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드림] 때부터 키토 모히로 작품의 악명은 익히 들어온 덕에 이 만화를 접함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음이었다. 과연, 자신의 목숨을 바쳐 세계를 구해내야 할 운명에 처한 아이들이라는 다분히 악취미적인(동시에 에바 이후의 우리에겐 무척 익숙한) 설정이라니. 정체불명의 거대로봇 지어스를 움직일 자격이 부여된 아이는 자신의 임무가 끝나는 즉시 그자리에서 말그대로 죽어버린다. 그것도 15소년 표류기를 떠올리게 15명으로 설정되서 인원도 풍부하다. 2권 현재 이미 4명이 저세상으로 떠난 걸 보니 그리 길게 끌 생각은 없는 듯.

그런데 2권은 이 만화에 있어서 일종의 터닝포인트가 될 가능성을 보이는데 이 괴이한 구조와 숙명에 대한 설명이나 파계가 어쩌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근거가 약간 제시된다는 점에서다. 하긴, 그냥 그대로 애들 죽어나가는 것만 보여준다면 있었던 긴장감도 서서히 바닥나게 마련이거니와, 이 부분이 어찌 생각하면 이 작품의 인상이 [간츠]의 그것과 일맥상통하리라는 예감을 하게 만드는 근거이다. 물론 작가의 명성을 감안하자면 이렇게 은근슬쩍 제시된 단서가 결국은 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지지 말란 법은 없다만.

근간엔 이야기의 별다른 진전 없이 활동사진을 그대로 옮겨놓는 서바이벌 게임이 된 [간츠]의 과잉스러운 이미지의 향연과는 달리 이 만화에서의 죽음은 보다 근본적으로 예정되 있는 것이기에 인물들이 자신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침착하고 정적이다. 이런 류의 만화가 그렇듯 작품의 방향은 아마도 한정된 시간에서 실현가능한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되고 있는 중이고. 해답이 없고 결론 또한 암울하기에 그 덜 익은 듯한 작화와 더불어 비슷한 무책임함, 혹은 미완성 상태를 느끼게 만드는 이야기의 경향은 전체적으로 전해지는 어두운 긴장감과 반비례하여 [지어스]에 대한 신용등급을 다소 낮추는데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지어스]의 중심기조가 바로 그런 덧없음에 기대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런 부족함이야말로 이 작품을 더욱 비극적이고 잔인하게, 동시에 가장 어울리게 만들어주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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