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옛날, 여성대백과사전 제 1권의 부부생활편 한권만 접할 수 있었어도 요약설명만이 간략하게 붙고 실루엣만으로 두리뭉실하게 그려진 48체위를 대하고는 감동의 액체를 흘리며 몇날몇일 망상의 대해를 널리널리 헤엄쳐 다닐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세월도 흐르고 출판업계도 나날이 발전하여 결국은 [성과학의 이해]라는 제목의 학술적이고도 핵심사항만 콕콕 찝은 것 같은 책도 발간되게 되었으니 도서관에서 우연히 접하고는 내 이걸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음이라. 냉큼 빌려왔을 따름이다.
과연, 세월은 흐르고 흘렀도다. 결혼과 관계라는 도덕적 차원에서부터 임신의 성립, 성병의 종류까지는 기본이거니와 이상성욕과 성감의 발달과 응용, 체위의 종류에 이르는 개념들까지 아우르고 있음에 이제 우리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중이란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풍부한 해부학적 도판들과 저작권료를 제대로 지불했는지 의심되는 일본 AV물의 장면장면들을 따온 사진들로 보조설명되고 있으니 이 아니 즐거움이라.... 그런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별로 읽히지가 않는다....
역시 세월이 흘렀다는 증거인가.... 뭐 책 자체도 내용이 워낙 원론 지향적이라 쉬이 지루해지는 느낌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비록 현실적인 차원의 문제 때문에 포기했지만 한때 에로소설가로서 생계를 꾸려나가고자 하는 야망을 가졌었던 나였고 액션과 리액션에 대한 호기심 또한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바이지만. 적어도 이 책이 보여주는 길에 대한 흥미가 어렸을 적보다 현저하게 떨어진 상태란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순진했던 시절, 여성대백과 사전에 목숨을 걸었던 시절의 열정이, 이제는 모래성처럼 흩어져버렸음이라....
...그런데 한양대에 관련 강의가 있으려나?-_- 내 잃어버린 열정을 다시 한 번....