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 헤븐 Ultra Heaven 2
코이케 게이치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윌리엄 버로우즈와 [클락웍 오렌지]가 적절하게 섞인 때깔 좋은 칵테일. [벌거벗은 점심]의 성긴 맛을 좀 덜고, [클락웍 오렌지]에서의 세련된 감각과 디스토피아적 풍경들을 흡수해낸 코이케 케이이치의 [울트라헤븐]은 우리가 지금, 2000년대에 들어서서 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싸이키델릭 코믹이라고 부를만 하다.

배경은 아주 멀지만은 않은 미래. 인간의 생활엔 약물이 깊숙하게 들어와서 감정과 기분, 상태 같은 걸 약물 한방으로 바꿀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인간의 정신세계마저도 인스턴트화된 세상. 이런 세상에서 주인공 카브 역시 약에 쩔어 사는 인간군상 중 한명이다. 약에 취해 잠들고 약에 취해 깨고 하는 생활 속에서 카브는 어느 날 이상한 중국계 남자에게서 받은 약을 통해 꿈과 현실이 붕괴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초강력 드럭 울트라헤븐인가. 약에서 깨어난 다음에도 후유증을 겪는 카브는 결국 자신의 의식 깊숙한 곳으로 침잠해보기로 결심한다.

1960년대, 히피즘의 창궐과 함께 드럭문화가 모습을 드러내고 그에 영향받은 싸이키델릭 음악이 비틀즈와 도어즈, 제퍼슨 에어플레인 등등의 걸물들에 의해 시도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팝아트와 같은 미술 분야와 코믹북과 앨범 쟈켓을 중심으로 한 서브컬쳐 쪽에서도 싸이키델릭적 시도들이 감행되기 시작했다. 곡선을 중시하는 컷분할과 씬, 디자인들, 부서진 경계, 모호한 이미지들과 지나칠 정도로 집중된 이미지들의 극단적 대립 등등 환각상태에 있는 이들이 겪는 이미지들을 표현하는 것으로 그 정체성을 삼았던 작업들. [울트라헤븐]은 그런 이미지들의 충실한 적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치밀하게 환각상태의 풍경들을 다루고 있다. 다각화되고 분산되는 이미지들과 끊임없이 회전하는 플롯. 물론 꿈과 현실이 마구잡이로 뒤엉키는 이 흐름에서 이제는 지겹게 접해본 뻔한 도가적 풍경과 결말을 의심하지 않기란 쉽지가 않다. 그러나 아직 2권까지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현재 시점에서 [울트라헤븐]은 뻔한 결론에 대한 의식적인 회피를 지향하고 있다는 걸 익숙하지만 흥미로운 장치로 보여준다. 그것은 진화에 대한 문제제기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접할 수 있는 이와 가장 비슷한 작업의 결과물을 찾으라면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그래픽노블 정도를 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코이케 케이이치가 여기서 보여주는 광경은 낯설고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풍경들이다. 마블코믹스에서 일했던 경력에서 예상가능하듯이 코이케 케이이치의 작화는 단단한 데셍과 인체비례에 바탕을 둔 아메리칸 코믹스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리고 그 치밀한 작화는 환각상태의 풍경들을 그려내는데 모든 것을 집중한다. 드럭은 함유물과 화학반응 외엔 설명하기가 불가능한 제재다. 그것은 경험experience 그 자체와도 같다. 그렇게 코이케 케이이치는 [울트라헤븐]을 말그대로 '울트라헤븐'으로 만들려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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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11-01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