녀가 말을 걸어놓고 있었다. 그래 뭔 일이냐. 하니, 이 여자가 사랑에 빠진 거 같댄다. 이런 썅썅, 신성한 노동의 시작일인 월요일로 넘어간 이 시점에, 공복에 위산이 쏟아져 나오는 위험한 시간 새벽 2시에 누구 염장 지를 일 있냐! 라고 외치는 속마음을 감추고 그녀에게 친절하게 물어봤다. 누구니 그게?
"여자야."
여자! 아, 우리가 안지 어언 2년... 째던가 3년째던가. 암튼 우리가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느 해의 추석이었지. 왜냐면 그때 우린 툴에 대한 얘길 하면서 서로 친해진 거였거든.... 그때 툴은 여느 해처럼 대보름 파티를 기획하고 있을 때였으니 이 기억은 정확한 거겠지. 그 기간 동안 많고 무수한 일들이 있었고.... 뭐 그러던 통에 드디어 사랑에 빠진 늙은 소녀가 한다는 말이, 여자랑! 젠장, 레즈랑 사귈 바엔 차라리 나랑 사겨!
...라고 말한 건덕지는 전혀 없다-_- 돈도 없고.... 감당도 못하겠고.... 그러고보니 상대인 여자가 레즈라는 보장도 없군.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다. 레즈도 있다. 그렇게 결론이 나자 나는 금방 공감하고 납득한 다음 다시 아랍의 미친 광인이 쓴 무시무시한 지옥 예언서의 제목만이 줄기차게 언급되는 소설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예전에 얘가 여자랑도 사겼던 적이 있는 거 같은데-_-
'에이, 그건 계약연애였잖니.'(기억 속 정보)
뭐 사람 맘이란 게 어떻게 흘러갈지 모를 일이니까. 그런데 이번 건이 놀라웠던 것은 그 평소엔 볼 수 없었던 호들갑에, 이 아낙의 입에서 무려 '사랑'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는 것이지.... 그런 거 모르겠다며!
아무튼 축하해요.
....서로 안지 하루 됐다고?-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