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리는 가슴 - MBC 드라마 12부작 박스 세트, 2006년 2월 비트윈 드라마 할인
오경훈. 고동선 외 감독, 김동완. 배두나. 신성우. 김창완. 배종옥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1. 사랑

각 2화씩 각각 다른 주제로 다른 PD와 작가, 그리고 메인이 되는 주인공을 달리하여 만들어진 [떨리는 가슴]의 기획은 [한강수타령]의 종영과 [사랑찬가]의 후속작 사이에서 벌어진 공백을 메꾸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땜빵 드라마다. 따라서 드라마몹 강명석의 MBC드라마에 대한 훌륭한 비판(http://dramamob.com/Review/view.asp?PKId=334)
에도 불구하고 [떨리는 가슴]이 실험성이라는 측면에서 MBC 드라마의 큰 흐름 중 일환으로 만들어졌다고 판단하는 것은 오버다. 분명 갑작스러운 드라마 기획이 만들어낸 제작 상황은 주말드라마로선 전례없는 실험성을 보장하게 만들었지만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떨리는 가슴]은 일종의 시간때우기에 가까웠다. 

[떨리는 가슴]의 전체적인 기조를 관통하는 것은 사랑이란 주제다. 남녀간의 사랑, 아이들의 사랑, 가족간의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이란 주제에 대한 각기 다른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방향성은 통념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사랑'편에서 우리는 애정의 향방에 대한 익숙하지만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보게된다. 드라마의 첫이야기의 주인공인 배두나는 김동완과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 둘의 사랑엔 계속 과거가 끼어든다. 지극히 유교적 관념 하에서 그에 대한 방어기제적 두려움을 보여주는 인물들의 모습이 보여지는 이 이야기는 그제껏 독특한 소녀적 캐릭터였던 배두나가 거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여성으로 보여지는 이야기이며 동시에 아역배우 출신이자 신화의 멤버로 더 알려진 김동완을 재발견하게 하는 에피소드다.

 

2. 기쁨

두번째 이야기인 '기쁨'에서 우리는 주말드라마에서 무려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보는 경험을 겪었다. 하리수라는 배우가 있기에 가능했던 이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인터넷의 지하담론, 이태원의 트랜스바, 낙원동의 음침한 소문들에서 존재하던 존재를 드라마로 접하게 된다. 비록 하리수의 연기 자체는 썩 훌륭하다곤 하기 힘들었지만 이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 주말드라마를 넘어선, MBC드라마의 파격성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만 하다. 여기서 우리의 통속을 깨는 것은 일반의 편견이 아니라 그 편견을 우습게 여겨버리는 사고 당사자들의 의식이다. '사랑'편에서부터 이어지는 주변인들의 배타적 방어기제는 여기서도 여전히 작용하며, 그렇기에 서사적으로 2화는 1화의 구조와 일치한다. 우리 생각보단 훨씬 성숙한 이들인 타인-당사자에 대한 우화.

 

3. 슬픔

아이들의 사랑을 그리는 이 에피소드에서 최고의 성과는 보미역을 맡은 고아성의 발견이다. 온전히 메인 캐릭터가 되어 두시간 가까이 극을 이끄는 그녀의 연기는 놀라울 지경이며 이것이 봉준호로 하여금 [괴물]에 그녀를 캐스팅하게 만든 이유일 것이다. 어른의 시선으로 바라본 아이들의 세계가 아닌 아이들 그자신의 시선이 펼쳐진 연애활극.

 

4. 바람

제목에서부터 아주 노골적인 이 이야기는 중년 아저씨 김창완과 록밴드 보컬 최강희의 바람을 그린다. 최강희는 젊음이며 김창완이 끝내 닿지 못했던 꿈의 지속을 상징한다.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스테레오타입화 된 연기 영역의 접합을 보여주는 이 에피소드는 김창완의 뮤지션적 자장과 최강희가 가진 매니악한 인기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 얼마나 궁합이 잘 맞는지를 보여준다. 꿈과 지나간 젊음, 그리고 현재의 괴리에 대한 이야기. 산울림의 '너의 의미'가 이렇게 훌륭하게 쓰인 경우를 찾아보기는 앞으로도 힘들 것이다.

 

5. 외출

'외출'은 바로 전작인 4편과 일종의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4편에서 남편의 바람을 목도해야 했던 배종옥이 메인이 된 이 이야기의 시작은 전작에 대한 일종의 복수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통속적 불륜극을 보여준다. 그런데 나중에 가서, 이야기는 배종옥과 배두나 두 자매의 환상극으로 뒤바뀐다. 이것은 어쩌면 남녀의 '바람'에 대한 차이를 보여준 것일까.

 

6. 행복

배종옥과 김수미가 메인이 되는 이 이야기는 노년, 그리고 모녀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은 인고의 세월을 거쳐서 비로소 '자신'을 찾아나선 어머니들에 대한 풍경화이며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도 다시금 상처받는 여자들에 대한 짙은 호흡의 이야기다. 배종옥과 김수미는 말그대로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며 드라마의 마지막을 훌륭하게 장식한다.

[떨리는 가슴]은 전 12화에 이르는 동안 매니아적 측면에서의 화제를 제외한 어떤 이슈도, 그리고 이후로는 그와 비근한 흐름도 만들어내지 못한, 독불장군으로 그자리에 서 있는 흔치 않은 케이스다. 그러나 상업성과 시청률에 목이 메여 트렌디 드라마의 양산에만 골몰해 있는 근간의 드라마 흐름에 비추어 '얼결에' 스스로의 정체성을 굳게 못박아버린 [떨리는 가슴]의 존재는 확실하게 빛난다. 이와 함께한 시간은 분명 흔치 않은 경험이었으며 묻혀질 것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더욱 소중한 시간이었다. 더 노골적으로 얘기하자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온전한 경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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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5-10-25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봉준호의 아내 그리고 조영남의 아내인 윤여정과 닮았다는 배두나와 그 배두나의 조카로 나와서 정말로 '친족'의 느낌을 자아냈던 보미가 <괴물>에 함께 출연하는군요.
얼굴에 대한 취향이라는 건 흥미로워요.

hallonin 2005-10-25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미 귀엽죠... 으흐으흐으흐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