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철 5
토우메 케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토우메 케이를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라든지, [양의 노래]와 같은, 그래도 좀 장편스러운 작품들로 접한 이들에게 [흑철]은 낯선 만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흑철]은 토우메 케이에게 있어서 꽤 중요한 작품이다. 왜냐하면 토우메 케이는 1994년에 이 [흑철]로 애프터눈 사계상에 입선, 작품활동을 할 근거를 마련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흑철]은 토우메 케이가 보여주는 마이너함과는 대비되는 정석적인 만화의 공식이 적어도 설정상에는 들어가 있다. 반은 인조인간인 주인공과 그의 동반자인 말하는 칼이 보여주는 다소 팬시적인 인상이라든지, 스토리적으론 대개 아련한 사연의 비극의 형태를 가진 옴니버스식이라는 것 등등. 소년만화적인 소재들과, 슬프지만 그리 복잡한 플롯을 요구하지는 않는 무난한 스토리, 독특한 선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사무라 히로아키보다는 단순한 작화 등등이 처음 보는 이에게도 눈에 잘 들어올 포지션에 위치한 이런 요소들이 그녀가 이 작품을 '노리고' 만들었다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작을 동시에 연재중이지만 대부분이 휴재상태인, 어지간히 호흡이 짧은 작가로서도 상당히 오랜 기간 연재중인 작품인 [흑철]은 작가의 만화들에서 대중적인 호흡에 슬며시 기대어있는 양상이 가장 분명하게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이 토우메 케이의 만화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의 만화들에서 공통되게 드러나는 우울의 증상을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주인공인 진데츠라는 캐릭터에겐, 살아가는 의미와 목적이 없다. 그저 길을 따라서 흐르고 또 흘러갈 뿐. 그 도중에 만나는 사연과 사건들이 슬프고 우울하기 그지 없는 것은 어쩌면 그런 목적 없는 방랑의 아우라가 이야기에도 덧씌워진 결과로 보인다. 다시 잘 보면, 이 만화에서 살아있는 이는 극히 드물다. 일단 진데츠부터가 반은 죽어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고 매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대부분 죽음을 예정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나마 진데츠를 쫓아다니는 마코토의 좌충우돌과 작품의 후반부가 다른 연재작들인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와 같은 작품과 동시에 연재되었던 영향 덕인지 갈수록 적잖이 상쇄되는 점이 없잖아 있다.

토우메 케이의 우울은 감정을 억제하고 감추는 게 본능화된 인물들을 만들어낸다. 그녀의 짙은 선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은 [양의 노래]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인물들의 감정은 저 깊숙이 묻혀져 있거나 표현이 되질 않고 그런 답답한 분위기 속에서 예정된 비극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옴니버스 형식이라는 면죄부를 쓴 [흑철]은 작가로선 영원히 끝내지 못할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동시에, 지금 당장 끝내도 이상하지 않을 이야기다. 결국 진데츠는 죽거나, 방랑하거나, 둘 중 하나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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