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헌법원론에 대한 지리한 의견개진은 애초부터 배제했다. 어려운 한자어나 그것을 조합해서 만든 괴이한 단어들도 없다. 실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문제들을 중심으로 에세이식으로 구성하여 공손체로 설명하는 대중 지향의 전문지식 저술서인 [헌법의 풍경]은 그렇기에 실용서적인 면모 또한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쉽고, 보편적인 정서를 자극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여기서 우리는 잊혀졌던, 혹은 지워져야 했던 우리의 당연한 권리에 대한 얘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근간 들어가는 헌법 강의에서 가장 빈번하게 접하게 되는 것은 개인이 가지는 권리에 대한 문제들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간 우리들이 얼마나 기본권에 대한 침해를 받고 살아왔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겠다. 군사 독재 시절과 검사 시절, 그리고 도미후 보다 발전된 법체계를 모두 겪은 소장학자인 저자의 장외시각으로 보자면 아직 우리나라는 갈 길이 먼 나라다. 기득권과 언론이 만들어낸 그물망 속에서 보통사람들은 제대로 된 정보를 얻어내는 것조차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해서 결정적일 때마다 곤란하게 되는 대부분의 관련 사항은 놀랍게도 법전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는 것들이며 저자의 쉽디 쉬운 문장들로 서술되어 중학생 정도의 논리력만 되도 이해가 가능한 당연한 것들이다. 그래서 저자는 현실이 도외시해왔던 개인의 권리에 대한 문제제기와 복권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지금껏 은밀하게 구축된 시스템이 우리를 어떻게 굴려먹어왔는가를 친절한 설명과 함께 목도하게 된다. 그것은 부조리한 풍경들이다. 이유도 모르는 체 운동장에서 일장욕설을 들어야 하고 무죄인 사람이 몽둥이가 언제 날아 들어올까 두려워 벌벌 떨어야 하는 불쾌한 풍경들이다. 저자는 그에 대한 해결법으로 법원리의 철저한 실천을 촉구한다.

그러나 과연 법현실의 전환만으로 우리의 생활이 바뀔 수 있는 걸까. 우리는 부조리와 무척 친숙한 사람들이다. 그 틈에서 우리도 부조리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권인숙 교수는 80년대 학생운동 한복판에 자리한 군대문화를 발견하게 되고 김어준은 삼성수사에 대한 한겨레 기고글에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한다.

"삼성, 이번에 처음 알았다. 마지못한 종범인 줄 알았더니, 적극적 기획자인 거… …사실 이해 안 가는 건 사람들 반응이다. 별반 분해하지 않는다. 이상하다. 우린 불합리한 건 참아도 불평등한 건 못 참는 사람들인데. …잡소리 다 빼면 이거, 노예근성이다. 강자의 우산 아래 덕 보는 대신 내 권리는 내주고 그로 인한 불평등은 끌어안는, 노예근성."

난 이 문제의 근원을 제대로 된 토론문화의 부재에서 찾아본다.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정당하게 반박하며 더 나은 대안을 찾아보는 토론문화가 우리나라에선 안타깝게도 침묵, 혹은 스트리트 파이팅의 스타팅포인트로 자주 쓰인다. 대화라는 고전적인 방법에 아직 미숙한 우리는 이 책의 저자가 밝힌 것처럼 봉건적 원님문화에서 아직껏 자유롭지 못한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의 결론이 아닌 타인-권력자의 결론을 통한 '공명정대하고도 절대적인' 강제적 구속에 익숙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겠나. 두들겨 맞으면서 살아왔는데 말이다. 그것도 간판은 국민을 지킨다고 써놓은 법에 의해서 두들겨 맞아왔는데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야 했던 것이 민초 아니던가. 그렇게 맞아서 힘이 빠진 민초는 다시금 권력의 먹이가 된다. 고약한 뫼비우스의 띠. 이렇게해서 내재화된 부조리적 태도에 대해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한국땅에 얼마나 되겠는가.

법은 시스템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이다. 국가와 정부의 것이 아니라 나라는 개인을 위시한 국민의 것이다. 이 가장 기본적인 전제를 바탕으로 법에는 가짜가 아닌 진짜 생명이 돌기 시작하고 진실로 정당한 힘이 붙게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아주 오랜만에 바뀌기 시작하는 이 시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감히' 이런 책도 이렇게 활자로 찍혀서 서점에 버젓하게 진열되어 있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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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1 2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llonin 2005-09-22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한 에세이집으로 생각하면 읽기가 한결 수월하실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